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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징과맥락 Jul 03. 2022

영화 헤어질 결심 후기, 세세한 상징 해석 리뷰 1/2

Part 1

드디어 올해 내가 가장 기대하는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훌륭한 감독들도 있지만, 대한민국 가장 대표하는 두 명의 영화감독을 말하자면 단연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라 할 수 있다.


두 감독 모두 훌륭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보다 좀 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고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의 사용 또한 간결하고 비교적 박찬욱 감독의 영화보다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대중성도 어느 정도 챙기면서 다양한 상징들이 복잡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작품에 녹아있는 상징들을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번 [헤어질 결심] 또한 다양한 상징들이 난잡하게 뒤섞여있어 분석의 의지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괜찮았고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보다 굉장히 차분한 느낌이 드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전반에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다양한 상징과 복선들이 잘 버무려져

‘박찬욱스러움’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

영화를 보신 분들만 읽으시길 권장드린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포함



우선 영화에 나오는 상징들은 매우 많다.


정리하면 산과 바다, 원전, 해준(박해일)의 감시 행위, 안개 등등..

이 영화에서는 상징이 난무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오는 상징들


상징이 많다면 자칫 이야기가 부실하고 오히려 상징만이 강조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위험성을 박찬욱스럽게 차단해버리고,

하나의 기이하고 새로운 '사랑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1.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세계와 대상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 영화는 산과 바다라는 메타포를 통해 세계와 대상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고

각각의 인물이 어떠한 방식을 추구하고자 하는지를 말해준다.


사실 우리는 세계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개발한 과학 지식의 척도와 인지 체계 안에 있는 내용만을 알 뿐이다.


인류의 지식 체계와 인지 체계 안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는 알 수 없다.

물론 문명의 발전, 과학과 기술의 발전 등으로 "앎의 영역"을 넓혀왔고 앞으로도 넓혀갈 것이지만,

앞으로도 인간이 확정할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의 영역(불확정적 영역)"은 계속해서 존재했고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각각의 삶에서 이 "불확정성"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은 개인마다 상이하다.


어떤 사람은 이 "불확정적인 요소"를 아예 무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와 정의체계 아래에서

대상을 규정하려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아이가 엄마와 그저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오히려 "이런 단어는 나쁜 단어야, 쓰지 마."라는 식의 반응만 보이는 사람이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겠고,

(나쁜 단어, 좋은 단어라는 척도를 통해 아이의 감정 표현에 응답하지 못하고 그저 아이를 지적만 한다. 

이는 단지 감정 교류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를 교정의 대상으로만 정의하는 행위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행을 간 것임에도

"즐거움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환경과 시간을 가만히 즐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빡빡한 일정에만 집중하다 보니 

진정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 또한 그러하다 할 수 있다.

(즐거움의 효율이라는 척도로 여행 도중에 발생하는 모든 행동과 사건을 정의하고 판단내리는 태도)


또한 상대방이 자신의 하급자라는 점 하나만으로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수한 성질과 특성을 갖고 있는

타인을 오직 "하급자"라는 존재로 규정한 후,

함부로 행동하고 착취하는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계급의 상하 관계라는 척도로 상대방을 정의 내리려는 태도)


이들은 모두 외부의 대상을 자신이 갖고 있는 단 하나의 척도를 통해 판단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특정한 척도만으로 정의 내려질 수가 없다.


이렇게 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이듯,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세계, 그리고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 정의내려지고 규정될 부분도 물론 존재하지만,

함부로 규정하고 정의할 수 없는

'불확정적인 영역' 또한 조금씩 갖고 있다는 것이다.



2. 산과 바다


앞선 논의에 이어 이 영화에서 대두되는 "산과 바다"에 대해 논하자면,


산은 모든 불확정적인 영역을 무시하고 없애려는 삶의 태도,

혹은 그러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서래(탕웨이)에게 살해를 당한 그녀의 남편,

기도수(奇都秀)는

영화가 사용하고 있는 "산"이라는 상징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60살,

남성우월주의의 문화와 군대의 관습이 모든 사회 조직에 통용되는

60 ~ 80년대의 한국 사회를 정통으로 겪은 남자,

기도수(奇都秀)는 자신의 아내(서래, 탕웨이)를 단지 여자라는 이유,

그리고 그녀의 출신과 배경이 자기보다 보잘것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심각한 학대를 일삼았다.


그리고 그의 모든 소집품(가방, 지갑 등등)에 자신의 이름을 뜻하는 이니셜 "KDS"를 새겼는데,

이 이니셜을 자신의 아내, 서래(탕웨이)의 몸에도 새겼다.


기도수는 "서래"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가진 무한한 요소와 가능성을 모두 무시한 채,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서래"라는 존재를

단지 "기도수의 소집품"으로 정의 내버린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단순히 누군가의 소집품으로 단정 지어지는 기억은

신체에 가해진 폭력과는 별개로

서래에게 정신적인 고통으로 남았을 것이다.


서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확정적인 요소가 남편에 의해 '0', 제로로 축소되는 삶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기에 남편, 기도수(奇都秀)를 죽인 것이다.



*

기도수(奇都秀)가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 산의 모양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산과 바다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산과 바다의 의미에만 초점이 갔지, 산의 모양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산은.. 그냥 우리가 등산하는 평범한 산 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수(奇都秀)가 오르다 죽은 산은 내 머릿속에서 그리던 산과는 너무나 달랐다.


기도수가 떨어진 산 - 영화 '헤어질 결심' 中


산의 높이는 층수로 따지면 무려 138층 높이에,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아예 없다.

왜냐하면 산 자체가 거대한 기둥과 같은 바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예상을 빗나가는 산의 모양은 앞서 얘기했던 불가지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남성성, 즉 "남근"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불가지의 영역을 모두 무시하고

대상을 완전히 정의 내리며 살아가는 그의 태도의 뿌리에는

"폭압적인 남성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산의 윗부분은 평평하다는 점에서 "잘려진 남근"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이는 서래(탕웨이)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재단하는 폭압적인 남성성을 파괴했다, 남근을 잘라버렸다."라는 의미로 확장이 된다.



 

다시 산과 바다의 이야기로 돌아와,

산에 대비되는 바다의 이야기를 해보자.


산은 앞서 말했다시피 대상에 대한 불확정적 영역을 없애고자 하는 태도를 상징하며

세계와 대상을 "확신과 규정"을 통해 정의하고자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산에 대척점에 놓인 바다는 오히려 세계에 대한 "확신과 규정"을 부정하는 의미를 갖는다.

바다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규정과 정의 체계가 "불확정"으로 와해, 붕괴되는 공간이다.


서래(탕웨이)는 "규정과 정의 내려짐"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와 상처가 있다.

그래서 바다로 향한 것이고,

결국 바다에 의해 잠식되어 자살을 하게 되는,

100%의 불확정성 속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던져버린 것이다.


헤어질 결심 中 - 바다로 가는 서래




하지만, 바다가 산보다 옳은 것일까?

우리 인간은 모든 대상을 정의 내리지 않고, 

규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모든 대상을 정의 내리지 않고는 제대로 된 삶을  수 없다.


인류 문명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세계를 향한

확정과 정의 내림을 통해 구축된 지식 체계의 결과물이다.


우리의 세상과 그 안에 존재하는 여러 존재들이

불확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우리가 세상과 대상에 대한 규정짓는 것을 포기해버린다면, 

문명의 발전은커녕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또한 성립할 수가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무엇보다

내가 타인을 어떤 대상으로 규정하고

타인이 나를 어떤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형성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래(탕웨이)는 기도수(奇都秀)로부터의 학대로 인해

타인에게 규정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인간관계 능력 또한 좋지 않다. *


(* 이 점은 서래가 사귀는 남자가 하나 같이 해준처럼 착실한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


인간은 상대방에게 일정 정도 규정이 되고,

또 자신 또한 상대를 일정 정도 규정을 해야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서래(탕웨이) 또한 당연히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로 존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수(奇都秀)에 의해 극심한 트라우마가 생기고

자신의 유일한 희망 같았던 해준(박해일)마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서래는 자살을 한다.


이는 바다라는 상징의 의미와 더불어 생각해본다면,

서래는 아무에게도 정의되고 싶지 않고

아무에게도 인식될 수 없는

불확정성 100%의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해준은 서래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는 서래가 바다와 함께 완전한 불확정적인 존재가 되면서

상징적 차원에서 또한 해준이 서래를 존재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헤어질 결심, 산과 바다의 대치 구도



*

사실, 서래가 이방인으로 설정된 이유 또한

이방인은 그 나라에 원래부터 살고 있는

내지인에게는 쉽게 정의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래가 번역기를 통해 해준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연출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잘 정의 내릴 수 없는 대상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서래가 안개 때문에 이포로 이사 왔다고 하는 것 또한

서래는 '바다' 즉 세상으로부터의 완벽한 소멸과 망각을 향해 가고 있다, 혹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포는 바다와 매우 가까이 있는 마을인데,

이 마을의 안개는 바닷가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해무"이다.

(해무 =Sea fog)



3. 산과 연관되어있는 인물이 기도수(奇都秀) 밖에 없을까?


산을 대변하는 인물은 기도수뿐만이 아니다.


산을 대변하는 인물은

세계를 자기 나름의 척도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래(탕웨이)를 남성우월주의로 규정한 기도수뿐만이 아니라,

누가 범인인지 아닌지 규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해준(박해일),

그리고 해준의 부인 또한 그러하다.


이들은 해준, 기도수, 정안 모두 '산'에 부합하는 인물들이다.


Part 1 끝



Part 2

https://brunch.co.kr/@8a2e550e77d54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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