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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한 사회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by 올제

나는 재작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여동생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너무나도 모범생이 조카는 보스턴의 금융회사에 다닌다. 어느 날 저녁 2가지 동영상 자료를 보여준다. 하나는 요세미티 엘 캐피탄 절벽을 맨손으로 오른 “토미 콜드웰” 이란 사람의 영상이었다. 엘카피탄은 914m로, 세계 최고층 건물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의 828m보다 높다. 미국에서 태어난 조카는 청교도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서인지 가정적이면서도, 도전적이고 개척적인 미국인의 기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른 하나의 영상은 마이클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영상을 보면서 조카와 함께 서로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인의 학교교육은 토론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았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자료를 검색하여 준비하고 서로 토론하면서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방식인 것 같았다. 방문 당시에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기에 나도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고 조카와의 대화에서 토론과 대화의 즐거움을 느낀 적이 있다. 그리고 다음 날 스탠퍼드 대학에 갔었는데 축제분위기 같은 시위행렬을 만난 적이 있다. 선진국이란, 질서 있는 사회란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스탠퍼드 대학 방문에서 학생들이 시위하는 현장을 목격하였다. 시위라기보다는 시위 놀이처럼 보였다. >


도대체 공정과 상식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요즘은 서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스터디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매해 차근히 읽어보았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치 철학서이다. 저자가 1980년부터 진행한 '정의'(Justice)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정의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2. 최대 행복 원칙: 공리주의 3. 우리는 자신을 소유하는가?: 자유지상주의 4. 대리인고용: 시장논리의 도덕성 문제 5. 동기를 중시하는 시각: 이마누엘 칸트 6. 평등을 강조하는 시각: 존 롤스 7. 소수집단 우대 정책 논쟁: 권리 VS 자격 9. 정의와 도덕적 자격 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10. 정의와 공동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샌델교수가 미국 대학들에서 사용되는 주고받기식 교수법은 교수의 강의 내용을 조용히 필기하고 교수도 학생들의 질문이나 참여를 유도하지 않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아주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주제 또한 한국 국민들이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더 크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실제로 2019년 전국대학생 의식조사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점은 부정부패가 1위로 나타났다고 한다.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는 행복, 자유, 미덕을 들 수 있다. 즉, 정의가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혹은 사회 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움을 보장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사회에 좋은 영향으로 끼쳐야 하는지로 정의로움을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읽어본 내용 중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을 발췌하여 보았다.

< 진로교사시절에 이 책을 활용하지 못한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학생들과 토론하기에 너무나 좋은 소재가 무궁무진한 토론수업의 바이블 같은 주옥같은 내용들로 가득했다. >


< 도덕적 딜레마 >

긴장에 직면했을 때, 옳은 행위에 대한 판단을 재고하거나 애초에 옹호하던 원칙을 재검토할 수 있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 자신의 판단과 원칙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판단에 비추어 원칙을 재조정하기도 하고, 원칙에 비추어 판단을 재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행동의 세계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다시 이성의 영역에서 행동의 세계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바라 도덕적 사고의 근간을 형성한다. (53 page)


< 자유지상주의 입장에서 본 정의 >

경제 불평등은 미국이 다른 어느 민주 국가보다 훨씬 심각하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불평등은 부당하므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보다 많이 부과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강요나 사기 행위가 아닌 시장 경제에서 자유로운 선택으로 얻은 부라면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97 page)


공리주의의 논리를 따라 정의를 행복의 극대화라고 가정하에 빌게이츠로부터 100만 달러를 거둬 궁핍한 사람 100명에게 1만 달러씩 나누어 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첫 번째 반박은 높은 세금, 특히 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이 일과 투자에 대한 의욕을 꺾어 생산성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98 page)


둘째는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위가 부당한 이유는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개인에게는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한, 우린 자신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99 page)


< 이마누엘 칸트가 말하는 도덕 >

많은 사람들에게 쾌락과 행복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열렬히 지지한다 해도, 다수가 특정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법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다른 동물처럼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든다면 이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직 식욕과 기타 욕구의 노예로 행동할 뿐이다.

모든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66 page)


< 롤스의 '정의론' >

능력주의라는 명분에 부합하게 자유 시장을 통해 소득과 부가 정당하게 배분되려면 재능을 계발할 기회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모두 같은 출발선에게 경주를 시작할 수 있을 때에만 승자는 포상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32 page)


<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 자연이 낳은 것을 정부가 바로 잡을 수 있는 생각은 매혹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탄하는 커다란 불공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이 생겨나는지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무하마드 알리는 하룻밤에 수백만 달러는 번다는 사실도 분명 공정하지 못하다. 하지만 알리는 보며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불공정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247 page)


<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할까? >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일본이 저지른 위안부 여성 만행, 호주인들의 토착민에 대한 역사적 행위, 미국의 노예제 등에 대해 국가는 과거의 역사적 잘못을 사과해야 할까? 의 문제에 공개사과에 대해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는 정치공동체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하여,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이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312, page)


반대하는 사람은 논리는 앞선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현대 세대가 사과할 필요는 없으며, 사과할 수도 없다는 논리이다. 내가 하지 않은 행위를 내가 사과할 수는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내가 어떻게 사과하 수 있단 말인가?(313, page)


<정의와 공동체의 선 >

정의란 공동선을 추구하는 도덕적 참여 정치라고 결론을 내린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면, 사회 전체를 염려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민 의식, 희생, 봉사는 필수요소이다. 둘째는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시장은 생산활동을 조직하는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이다. 미국인들의 삶에서 불평등의 심화가 걱정되는 중요한 이유는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참여 정치이다. 도덕적 참여 정치는 시민에게 더 많은 이상을 붙어 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유망한 기반을 제공한다 (381~390 page)



< 내가 방문한 플레젠트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시간 떨어진 실리콘 밸리 주변의 소규모 도시로 전형적인 미국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서... 독서평 >


정의를 규정(規定)하기가 쉽지 않다. 옳고 그름을 구분 지어 도덕의 문제로 볼 때도 ‘폭주하는 기관차’나 ‘아프가니스탄의 염소폭동’의 사례처럼 정의롭다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고 오히려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재화를 분배하는 세 가지 기준이 복지, 자유, 미덕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기준으로 얼마나 정의롭게 재화를 배분하는 문제는 늘 공정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복지의 극대화를 언급하기 위해 밴담의 공리주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이야기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의라고 할 때는 개인의 심각한 자유가 침해당한다. 이것을 정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징벌적 손해제도라는 개념도 소수의 피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생겼다. 연료탱크의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다수(생산자와 피해를 입지 않은 고객)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묵인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다수의 복지와 다수의 이익이 정의의 기준이 되기 어렵다.


마이클 조던이나 무하마드 알 리가 하룻밤에 엄청 많은 수익을 하룻밤에 올리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에도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특정한 기업이 너무 많은 돈을 벌어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도 반론이 거세다. 마이클 조던이나 무하마드 알리의 수입이 너무 많아서 불평등사회를 조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일용직을 하면서 평범하게 산다면 많은 다수는 이들을 보고 환호하는 즐거움을 뺐는 일이고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 사회가 역동성을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특정기업의 수익에 세금을 부과하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일과 투자에 대한 의욕을 꺾어 생산성감소로 이어지면 경제성과도 줄어들고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행위가 기본권침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존 롤스의 입장을 보면 마이클 조던이나 무하마드 알리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특혜를 받았으며 조던과 알리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노력한 사람들도 그만큼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등하지 못한 상황이다고 주장한다. 선천적 재능의 분배와 사회적 여건의 우연성은 부당하기 때문에 제도상의 질서는 항상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며 '부정의는 반드시 인간의 손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질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지의 장막'을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살다 보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유·불리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양궁 선발전처럼 계급장 떼고 경쟁하면 진정한 공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주장이다.


칸트의 도덕성의 기준은 '정언명령'에 따른 이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칸트는 이성에 근거하지 않은 자유로운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복종의 선택이며 욕구의 노예로 행동한다고 했다. 내가 아이스크림은 선택한다면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하지만 어떤 맛이 잘 어울리는지 파악하는 행위일 뿐이며 욕구에 따른 행동일 뿐이라고 하면서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올림픽경기에서 한국의 양궁선수들이 뛰어난 기량으로 우승하는 것을 보고 “공정한 선발과정으로 이루어낸 뛰어난 성과”라면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어 왔다. 공정과 상식이란 구호로 대통령이 된 윤대통령에게도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이들도 있다. 야당 대표도 도덕적 문제와 관련하여 정의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치란 공정과 정의를 넘어 공동체의 선을 위한 최선을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공정과 자유, 복지는 서로 상충하는 경향이 있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가면 개인의 자유가 조금 줄어들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부각하다 보면 정의와 공정이 다소 훼손될 수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공정, 자유, 복지라는 3가지 개념을 적절히 잘 적용시켜 재화를 분배하는 방식이 그 나라의 정치제도인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만들고 공정과 정의보다는 자유에 더 중점을 둔 제도이어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만든 것 같다.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공정과 자유, 복지의 균형을 잘 맞추어 가는 정치였으면 한다.

< 영화 '변호인'에서 변호사 송우석이 국보법 사건에 휘말린 진우를 변호하는 장면 >

영화 '변호인'을 보게 되면 가난한 형편 때문에 국밥집에서 국밥 값을 떼먹고 도주하는 비 도덕적인 행동을 한 송우석은 먼 훗날 변호사가 되어 국가 권력의 부당한 사건에 용기 있게 나서 변호사를 자처해 정의로운 사회에 기여한다. 도덕적 딜레마와 정의로운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영화여서 무척 감명 깊었다.


마이클 샌들 교수는 정의는 공동체의 선에 기초하며 공동체의 선은 도덕적 참여 정치로 완성된다고 하였다. 도덕적 정치 참여가 이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의 중의 하나 임에 분명한 것 같다.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의 절규에 찬 명대사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표지 사진설명: "Our teachers hit it out of the park." 플레젠튼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한 슬로건이었다. 우리 선생님들은 야구공을 운동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그만큼 능력이 대단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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