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황금빛 머리카락을 잘랐을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 디카시 015]

by 올제

라푼젤은 부모의 잘못으로 마녀에게 잡혀갔다.

갇혀 사는 동안 마녀는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 곳만이 네가 있어야 할 곳이다. 다른 세상은 없다.”

그 말이 맞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창문 너머로 길 잃은 왕자가 나타났다.

그의 눈빛은 탑 바깥의 세상을 보여주었고

라푼젤은 처음으로 묻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살아야 할 길은 이것뿐인가?”

그러나 마녀는 분노했고

황금빛 머리칼을 잘라버렸다.


꿈을 타고 오르던 사다리가

그 자리에서 끊어져 버렸다.


나는 回想한다.

"내 인생의 황금 머리칼을 자른 이는 누구였을까?"


같이 놀자며 화투와 카드패를 내밀던 친구가 그랬다.

"우리의 즐거움은 여기서 찾아야 해"

나는 그 유혹에 이끌려 시간을 허비했고

그때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의 대학에 가고 싶다던 나의 마음을 꺾어버린 선생님이 있었다.

“서울은 네가 가야 할 길은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내 발걸음과 꿈을 끊어버렸다.

그때 나는 탑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잘린 머리칼을 손에 쥐고 살았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평생의 길이 달라진다 했다.


나도 이제 안다.

우리 곁에는 빛을 향해 이끄는 이도 있지만

끝내 잘라버리고 길을 막는 마녀가 더 많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내 황금빛 머리칼을 이어 줄 수 있는 왕자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잘린 머리칼의 흔적만 더듬으며

남은 날들을 살아가야 할까?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라푼젤 이야기가 떠올랐다. 라푼젤은 독일어 원전으로 전해지는 그림 형제의 동화이며, 제목의 Rapunzel 역시 독일어 단어다. 라푼젤은 우리나라 상추와 비슷한 식물 이름인데, 이야기 속에서 임신한 어머니가 마녀의 정원에서 그것을 훔쳐 먹고, 태어난 아이 라푼젤을 마녀에게 빼앗기게 된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단순한 외형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라푼젤이 가진 자율성과 꿈, 세상으로 나가려는 가능성을 억압하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마녀가 자른 것은 황금빛 머리카락 그 자체가 아니라, 자유와 미래를 선택할 권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종종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마녀의 속삭임에 이끌리곤 한다. 마녀는 늘 자기 길로 오라며 유혹하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자기 꿈을 이룰 수 있다.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미움받을 용기는 때로 성공하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성장 과정에서 내 곁에는 많은 마녀가 있었고 내 꿈을 실현시켜 줄 왕자는 만나지 못했기에 더더욱 그렇다.

< 올 추석에는 역 귀성하여 아들 집에서 추석명절을 보낸다. 서울도보해설로 경복궁에 다녀오면서 나의 젊은 시절 아쉬운 꿈을 회상하여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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