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빈의 장(場) 이론으로 돌아본 나의 결정들 -
왜 나는 지금의 나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교육학 공부를 참 좋아했고 열심히 했다.
장학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사범대학 재학 중에는 깊이 다뤄보지 않았던 교육학이 놀랍도록 흥미롭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교원대학교에서의 10일 합숙 연수는 내게 신세계와도 같았다.
비교적 젊은 40대 중반이었지만,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고 장학사의 길을 택한다는 건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한 달을 고민한 끝에, 결국 아내와 상의도 없이 결심을 하고 짐을 쌌다. 남긴 것은 짧은 메모 한 장뿐이었다.
“좀 더 능력 있고 멋진 남편이 되기 위해 떠납니다.
10일 동안 교원대학교에서 교육학 연수를 받고 오겠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교수들은 교육학의 매력을 온몸으로 전해주었다.
나는 전문직과 관리직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고, 그 무렵 이런 다짐을 하게 되었다.
“경남의 장학사 가운데, 내가 교육학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겠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장학사 시험에는 세 번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그 시련을 견딘 끝에 이른 나이에 공모 교장이 되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 역시 세 번의 도전 끝에 문을 열 수 있었다.
그 시절 공부한 내용 중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레빈의 장(Field) 이론이다.
교직에 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강조하곤 했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을 바꾸고,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 레빈은 인간의 행동(Behavior)은 개인(Person)과 환경(Environment)의 함수라 했다. >
공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B = f(P, E)
즉, 어떤 행동은 개인의 성격이나 특성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그것이 일어난 당시의 환경과 함께 작용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장(場, Field)’은 개인이 처한 심리적 공간이며, 시간에 따라 변하고 상황에 따라 유동한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늘 변화하는 장 안에서 살아가는 유동적인 존재다.
예를 들어, 시험 기간 중 한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단지 성실한 성격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그 학생은 경쟁심이 강하고, 부모의 기대에 민감하다(P).
중간고사가 가까워 오고, 주변 친구들이 모두 도서관에 몰려 있으며, 부모도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경(E)에 처해 있다.
이 두 요소가 함께 작용하여 ‘공부하는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방학 동안 게임 환경에 놓이면 같은 학생이라도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 왜 나는 이런 삶은 살아온 것일까? >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그리던 인생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젊은 날엔 나름의 꿈이 있었고, 방향도 있었지만, 수많은 상황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조금씩 다른 길을 걸어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되짚어보면, 결국 삶은 내가 처한 환경과 그 안에서의 나의 성향이 얽혀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어릴 적, 삼촌이 사준 야구 글러브 덕분에 우연히 야구를 접하게 되었고, 그것은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유소년 야구 선수로 뛰며 에너지를 발산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씩 쌓여갔다.
중학교 시절, 첫 시험에서 국어 과목에서 만점을 받고는 매일 아침 자율학습 과제를 칠판에 적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작은 인정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학업적 자존감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만난 친구 한 명은, 내게 서울의 대학을 꿈꾸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친구의 말과 생활 방식, 열망이 나에게는 강력한 자극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방향으로 끌려가듯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의 권유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 속에 지방대학에 진학하였고 국어교육과가 아닌 영어교육과를 선택했다. 그 결정은 관심이나 적성보다, 가정의 분위기와 불확실한 미래가 만든 결과였다.
1983년에 발표된 민해경의 노래 「내 인생은 나의 것」은 그런 나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부모 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반항, 자아에 대한 선언이 담긴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다짐했다.
“느긋하게 살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순 없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1984년 나는 사범대학 재학 중 스스로 결심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복학하여 교생실습을 마치고, 교사라는 직업에 깊은 매력을 느끼며 교직에 들어섰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성격이던 나는 학교라는 환경 속에서 점점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교장이 된 이후에는 그러한 모습이 더 단단히 뿌리내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선택 하나하나는 모두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그때 나를 둘러싼 사람들, 상황들, 그 안에서 작동하던 심리적 힘들이 나의 방향을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場)'이었다..
< 내가 만날 또 다른 우연이라는 장(場은 무엇일까? >
이제 퇴직한 지금, 나는 조금씩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시 글을 쓰고, 자연을 걷는다.
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제야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
결국, 나는 내가 처했던 환경과 그 안에서의 나의 선택들에 의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어떤 결정도 단지 내 성격 탓도 아니고, 단지 환경 탓도 아니다.
그 순간, 내가 놓여 있던 ‘장’ 속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레빈의 장 이론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사람은 전혀 다른 마음을 품고,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우리 역시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미래의 우연' 속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를 어떤 환경 속에 둘 것인가."
좋은 환경은 좋은 결정을 가능하게 하고, 좋은 결정은 결국 좋은 삶을 만들어준다.
삶은 내가 만든 선택의 결과이지만, 그 선택은 늘 내가 놓인 ‘장’에 의해 조율되기 때문이다.
P.S.: 표지사진 설명_ 제주도 본태박물관에는 결혼과 죽음의 의식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이 많다.
나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으로 목우(木偶)라 불린다. 조선시대 상류층 이상의 장례에서 사용되었으며, 고인의 혼(魂)을 상징하거나, 장례의례를 대신하는 용도로 쓰였다. 관 앞이나 뒤, 혹은 상여(喪輿) 위에 세우기도 했으며 종종 고인의 생전 모습, 복식, 신분 등을 반영하여 제작되었다.
이곳에서 인상적이었던 조각물이 하나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장례식에 쓰인 목우가 있었는데 그 상황에 따른 아들의 행동이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큰 아들은 슬픈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 표정이 나타나고 순수한 작은 아들은 마냥 슬프 하기만 한다. 주어진 상황이 모두에게 똑같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