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촉석루에 앉아 [디카시 030]
진주성의 바람을 맞으며
촉석루에 앉으니
저 멀리 흘러간 시대가
오늘 내 가슴 한켠으로 돌아왔습니다.
돌담 틈마다 스며 있는
선조들의 숨결은 아직도 뜨겁고,
적의 조총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들의 결기는
나를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게 했습니다.
태어남은
어느 품에서 눈을 뜰지,
어떤 얼굴로 세상을 맞을지
아무것도 고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만큼은
스스로의 걸음을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마음을 비장하게 적셨습니다.
세상과 조금씩 멀어지는 시간
어떻게 살아서
또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다시 묻고 또 묻습니다.
김시민 장군처럼,
논개처럼 몸을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뿐인 마지막 걸음을
의로움으로 물들이는 일,
그 기회가 나에게 찾아온다면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설 수 있을까.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히,
그리고 다짐합니다.
남은 날의 호흡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등불이 되고,
누구에게는 따뜻한 바람이 되어
의로움이라는 길 위에
조용히 내려앉기를.
나는 오늘 묵묵히 물어봅니다.
‘나는 어떤 죽음을 통해
내 삶을 완성할 것인가?’
오늘(11.26.)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어느 부모님 아래에서 어떤 세상과 만날 지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좋은 세상에 태어나서 교사로 열심히 살았다. 이제는 나라를 위해 뛰던 젊은 날은 저물고, 퇴직 후에는 사회와 거리를 두며 고요한 시간을 더 많이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 지금의 나는, 충(忠)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과거보다 의(義)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순간들이 오히려 많아졌음을 느낀다.
세상과 가족에게 남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도 내가 떠난 자리만은 조용한 감사와 따뜻한 숨결로 남아 누군가의 마음을 가만히 감싸주는 그런 끝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