- 실내에서 떠나는 부부의 세계여행 -
< 만둣집 사장님 부부가 행복해 보이는 이유 >
내가 단골인 만둣집이 있다. 어머니도 만두를 좋아하셨고 나도 만두를 좋아해서 어머니 집 앞 만두집이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신 다음에도 종종 들른다. 만둣집은 중년 부부 2분이 함께 운영하는데 만두를 보지도 않고 빚으신다. 꼭 한석봉 어머니 같은 솜씨로 잘도 빚으신다.
손은 만두에 있는데 눈은 TV로 향한다. 만둣집에 갈 때마다 그 중년 부부가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은 정해져 있었다. ‘세계테마기행’ 또는 ‘걸어서 세계’로였다. 아웃도어, 등산, 여행 전문 ONT 채널이다. 일하면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만두가 찌어지는 시간 동안 나도 자연히 시청하게 된다.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보니 손님인 나도 보기도 좋아 보이고 시샘이 난다.
그날은 필리핀 영웅에 대한 얘기와 여행기를 다루는 '스페인 제국주의에 맞선 의사 출신 호세 리살'에 관한 내용으로 호세 리살은 필리핀의 민족주의 탄생을 알리는 인물이었다. 호세 리살의 『나를 만지지 마라』책은 필리핀의 국민영웅, 민족주의운동의 상징, 아시아 최초의 민족주의자, 첫 번째 필리피노 등의 수식어를 안긴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리살을 사형으로 이끈 작품이기도 했다.
내가 방문하는 날에는 언제나 부부가 함께 일하고 계셨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니 두 사람의 사소한 의견대립이나 갈등이 일어나면 서로 불편하여 식당경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궁금하기도 해서 만두가 나올 무렵 내가 묻는다.
“일도 하고 여행도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겠어요. TV를 통해서 전 세계 안 가본 곳이 없겠네요.”
여사장님이 대답한다.
“음식점을 하다 보니 오랜 시간 가게를 비울 수가 없는데 여행은 가고 싶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여행프로그램을 자주 보고 되네요. TV로 보아도 실제로 가본 것처럼 새로운 경험을 주네요.”
긍정적으로 생활하시는 여사장님의 모습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정성스럽게 빚은 만두를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 그리고 부부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적은 수익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사는 모습이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부부가 한 곳을 바라보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오직 손님인 나의 입장에서 바라본 관점이고 중년 부부의 참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이들의 속마음은 알 수는 없다.
만둣집 사장님 부부는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기다리는 동안 한 가지 더 물어본다.
“지금까지 여행프로그램을 시청하시면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어디였는지요?”
“다 좋았지만, 유럽의 코카서스 조지아지역을 방영할 때는 저곳은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나도 꼭 가보고 싶다.
나는 만둣집 사장님 부부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왜냐하면 만둣집 사장님 부부는 늘 같은 방향을 보시고 사시니까는...
부부가 한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방향을 보면서 한평생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고 엄청난 인연이다.
< 益者三友와 함께 라오스 여행을 떠나면서... >
예전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요즘의 나는 여행을 떠나는 날이면 언제나 애써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올 겨울에는 처가 식구들과 한번, 익자삼우와 한번 2번이나 동남아를 떠나게 된다. 우리 4명의 퇴직 전 직장동료는 10년간 적립금을 저축해 왔고 연금형태로 매년 목돈을 받는다. 처음으로 받은 연금저축 수령액으로 이번 겨울에 라오스 여행을 계획 중이다.
처음 연금저축을 하였을 때의 목표는 분명하였다. 10년 동안 저축하여 퇴직하고 난 뒤 함께 6개월 동안 유럽을 자전거여행을 해보자라는 뜻을 모으고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물가는 오르고 모아둔 저축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저축을 시작할 시기만큼의 젊음은 유지되지 않아 자전거로 유럽을 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패기는 퇴색되고 부인의 반대도 고려해야 한다. 꿈이란 꿈꿀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인가 보다. 막상 꿈이 이루어질 기회가 생기니 여러 가지 변수와 변심이 생겨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
얼마 전 제주도 한라산 눈꽃산행을 보러 갈 때는 설레었는데 이번 여행은 망설여진다. 동남아지만 자주 여행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고 비슷한 동남아 여행지라 신선함도 떨어진다. 행복한 만둣집 부부처럼 TV에서 세계테마여행, 걸어서 세계로 등 좋은 프로그램으로 실내에서도 세계여행이 가능한데 굿이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저비용항공사의 사고도 신경 쓰인다. 제주항공의 무안공항사고와 에어부산의 김해공항 화재 사고와 진에어는 일본으로 가든 도중에 폭발음이 생겨 회황하는 사고도 생겼다. 비행기가 안전한 교통수단이다라는 통념을 깨뜨린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안전이 보장되는 시기를 기다려볼까? 익자삼우에게 다음으로 미루자고 설득을 해볼까?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대볼까? 그럼 언제 떠나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때가 언제일까?
아마 그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없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항공기 사고가 무서워서 여행을 못한다면 영원히 못하는 것 아닌가?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는데 항공기 사고였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기대치를 확 낮추고 떠난다.
애써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고 더 배워야 하고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 만 될 것 같은 기대치를 낮추고 좋은 벗들과 함께 떠나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앤 드루얀의 코스모를 읽고 나서 느낀 것이다.
우주란 지구 전체의 모래 알갱이보다 많은 수의 별이 하늘에 존재하는데 내가 지구에 태어난 것도 기적이며, 138.2억 년의 우주력에서 지구에 홀로세(Holocene)를 맞이하는 기간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도 기적이고, 나의 부모가 대한민국의 북쪽에 살지 않은 것도 대단한 행운이다.
컴퓨터 바탕화면을 볼 때마다 창백한 푸른 점에는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이 많다. 모니터로 보는 아름다운 지구는 가보고 싶은 곳이 무궁무진하다. 버나드 쇼우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비문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내 마음 같아서는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창백한 푸른 지구의 구석구석을 여행해 보고 싶다.
여보~ 3박 5일 일정 라오스 여행 잘 다녀올게요.
표지 사진설명: '우수 경칩에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속담이 있지만 우수가 지난 2.21.(금)은 몹시 쌀쌀했다. 우리 부부는 여수 향일암으로 떠났다. 향일암 뒷산인 금오산에서 바라본 여수 앞바다는 윤슬이 빛나고 있었다. 한 곳을 바로 보던 우리 부부를 산행 친구가 찍어주었다. 부부가 같은 취향을 가져 한 곳을 바로 보고 간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노후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