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히 가지고 싶어도 때로는 바라보기만 해야 것이 인생이다. -
간절히 가지고 싶어도 바라보기만 해야 것이 인생이다.
수요산행에서 한라산 눈꽃특별산행을 계획했다. 우리나라 눈꽃산행의 최종목적지 한라산 '성판악' 코스와 '영실' 코스를 다녀올 마음으로 무척 설레였다. 한라산은 눈으로 한번, 온몸으로 또 한번, 두번 즐기는 곳이다.
< 한라산 산행계획 >
1. 일시: 2025.02.09.~02.12.(일~수) 3박 4일
2. 산행지: 사라오름(1일 차), 영실기암(2일 차), 3일 차 동백숲 관광
3. 참석자: 수요산행 팀원 3명
4. 산행 1일 차 일정: 10:00 성판악 집결 ⇢ 사라오름 왕복 (약 12Km)
5. 산행 2일 차 일정: 09:00 영실기암 ⇢ 윗세오름 ⇢ 어리목 코스 (약 12Km)
6. 여행 3일 차: 동백수목원,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 프릳츠
7. 준비물: 아이젠, 스틱, 스패츠, 방한용 비닐장갑, 반한모자, 반한목도리, 핫팩, 비상식량, 간식, 비닐쉘트, 보온물통, 핫앤쿡 발열식품 등
8. 숙소: 서귀포 호텔
-최악의 수요산행이 될 뻔한 한라산 눈꽃산행 -
성판악에서 사라오름으로 가려했던 기대와 설렘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영실과 윗세오름으로 가려고 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역대급으로 많이 내린 제주도의 눈 폭탄으로 첫날 1100 도로마저 봉쇄되었고 다음 날은 도로가 개통되었지만, 등산로가 개방되지 않았다.
제주도가 온통 눈밭인데 대안을 찾았다. 휴양림을 찾았지만 붉은오름 휴양림, 절물휴양림, 서귀포 휴양림 모두 입장 불가였다. 눈(雪) 구경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은 사려니숲길 이었다. 편도 10Km의 사려니숲길은 왕복 20Km이었고 눈길에서의 체력소모는 더 많아 우리는 절반인 5Km 지점만 다녀오는 것으로 한라산 산행을 대신하였다.
다음날의 선택은 한라산 둘레길 2구간 돌오름 길이었다. 돌오름길은 제주 토박이만 아는 길이라고 할 만큼 오지이다. 제주 한달살이를 했던 경험을 살려 돌오름길을 찾아갔다. 이곳은 사려니숲길보다 더 인적이 드물고 눈이 무릎까지 빠졌다. 앞사람이 지나간 자리를 딛고 가야만 했다. 우리 산행코스는 [영실입구 버스정류소 출발 ⇢ 보림농장 삼거리 ⇢ 돌오름 갈림길 ⇢ 표고버섯재배지 ⇢ 영실입구 버스 정류장 (총 8Km)]이다. 돌오름길의 눈길 산행은 체력이 안 되는 분은 비추일 만큼 난이도가 높다.
그리고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신비로운 백설의 세계로 빠져들어 행복한 걷기 여행을 마치고 왔다.
아내와 함께 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체력소모가 많은 이 길은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아 동행해준 산행 벗들이 참 고마웠다.
최고와 최악은 늘 함께 존재한다. 2년 전 겨울 딸과 함께한 한라산 등산이 최고였지만 이번 한라산 등산은 최악이 될 뻔했다. 너무 많은 폭설로 입산이 통제되었으니 입산조차 못하고 최악의 수요산행이 될 뻔했지만 예상치 못한 코스로 걷기 여행하여 수요산행 3년 동안 최고의 산행지로 기록되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최악의 순간을 잘 이겨내면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다. 내가 있는 위치가 최악이라고 생각해도 포기하지 않고 대안을 찾는 것이 인생이다. 어쩔 때는 간절히 원하지만 바라만 보아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진짜 인생이다.
“ 잘 될 것이다. 나는 절대로 잘 될 것이다”를 즐겁게 외치고 내 친구에게도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였다.
- 제주를 알기 위해서 동백꽃을 이해해야 한다. -
이틀 동안 눈꽃을 원 없이 보고 즐겼다. 평소 감정표현이 잘 없으신 석루 형님도 즐겁게 눈밭에 쓰러졌다. 하산하여 동백꽃을 보러 갔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와 동백수목원이었다. 두 곳 모두 현맹춘(1858~1933) 할머니와 관련이 있다. 1878년 한라산에 자생하는 동백나무 씨를 받아 심은 위미동백나무 군락지는 147년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1977년 손자가 이룬 동백수목원은 KBS 애국가 영상 배경으로도 나온 곳이다.
2019년 9월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초청된 한강 작가는 39명의 페미니스트가 모인 만찬장에 있었다. 그는 세계에 알리고 싶은 여성으로 제주의 현맹춘을 꼽았다고 한다. 현맹춘은 제주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집과 농토를 지키기 위해 황무지 5,000여평에 동백나무 수백 그루를 심은 인물이다. 1982년 제주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맹춘할머니는 한강 작가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동안 스터디셀러를 읽어보기 위해 미루어 왔던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음 도서로 정하였다.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번, 땅으로 떨어져 한번 두 번 피는 꽃"이라고 한다.
제주의 4·3 사건을 공부해 본다.
제주에서 동백꽃은 4·3의 아픔을 간직한 추모의 상징으로 꼽힌다. 꽃송이째 뚝 떨어지는 모습이 억울하게 희생된 4·3 희생자와 닮아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4·3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지 모양도 동백꽃이다. 동백꽃은 붉은색이 가장 아름다울 때 떨어지는데, 꽃봉오리째 떨어져 그 아래마저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듯 붉은 물결을 이룬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울 때 떨어진 분들의 비극이 연상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5·18민주화운동, 무안공항 참사, 천안함 피격사건 ,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까지 모든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일제 강점기부터 곡물 수탈과 군사기지로 핍박을 받아온 제주도는 친일경찰이 청산되지 않고 친미경찰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제주 도민들의 분노가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는 남하정책으로 북한지역 장악하여 남북한 통일정부를 구성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승만의 '정읍발언'으로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선거를 실시 할 예정이었다. 제주도 도민의 다수가 중산간지방으로 이주하여 단독선거를 방해하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선거사무소 방화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는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1947년 3월 1일 만세운동 중 경찰은 시민들을 폭도로 오인하고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제주도내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경찰의 발포에 항의하여 3.10 총파업이 일어났으며 제주 남로당은 남한 단독 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하여 이듬해 1948년 4월 3일 제주도민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제주도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육지에서 서북청년단과 응원경찰이 입도하여 7년 동안 대토벌 작전이 벌어지면서 3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4·3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픈 상처 중 하나이다. 김대중이 최초로 언급하였고 노무현 대통령 공식 사과하였다.
지금 서귀포는 ‘동백꽃 질 무렵’이다. 혹독한 추위에 강인한 생명력으로 피어난 동백꽃은 붉고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며 서귀포 겨울에 마지막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 잎씩 떨어지는 벚꽃과 다르게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으로 떨어져 한 번. 두 번 피는 꽃으로 불린다. 동백수목원의 동백은 제주 도민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예종으로 재래종 동백과 다르게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사람꽃은 은은한 향기가 난다. -
한라산 산행 여행에서 새로 만난 꽃은 유채꽃과 사람꽃이다. 눈꽃은 화려하고 동백꽃은 강인하고 사람꽃은 짙고 은은한 향기가 났다.
이틀 동안의 걷기 여행을 마치면 술을 좋아하는 두 일행 덕분에 매일 술자리에 참석하였다. 한 잔 두 잔 술잔이 넘어가면서 가슴에 품은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가지씩 不滿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리고 마음속에 꼭 꼭 감춘다.
사람꽃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고 마음을 열 때만 피어나고 마음으로 보인다.
사람꽃은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不滿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때가 피어난다. 마음속의 不滿을 상대방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 열린 것이다. 마음속의 不滿을 거칠게 토해내면 관계가 악화할 것을 알면서도 실제 대부분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不滿을 거칠게 내뱉어 결국에는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不滿을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不滿을 말하는 적절한 시기이다. 적절한 시간에 마음을 풀어야 예쁘게 피어난다. 그 적절한 시기란 남자들에게는 술좌석이 만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술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서로 긴장을 풀어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한다는 것이다. 술을 끊은 나는 술자리가 무척 힘들고 괴로운 자리였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서 피어나는 사람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지난번 수요산행에서 진행한 광양여행에서 내가 나름대로 준비한 맛집을 갑자기 변경하는 바람에 앞으로 다소 서운했지만, 상대방으로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다툼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 생긴다. 부부의 다툼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마음속에 가진 不滿의 씨앗들을 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사소한 不滿이 쌓이고 쌓여서 폭발하면 파국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不滿의 씨앗들을 표현하는 시간과 공간은 여행이 최고인 것 같다. 친구도 가족도 부부도 不滿의 심경을 말하는 적절한 공간과 시간이 꼭 필요하다. 적당한 술은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不滿을 끄집어내는 윤활유이다.
일행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석루 형님은 올해 경로 우대증을 받으신다. 그런데도 늘 양보하고 배려하신다. 차량 좌석도 뒷자리를 미리 선점하고 식당 메뉴, 식당 좌석도 아우들에게 양보하신다. 시간약속을 철저히 지키신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양보하고 배려하신다.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소소한 배려와 양보가 금방 눈에 띈다.
중국의 문인 유영의 매(梅)에 이런 시구가 나온다.
누가 강변의 매화 소식 더디다고 말하는가
푸른 대나무 안으로 늘어진 가지 보이는데
성긴 그림자 은은한 향기 번지는 곳 찾으니
춥고 맑은 새벽에 홀로 서 있네
한학자(漢學者)이신 석루형님은 화려하지 않고 은은한 향기를 품으며 홀로 서있는 매화 같은 분이시다. 머리에는 한라산 눈보다 더 흰 눈꽃을 맞으신 석루형님과 함께 3년간 산을 다니면서 나는 이제서야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무한 긍정 마인더의 자유인은 에너자이저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인더로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부부지간에도 ‘너’, ‘니’라는 표현은 안 쓴다고 한다. 타산지석이라고 했는데 이번 수요산행에서는 눈꽃, 동백꽃, 사람꽃을 보고 가슴에 담고 왔다.
표지사진 설명: 서귀포에서 바라본 한라산은 마치 알프스의 마테호른처럼 빛났다. 청명한 맑은 날씨와 눈 덮인 한라산은 최상의 등산 조건을 갖춘 눈꽃 산행지였다. 그러나 폭설로 인한 입산 통제로 인해 우리는 3박 4일 동안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내가 가지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간절히 가지고 싶어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