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축구를 좋아하는가?"
우리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이다.
네덜란드의 언어학자 요한 하우징어는 인간의 정의를 호모 루덴스라고 불렀다.
“모든 것은 놀이이다.”
고대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행위를 ‘놀이’로 부르며 그것을 지혜로 여겼다. 일부 사람들은 놀이를 천박하다고 생각하지만 놀이 개념은 이 세상의 생활과 행위에서 분명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왔다. 우리 문명은 놀이 속에서 생겨나고, 놀이로서 발전해 왔다.
도구로 상징되는 노동에서 벗어나 단지 ‘놀이’를 위한 움직임에 전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놀이하는 인간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은 놀이에 진심이다. 수없이 많은 놀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놀이를 계속 만들어 낸다. 놀이는 절대 가볍지 않다.
< 우리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
골을 넣는 것이 좋거나, 드리블하는 것이 좋거나, 패스를 하는 것이 좋거나, 함께 하는 운동이라서 좋거나,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다.
모두가 같은 이유로 이 운동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겠지만 서로 다른 이유가 모여서 하나의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 이 또한 축구의 큰 매력이 아닐까? 나는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를 만들어가고 필드 안에서 열정을 다해 뛰는 것이 즐거워서 더욱더 깊게 빠져들었다.
첫째, ‘규칙의 단순함’은 축구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놀이에 더 몰입한다. 특히 몸으로 하는 놀이에 더 몰입한다. 축구선수들의 거의 날 것과 같은 움직임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축구는 ‘단순함과 특수함의 공존’이다. 단순하면서도 특수한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더욱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공과 발만 있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단순한 스포츠로 시작되었고 네모난 축구장을 나가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제약 없이 공을 쫓아 뛰어다닐 수 있는 단순한 규칙만이 존재했었지만 축구경기는 셀 수 없는 전술들과 전략이 공존한다.
둘째, 인간은 스포츠에서 행해지는 경쟁을 통해, 전쟁에서 느끼고 싶은 쾌락을 대리 만족한다
인간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를 전쟁과 비유하며 설명하곤 한다. 실제로 중요한 더비(Derby) 경기들을 보며, 사람들은 그것을 ‘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필드 위를 ‘전쟁터’라고 일컫는다. 감독은 ‘장군’을 연상시키고 그가 짜내는 전략과 전술이 승패를 좌우한다. 그의 명령에 따라 필드 위에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때로는 ‘용병술’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상황을 역전시키려 든다. 국가라는 프레임이 부가되고 전 세계를 지구촌화시켜 국가별 경기에 나서는 선수를 전사라고 부른다.
셋째, 축구를 보는 관중은 온몸으로 경기에 관여한다.
연주회에서 음악을 듣는 행위와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행위와 경기장에서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다른 경험일 수 있다. 연주회와 미술관의 관객들은 듣기와 보기에만 집중하지만 축구경기를 보는 관중들은 온몸으로 경기에 관여한다. 관중들은 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즉 축구는 관중에게 공존의 기회를 준다. 관중들에게 ‘그’ 때 ‘그’ 스타디움에서 ‘그’ 경기를 직접 본 체험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다시 일어나지 않을 아우라적 경험 그 자체이다. 매 경기의 승패에 따라 관객들은 비극 또는 희극을 체험하는 것이다.
< 팀을 이기는 개인은 없다. >
프로팀, 국가대표팀과 다르게 아마추어 동호회 축구를 즐기는 핵심적인 3요소는 배려심과 연결 그리고 소통이다.
첫째는 배려심이다.
비슷한 실력들의 동호회에서는 자리다툼이 은근히 있다. 누구나 공격포지션을 하고 싶어 하고 수비는 싫어한다. 더구나 골키퍼는 제일 하고 싶지 않은 자리이기도 하다. 추운 바람이 부는 겨울철과 한 여름철 땡볕에서 골대아래 가만히 서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공격과 수비 그리고 골키퍼는 서로 교대하면서 동료를 위한 배려심을 발휘하는 것이 동호회를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다.
둘째는 연결이다.
축구가 재미있는 것은 서로 패스웍을 통해 상대방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화려한 개인 기술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멋진 골을 넣는 일은 멋지지만 패스를 통해 주고받으면서 빌드업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더 큰 기쁨을 주며 동료와 함께 누릴 수 있다. 이기고 싶은 욕심으로 자신의 동료를 믿지 못하고 패스를 하지 않으면 연결은 무너지고 게임도 지고 만다.
셋째는 소통이다.
축구를 하다 보면 당연히 실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동료는 비난과 험담보다는 격려와 응원의 한마디가 필요하다.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동료의 실수를 비난하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혼자 잘하는 운동을 하려면 축구보다 골프나 테니스가 더 어울린다. 축구는 11명이 서로 소통하고 연결하는 팀 경기이다.
배려심과 연결, 그리고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그 동호회는 20년 이상 잘 유지될 수 있다. 진주 63 클럽이 바로 그러한 팀이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우리 진주 63 클럽은 선수가 11명이 남을 때까지 즐겁게 운동할 것이라고...
< 63 토끼들의 전쟁이 시작되다. >
4월 12일 토요일 전국의 63 토끼띠들이 모여 동호회 축구대회를 한다. 관중이 아니라 전국 각 지방을 대표하여 전사로 참여한다. 참가팀은 서울, 인천, 김포, 고양, 파주, 속초, 여주, 동두천, 이천, 대전, 순천, 해남, 제주, 남해, 진주, 울산, 거제, 부산이다. 진주 63 클럽은 2000년 9월 1일 창립하여 전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63 토끼 클럽이다. 이번에 전국대회에 참여하는 팀은 전국 63 클럽 중에서 참가를 신청한 18개 팀이다. 조별 리그를 거쳐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진주 63 토끼클럽은 선수출신이 없는 순수 아마추어로 구성되어 있어 늘 조별 예선에서 1승을 기록하지도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내곤 하지만 63 클럽 중에서 가장 형님으로 첫 대회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고 전국 최초의 자부심은 대단한 동호회이다.
은퇴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과 소통이다.
가장 원시적이고 단순한 축구가 건강과 소통을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운동이다.
표지사진 설명: 04.12.(토) 대전에서 제6회 전국 63 FC 축구대회가 열린다. 영남지방의 대형 산불로 대부분의 축제행사는 취소되었다. 63 FC 축구 대회가 취소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같다. 전국대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사진의 배열에서 제일 오른쪽이 회장이며 제일 왼쪽은 감독이다. 모든 팀들의 프로필 사진을 그렇게 배치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쉽지 않겠지만 이번대회에도 목표는 1 무승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갈 1번의 무승부만 필요하다. 우리는 한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