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소통 vs 권위 사이”
‘호칭은 관계를 설정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을 어떤 호칭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설정한다. 상대방이 나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지 그리고 내가 상대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지를 통해, 단순히 관계의 설정을 떠나 나의 감정 상태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위적인 호칭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심리이다.
< 히딩크 감독의 기적, 호칭으로부터.. >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우리 축구 선수들에게 경기 중 서로 형, 선배 등의 호칭을 생략하고 이름을 직접 부르게 한 것 말이다.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뜯어고친 대표팀의 고질병은 수비 불안이나 골 결정력 부족 같은 게 아니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콜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중요했다.
국내 선수들의 선후배 간 엄격한 위계질서 때문에 매끄러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배 선수가 선배 선수에게 뭔가를 지시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주저하는 일이 많았고 조직력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히딩크는 운동장 안에서 소통할 때는 서로 이름만 부르도록 했다. 선배들은 당혹스럽고 얼굴이 굳어졌지만, 이 같은 특별한 조치는 월드컵 4강으로 만들어 놓았다.
<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간에는 닉네임으로 호칭을. . .>
나는 퇴직 후에 ‘올제’라고 불러달라고 지인들에게 부탁하였다. ‘올제’란 나의 닉네임이다. 올제는 ‘오늘 다음 날’로 즉‘내일’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퇴직하기 전 광주의 대안학교에 직원 연수를 갔었다. 그곳의 관리자는 자기 학생들이 모두 자신을 '올제'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직원과 학생들 모두 편하게 소통하는 현장을 목격하였다. 당시 나는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평소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나는 교직원 회의 시간에는 모두 닉네임을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소통과 협의는 서로 마음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직장 상사의 직함을 부르면서 하는 회의는 실질적인 소통은 어렵다. 모두 자신의 닉네임을 정해보았다. ‘고매’, ‘쩡아’, ‘보름이’ 반려견 이름, 집에서 사용하는 호칭 등 등으로 닉네임을 정하고 직원회의를 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닉네임을 부르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 회의장의 분위기도 편안해지고 자신의 의견을 마음 편하게 제시하여 다양한 해결책이 나오곤 했다.
< "oo 씨"보다는 "oo 님"이 좋다.>
‘~씨’라는 호칭이 존칭 같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이 상사나 윗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무언의 규정이 정해져 버려 어린 남자가 나이가 많은 선배에게 ‘~씨’라는 호칭을 쓴 것만으로도 싸가지가 없는 무개념으로 찍혀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여름 돌로미티 여행하는 동안에 젊은 남자 인솔자가 "OO님"이라는 호칭으로 우리 일행들을 불렀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은 가지면서 상대방을 적절히 존중하는 태도인 것 같아 호칭으로는 균형 잡힌 것 같아 좋았다.
나의 친구의 모임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게 4명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모임 친구도 4명의 친구와 부부, 고등학교 친구의 모임에도 4명의 친구와 부부, 교사 계 모임의 동료도 4명의 친구, 퇴직 후 매주 산행하는 동료의 모임도 4명이다. 알고 보면 4명이 모이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차량 탑승에 4명이 적당하고 식사하기에도 한 테이블로 음식을 나누어 먹기에 편리하고 일정 조정하기에도 3명의 동료와 협의하니 편리하다.
친구 사이의 호칭은 ~씨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퇴직 전의 직함으로 부른다. 다만 친구의 부인은 남편 친구를 ~씨라고 부른다. 부부는 동등한 사이이기에 나이와는 상관없이 ~씨라고 부르는 것이 통용되지만 ~씨보다는 ~님이 더 좋다.
< 제 남편도 아닌데 서방님으로 불러야 하나요? >
한가위 명절을 보내면서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즐겁게 지냈다. 기존의 가족 호칭으로 서먹하고 불편함을 느낀 적도 있다. 부르기 적당하고 마땅한 호칭이 없어 가족이면서도 가족 같지 않은 서먹한 관계로 남을 수도 있다. 남성 중심적 가족 호칭은 각자 집안에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도련님, 아가씨, 처남, 처제, 시댁, 처가에 대한 남녀 불평등으로 대안이 필요하다는 뉴스도 나온다.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처럼 남편의 형제들만 높이는 호칭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 초기에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은 도련님,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은 아가씨라고 부르면 합당하다. 남편의 동생이 결혼하면 도련님이 아니라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심지어 시누이의 남편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멀쩡한 내 서방을 두고 왜 애먼 사람에게 서방님이라고 하는지…. 남편 여동생의 남편은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표준 호칭이지만 설문 응답자의 62.7%는 ‘고모부’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렇게 집안의 호칭은 부르는 가족과 불리는 당사자가 정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드라마 ‘우리 집’에서 홍사강은 똑똑하고 당찬 며느리인 심리상담의 노영원(김희선)을 노 선생이라 낮추어 부른다. 그리고 신경외과의사인 자신의 아들인 최재진(김남희)에게는 최 박사라고 높여 불렀다. 그리고 드라마의 마지막에 시어머니인 홍사강은 며느리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노 박사라고 호칭을 높여 불렀다. 가족 간의 평등한 언어 사용 확산, 가족 간 화합과 소통을 위해 현실을 반영한 가족 호칭을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는 올제, 또는 올제님, 갑장인 친구사이에는 이름으로 그리고 장쌤으로 불리는 것이 제일 편하다.
< 영어단어 'president'는 왜 대통령으로 호칭되었을까?>
원래 ‘president’는 “회의를 주재한다”라는 뜻의 영어 ‘preside’에서 유래된 용어다. 우리말로 옮기면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나 ‘의장’ 정도로 이해되는 말이다.
president를 ‘대통령’으로 번역한 것은 일본이 만든 번역어이다. 이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통령(統領)’으로부터 비롯된 말이다. 일본은 ‘president’라는 영어를 번역하면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통령’이라는 용어에 ‘클 대(大)’ 자 한 글자를 더 붙여서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president’의 본래 의미를 살려 단순히 ‘국가 의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면 좀 더 많은 의견을 경청하는 민주적인 사회가 되었을 것 같다.
P.S.: 사진설명_ 경남 산청의 둔철산의 와석총에 있는 기암괴석으로 누군가에 꼭 말을 하고 싶은 동물의 형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