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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uomo, uomo gia fui"

"한때는 마라토너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by 올제

어느 날 지리산 등산을 가는데 함양 마천을 지나는 시점에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다.

"미 대륙 64일간 3500km 횡단 완주" 77세 함양 마라토너의 투혼. . .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이런 자료가 있었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마을 원지상(77)씨가 64일 만에 미국 대륙 마라톤 횡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 1일 귀국했다.

7일 함양군에 따르면 미국 대륙 횡단을 목표로 지난 2024년 5월 20일 출국했던 원지상 씨는 미국 서부에서 출발해 매일 50km를 달려 64일 만인 7월 26일 동부에 도달하는 총 3500km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한 동안 잊고 살았던 마라톤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2024년 갑진년 (甲辰年)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간다. 열심히도 달렸던, 마라톤과 함께 했던 나의 최전성기인 젊은 시절 기억을 되살려 본다.


< 마라톤과 함께 한 20년, 그리고 공정(公正) >


나의 인생에서 마라톤이란 운동에 심취해 있었던 적이 있었다. 10회의 풀코스(42.195Km)와 약 40회의 하프코스 그리고 5회의 10Km 마라톤 완주를 했다. 최초는 2001년 진주마라톤대회이며 최고의 성적은 2003년 서울동아마라톤대회에서 3시간 24분에 완주한 것이며 가장 늦은 대회참가는 2019년 합천 마라톤대회에서 학생, 학부모, 그리고 학교장으로 내가 함께 참여한 대회이다. 이 대회를 끝으로 약 20년간 마라톤과의 인연은 멀어져 갔다.


내 나이 만 38세에 처음 시작한 마라톤은 만 57세까지 약 20년 동안 지속되었고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은 40대 초였다. 마라톤의 매력은 공평(公平)함이었다. 당시 왕성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사회와 직장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내가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불공평한 사회현실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 불만을 표출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마라톤은 내가 노력한 만큼 기록으로 보답해 준다는 매력에 빠져들어 헬스장에서 트레드밀로 훈련을 하게 되고 점점 흥미를 느꼈으며 기록은 날로 좋아졌다. 그리고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여 열심히 운동에 몰두하게 되었다.


마라톤동호회에서 대회를 출전하면 늘 1,2위를 다투는 정도로 마라톤은 나와 잘 맞는 운동이었고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報償)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마라톤을 하는 순간에는 모든 잡념은 잊고 오직 시간 배분과 나의 체력 안배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달린다. 그리고 마라톤대회에 가면 옆에 모든 잡념과 세상 잡소리는 안 들리고 내 옆에 뛰는 다른 사람들의 호흡소리만 들린다. 마라톤의 기록증과 메달은 그동안 내가 쏟았던 노력과 훈련에 대해 내가 보상받는 '선물'이었다. 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운동인 것 같아서 연습을 하면 할수록 기록은 향상되었고 그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 한때는 내 마음속의 영웅은 이봉주선수였다. 나의 영웅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그리고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 새로운 꿈이 생겼다. >


세계 3대 마라톤대회인 보스턴 마라톤대회와 베를린마라톤대회, 그리고 뉴욕 마라톤대회를 가보아야겠다는 꿈이 생겼다. 모든 마라톤의 꿈의 대회라고 여기는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아마추어 중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서브 3 (3시간 이내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의 기록과 평일 미국에 갈 수 있는 시간적 여건이 되어야 한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2003년 3월 16일 2003 동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3시간 24분 41초를 기록하고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기록에 근접하였다. 요즘은 마음을 먹는 다면 휴가를 내고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직장의 분위기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기록에 따라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당시 43세인 나는 보스톤 마라톤대회 참가기록(3:15)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완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차를 타고 가도 30분 이상 가야 하는 거리이고 한번 뛰고 나면 무릎과 관절에 무리가 많이 간다. 2004 전주-군산 마라톤대회 풀코스를 다녀와서 부상을 당했다. 마라톤에 전념하다 보면 더 나은 기록을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인다. 결국 기록에 대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 마라톤이 인생과 비슷하다는 비유가 있듯이 처음부터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자제심과 자신의 몸 컨디션을 잘 조절하면서 꾸준한 페이스로 완주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제일 많다. 누구나 30Km까지는 완주할 수 있지만 35Km부터 마지막 42.195Km까지가 진짜 마라톤인 것이다. 인생도 멋진 인생은 35Km 이후의 인생이 진짜 인생이다. 꾸준한 페이스로 35Km 이후를 생각하면서 완주할 계획으로 인생도 달려야 한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자 극한의 운동이어서 몸에 부상을 당하기 쉬운 운동이기도 하다. 족저근막염, 장경인대염은 마라토너에게 늘 위협이 되고 이런 부상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처음부터 취미로 건강 달리기를 하였다면 부상의 위험도 없이 즐겁게 달리기 할 수 있었지만 40대의 나는 혈기왕성하여 승부와 경쟁을 즐겼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도 많았다. 보스턴과 베를린에서 마라톤을 해보고 싶다는 꿈도 부상과 직장현실 때문에 접었다.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야구부 학생들과 함께 뛴 마지막 마라톤대회의 추억 >


부상으로 마라톤을 한 동안 쉬었다가 다시 대회에 참가한 것은 2019년 합천 마라톤대회였다. 합천에서 공모 교장으로 취직하던 중 합천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우리 학교 운동부 학생, 운동부 학부모, 운동부 감독, 코치 그리고 학교장이 모두 참여하였다. 나의 교육철학 중 하나는 학생과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학생과 함께 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방적인 지시는 교육적이지도 않고 효과도 없다. 운동부 학생들과 함께 출전해야 교육적이다. 마라톤대회를 준비하면서 시골학교에서 제공해 주는 사택(舍宅)에 머물면서 매일 아침에 달리기 연습을 하였다. 운동부 학생들도 나의 모습을 보고 긴장하였다. 10대의 운동하는 학생이 50대 후반의 교장선생님보다 마라톤대회에서 더 나쁜 기록을 가진다면 창피한 일이다. 나도 승부근성이 발휘되어 마라톤이란 운동에서는 지고 싶지 않아 매일 열심히 운동하였다.


2019년 4월 합천마라톤대회에서 나는 10Km에서 53분의 기록으로 완주하였다. 우리 학교 전체 참가 운동선수 20명 중에서 2등으로 완주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운동부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는 이후 초등학교 야구를 한 경험을 살려 한 달에 한 번씩 학생들을 위해 야구공 100개씩 배팅연습용으로 던져주었다. 배팅 공을 던져준 뒤에는 한 달 동안 팔이 아파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은 내가 던져주는 배팅볼에 무척 진지하게 연습하였고 우리 학교는 NC 다이노스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와 시타를 신청하는 멋진 이벤트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멋진 이벤트는 코로나 때문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프로야구 중단사태로 취소되고 말았다.


< 야로중, 마라톤대회를 삶의 교육현장으로 활용하다. 출처 기사본문 - 경남도민일보 동그라미 속에 필자자의 모습이 보인다. 운동부 감독과 코치는 같이 몸을 구부린다. >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마라톤이란 운동은 공평하고 공정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니 이 역시 공평하고 공정한 운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만 열심히 운동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열심히 운동을 하였지만 나 만큼 기록이 나오지 않은 것은 내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가가 다르기 때문이었고 기회의 불평등이 이미 생긴 것이다.


세상에 완전한 공정과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여 흥미를 찾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이제 6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제는 건강을 위해 취미로 다시 마라톤대회에 나가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단테의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으로 안내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때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도 한때는 마라토너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인생 최전성기에 뒤를 돌아다보니,
문득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데
저 숲 속에서 갑자기 표범이 나타났다.
그것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어두운 숲 속을 헤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주위를 돌아보니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서 있었다.
그것은 권력욕에 휩싸인 인간의 모습이었다.

자포자기하고 있는데
다시 암늑대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사악함과 교만이었다.

이윽고 저기 멀리서 누군가
나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누구십니까?
인간이라면 저를 구원해 주시고
귀신이라면 멀리 물러가 주십시오"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단테에게 다가서는 이는
단테에게 이렇게 말한다.

"Non uomo, uomo gia fui" 한 때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마라톤을 즐겼던 젊은 시절, 나의 최전성기를 돌아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니 '욕망'과 '권력욕'과 '교만함'으로 머릿속을 채운 나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반성해 본다.


표지 사진 설명: 모두 50개의 완주 메달이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는 2001년 진주마라톤대회에서의 첫 마라톤 메달과 2002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 최고 기록을 세운 메달 그리고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온 2003년 춘천마라톤대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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