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붕어와 아이들 -
제주도의 본태박물관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았다.
낡은 텔레비전 속, 금붕어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처음 그 작품을 보았을 때, 솔직히 너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은 TV 한 대와 금붕어 한 마리, 그것이 전부였다. 화려한 구도도, 강렬한 인상도 없었다. 그저 오래된 화면 속에서 금빛 지느러미가 잔잔히 물살을 가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단출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곧, 그 생각은 나의 삶과 내가 받아온 교육으로 향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진정 훌륭한 예술이란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끊임없이 사유하게 만드는 것임을.
백남준은 말한다. 우리는 주어진 정보만 보고 듣고 판단하는 ‘금붕어 같은 존재’라고.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의 세상은 그랬다. 한정된 채널, 정해진 뉴스, 규격화된 교과서 속에서 우리는 자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종합편성채널이 쏟아지고, 유튜브가 개인의 방송국이 되었다. 이제는 정보를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만들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시대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에서,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시대로 옮겨온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 했다.
세상 한복판에 이유 없이 태어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존재.
이 철학을 교육에 대입한다면, 아이를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계하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이런 면에서 고교 학점제는 이상적인 제도로 보인다.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고르고, 진로를 설계하는 교육.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대도시의 큰 학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시골의 작은 학교는 그렇지 않다. 교육 환경의 격차는 여전하고, 기회는 균등하지 않다.
성적 중심의 줄 세우기 교육은 공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같은 시험을 치르더라도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도시 학생과 그렇지 못한 농어촌 학생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겉으로는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 듯 보이지만, 제도 속에 불평등이 깊이 스며 있다. 이런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눌 뿐,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과 현실은 자주 엇갈린다.
그러나 인생에 정답이 없듯, 교육도 정답만을 찾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어진 것을 빠짐없이 외우는 교육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고 선택하는 교육으로.
아이들이 작은 텔레비전 속 금붕어처럼 한정된 세상만 바라보지 않도록, 우리는 더 넓은 수조와 더 다양한 물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결국 교육의 목적은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존재’를 깨우는 교육이다.
물론 자유에는 불안이 따르고, 그 길은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만이 자기만의 길을 만들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나를 깨어 있게 하는, 나만의 종교다.
P.S.: 표지사진 설명_ 향일암에는 ‘해탈문’이 있다. 거대한 바위틈 사이, 좁은 길 안쪽에서 환한 광채가 새어 나온다. 그 길은 오직 한 줄로만 통과할 수 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육도 그와 같았다.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한 줄로만 서야 했다.
현직 교사 시절, 그런 교육을 받은 나는 그 방식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물려주었음을, 이제 와서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