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역사에서 빛의 축제로 [ 다카시 017 ]
1592년 10월,
남강 물결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창검이 부딪히던 진주성의 성루 아래,
김시민 장군의 북소리가 메아리치던 그곳,
돌격의 함성은 하늘을 찢고,
불타는 성벽 위에서
조선의 혼은 끝내 꺾이지 않았다.
붉은 등, 푸른 등, 황금빛 등
그 속에는 이름 모를 병사의 숨결에
고향과 가족을 부르는 통곡이 스며 있다.
진주시민의 울음은 강바람에 실려 흩어지고,
칼로 막지 못한 혼(魂)은 불이 되어
남강 위로 흘러내렸다.
세월이 수백 번을 돌아,
이제 그 강 위에 다시 등불이 뜬다.
밤하늘은 고요하고,
강물은 거울처럼 잔잔하다.
칠만여 개의 유등이 빛을 밝힐 때마다,
그 하나하나가 혼불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그날의 절규가 오늘의 노래가 되고,
비탄의 강이 축복의 강으로 바뀌었다.
이제 역사의 강은 피가 아니라 빛으로 흐르고,
전쟁의 기억은 평화의 축제가 되었다.
우리는 그 빛 아래서 웃고,
조상들의 혼은 그 빛 속에서 쉰다.
남강의 물결이 잔잔히 흔들릴 때,
그건 등불의 불꽃이 아니라
조국을 지키던 영령의 눈빛이다.
오늘의 진주는 말한다.
“당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 빛의 밤을 맞이합니다.”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는 곡창지대 전라도를 지키기 위해 조선의 명운을 걸고 싸운 대표적인 격전으로, 두 차례에 걸쳐 벌어졌다.
1592년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 때, 김시민 장군이 지휘하던 조선군은 성 안에서 남강에 등불(유등)을 띄워 강 건너편에 주둔한 아군에게 신호와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제2차 진주성 전투(1593년 6월) 이후, 전사한 7천여 군관민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진주 사람들은 남강에 혼등(魂燈)을 띄워 망자를 추모하고 충절을 기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주 남강유등의 시초로 전해진다.
오늘날의 남강유등축제는 그 옛 등불의 전통을 이어받아, 매년 가을 진주 남강과 진주성 일대에서 열린다. 강물 위에 수천 개의 등이 떠올라 마치 영령들의 혼불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등불 하나하나에는 평화와 추모, 감사와 소망이 담겨 있으며, 진주는 이 축제를 통해 “전쟁의 상처를 넘어선 평화의 도시”로 자신을 기억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