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1루에 서있다.

"야구여왕"을 재미있게 보면서

by 올제

TV를 켜면 여전히 가요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노래는 익숙하고, 순위는 대략 예상되며, 감동도 연출의 일부처럼 반복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시선은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나의 흥미를 끈 프로그램은 '극한 84', '뛰산' 등 마라톤 대회 참가 프로그램, 그리고 최근의 ‘야구여왕’ 같은 스포츠 경연 프로그램이다. 이쪽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각본이 없고, 다시 찍을 수도 없으며, 결과는 오직 그날의 몸과 마음이 만든다. 흘린 땀과 흔들린 호흡, 뜻밖의 실수가 그대로 이야기로 남는다. 그래서 자꾸 보게 된다.


< 야구는 단순한 경기다. >

야구는 홈에서 출발해 홈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출발한 자리로 무사히 돌아오면 그걸로 충분하다. 걸어서 들어오는 화려한 홈런이든, 간신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슬라이딩이든 결과는 같다. 여행도 그렇다. 집을 나서 낯선 길을 돌고, 새로운 풍경과 사람을 만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여행은 끝난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어떤 ‘홈’에서 태어나, 긴 시간을 돌아 결국 다시 그 자리로 향한다.


그래서 인생을 야구에 비유하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1루에 나가는 일이다. 안타를 쳐서 나가기도 하고, 포볼이나 데드볼처럼 내 뜻과는 다른 방식으로 출루하기도 한다. 안타는 박수를 받지만, 데드볼은 아프다. 그래도 기록에는 똑같이 출루로 남는다. 인생도 그렇다. 성취로 한 걸음 나아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상처를 안고 떠밀리듯 다음 단계에 서는 날도 있다.


< 2루와 3루로 가는 길은 더 복잡하다.>

부모나 선생님 또는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진루하기도 하고, 타이밍을 재어 도루로 훔치듯 넘어가기도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쉽게 나아가기도 하고, 혼자 결심하고 경계를 뚫고 나아가기도 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중요한 건 그 베이스 위에 실제로 서 보았다는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난 순간 이미 1루에 서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2루와 3루를 밟고, 결국 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투수의 견제처럼 우리를 멈추게 하는 시선과 조건을 살펴야 하고, 타자의 타구처럼 다가오는 기회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서두르다 아웃될 수도 있고, 한동안 베이스에 묶여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경기는 계속되고, 인생도 이어진다.


누군가는 아직 2루에 있고, 누군가는 3루를 향해 뛰고 있다. 나는 이미 퇴직을 했고, 나이로 보자면 6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중이다. 굳이 야구에 비유하자면, 지금의 나는 3루 근처에 서 있는 셈이다. 이제 더 빨리 뛰는 일보다 중요한 건, 상황을 잘 살피는 일이다. 견제구에 놀라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끝까지 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 지금 이 시점의 삶은 속도보다 방향이 먼저다.


아무래도 인생은 너무 쉬워서 어려운 경기인가 보다. 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젊은 시절 자꾸 다른 곳을 결승선이라 부르며 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어찌 태어난 인생인데 세상 구경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다. 몇 번의 진루와 멈춤, 몇 번의 아웃을 겪더라도 결국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그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오늘도 나는 그라운드 어딘가에 서서 다음 베이스를 바라본다. 돌아오기 위해, 제대로 떠나기 위해서.


표지사진 설명: 1975년도 초등학교 5학년 동생의 모습이다. 우리 형제는 어린 시절 모두 리틀야구선수를 경험하였다. 우연히 발견한 옛날 사진인데 동생은 가끔 투수로도 활동하였다. 동생은 이 사진을 무척 아끼고 애착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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