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와서 [디카시 016]
<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
돌담은 말을 잃고,
서대문 형무소의 그림자는
아직도 돌틈에서 숨 쉬며 우리를 지켜본다.
쇠창살은 오래전에 녹슬었지만
그 안에서 꺼지지 않은 숨결이 있다.
이름 없이 사라진 젊은 영혼들,
그들은 결박된 몸으로도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그림자,
그 그림자는 일본의 군홧발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지배층이 세운 탐욕의 그림자였다.
그들은
권력을 가문의 안녕을 위한 방패로 착각했고
국가를 가문의 재산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한 나라의 정신은
거울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그 틈으로 제국의 발소리가 스며들었다.
어둠은 외세의 것이었으나,
그 문을 열어준 것은 우리의 손이었다.
우리의 무관심이 다시 고개를 들면
그림자는 또다시 몸집을 키우고,
이기심이 권력이 되면
돌담은 다시 세워질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침묵을 택하고,
누군가는 역사를 잊은 채 웃는다.
그러나 진정 깨어 있는 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하는 자,
역사의 부끄러움 속에서
새로운 길을 묻는 자이다.
돌담에 남은 이름 없는 숨결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지금, 자유로운가?
그리고 그 자유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일본이 조선을 짓밟은 것은 침략의 책임이 일본에 있음이 명백하나, 조선이 그렇게 쉽게 짓밟힐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은 이미 정조(재위 1776~1800) 이후 60여 년간 개혁의 동력이 꺼지고, 안동 김 씨·풍양 조 씨 등 세도정치가 지배하면서 권력은 폐쇄적 문벌 중심으로 고착화되어 조선 내부의 구조적 약점과 지도층의 무능 그리고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우리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현실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국제 정세와 변화를 외면한다면 역사는 반복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감정이 교차한다. “우리가 또다시 과거의 붕당정치와 세도정치를 닮지 않았는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 W. F. Hegel)은
그의 저서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속 한 구절에서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경험과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결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역사로부터 배훈 교훈에 따라 행동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