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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제 Aug 26. 2024

어린 왕자는 일요일에 여우를 만난다.

- 여우는 매일매일... -

아내는 최근 '굿 파트너'라는 드라마를 재미나게 본다. 이 드라마가 변호사라는 직업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사건들을 변호사 출신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 해서 나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연히 8회 차를 보았는데 급 관심을 가지게 된다. 드라마 속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어린 재희가 바라보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은 온통 거짓 투성이다.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너는 항상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여우와 친구가 된 것이다. 여우는 말한다. '길들이면, 친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라고 '친구가 소중한 것은 그를 위해 써버린 시간 때문'이라고 '길들인 것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다'라고 이제,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 하나도 여우는 소중하다.    

  

< 매주 일요일은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나는 날이다.>     

어느새 나는 어린 왕자이고 어머니는 여우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가장 의존하는 가족은 큰아들이다. 8년의 세월 동안 어머니는 평일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면 매주 일요일에는 어린 왕자를 기다린다. 어린 왕자는 매주 일요일 여우와 만나 근처 여행 다니고 맛난 점심 먹고 하는 시간을 보낸다. 어린 왕자가 오지 않는 날에 여우는 몹시 불안해한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못 만나는 날에 어린 왕자를 대신하는 새끼 여우를 보내곤 했다.      

< 새벽시장에 옥수수를 사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의 여우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 커피와 고구마와 옥수수 -

오늘 일요일은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신지 20일이 되는 날이다. 첫 면회를 시도해 본다.

커피, 고구마, 옥수수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다. 고구마는 어제 마트에서 사두었고 커피는 아내가 직접 내렸다. 그리고 나는 아침 일찍 새벽 시장에 간다. 옥수수를 사기 위해서이다. 평소 눈여겨보아 두었던 중앙시장 노점을 방문하였는데 다행히 부드럽고 쫄깃한 옥수수를 살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노점상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신다.     


“이제 살날보다 죽을 날이 더 바쁜데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 나는 돈 많이 벌 욕심 없다.


80대 중반의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 또래이시다. 그래도 아직 건강하기에 새벽같이 이런 노점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나는 고달픈 노점상의 할머니를 모습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시니 이렇게 새벽에 오셔서 일을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편하게 요양원에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이 할머니만큼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와 옥수수와 고구마를 준비해서 요양원으로 나선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의 컨디션은 괜찮아 보였고 면회를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컨디션이 나쁘면 식사도 못 하고 집에 가자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신다.

미국에 사는 여동생 부부와 서울에 사는 동생 부부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행복한 1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옥수수를 먹었다.

< 좋아하는 옥수수와 고구마도 먹고 멀리 있는 딸과 아들과 통화도 하고 오늘은 나의 여우가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 >

< 사람들에게는 나이에 따라 기쁨의 종류도 다르다. >

2~30대에게 부모보다는 친구와의 만남 또는 멋진 여행이 큰 기쁨이라면 80대의 부모는 자녀를 만나는 것이 그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 그 어떤 멋진 여행지보다도 큰 기쁨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의 큰 기쁨을 드리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소 좋아하시는 고구마와 옥수수를 맛있게 잡수신다.  20일 만에 만난 어머니에게 오랜만에 밝은 표정의 자식 자랑 고정멘트를 듣게 된다. 

  평소 절약정신이 투철한 어머니는 화장실에 불도 안 켜고 다니고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도 안켜신다. 그러한 어머니가 10만원을 선뜻 주시는 것은 아주 큰 고마움의 표시이다.  "나는 돈 필요없다. 손자하고 맛있는 밥 사먹어라"

 그리고는 한 말씀 더 하신다.


"맨날 먹고 자고, 나는 잘 지낸다. 바쁠 텐데 이제 안 와도 된다."


나는 의문이 생긴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서서히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식의 편안함을 바라기 때문에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한 것일까?


요양원 입소라는 나의 선택이 최선이 아닐 수 있지만, 요양원에서 잘 지내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은 다하고 있다고 싶다. 어린 왕자는 일요일에 여우를 만나지만 여우는 매일매일 기다린다.

 

내가 길들인 것에 대해 나는 항상 책임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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