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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징과맥락 Jul 06. 2022

영화 헤어질 결심 후기, 세세한 상징 해석 리뷰 2/2

part 2

Part 1 글 링크

https://brunch.co.kr/@8a2e550e77d5459/38





이 글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가 있으니 주의바랍니다.


Part 1에서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산 vs 바다"의 대립 구도에서

산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다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주로 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후기 상징 해석 part 1 정리



이어서, 

기도수 외에도 '산'에 부합하는 인물로 누가 있을까?


4. 어찌 보면 기도수보다도 더 '산' 같은 사람, 정안


해준의 아내 정안이 산에 부합하는 인물임을 나타내는

힌트는 영화 군데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첫째 정안이 해준에게 한 질문 : "우리 몇 년 몇 개월 동안 행복했지?"


정안은 초반에 해준에게

"우리 몇 년 몇 개월 동안 행복했지?"라고 물어본다.


이 질문이 그리 특이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자세히 곱씹어보면 조금 어색하다.


보통 결혼 생활을 영위한 기간이 궁금하다면,

그냥 "우리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라고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우리 몇 년 몇 개월 동안 행복했지?"라고 묻는 것은

다양한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된 '결혼 생활'의 시간을

단지 '물리적 시간의 경과'라는 척도로 재단하고 규정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정안에게 결혼 생활은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물리적 척도에 의해 인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둘째, 정안이 섹스를 대하는 태도


정안은 영화 초~중반에서 섹스는 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정안이 두 사람의 사랑의 표현인 섹스를 아무런 감정 없이 단지

"건강 관리"라는 척도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연성과 자연스러움에 기초해 분위기가 무르익어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해진 시간에 섹스를 하기로 약속을 했으니까 섹스를 한 것이다.


따라서 정안은 기도수처럼 상대방을 거칠게 규정하지는 않지만,

감정(=불확정성)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셋째, 정안의 직업


정안은 원전의 안전관리팀에서 근무한다.

원전은 자연의 일부를 가공하여 에너지로 변환시킨다는 점에서

원전은 자연을 인류의 수단으로 규정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정안은 '안전관리팀'에서 일한다.

안전관리팀은 시설에 대한 안전을 점검하고 미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불확실한 "미래" 또한 100% 안전하게 만들어가는 일을 하는

안전관리팀에서 근무하는 것은,

불확정적인 요소(불가지의 영역을)를 0%로 만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바다보다는

산에 가까운 인물이다.



4. 넷째, 정안의 내연남, 이 주임의 존재


정안은 영화 초반에서부터 해준에게 이 주임 이야기를 꺼내는데,

영화 후반에 이 주임은 정안의 내연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 주임 이야기를 하면서 자라 진액이 정력에

좋다느니라는 이야기를 해준에게 한다.


애초에 정안에게 해준과의 관계에서 깊은 감정은 없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해준이 서래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자,

정안은 깊은 생각의 시간조차 갖지 않고 내연남과 함께

해준을 떠났다.)


인간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결혼 생활과 섹스를

아무런 감정 없이

건강과 쾌락의 척도에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5. 해준 또한 '산'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산에 부합하는 정안과 결혼 생활을 하며 별다른 갈등 없이 지내온 해준 또한

정안의 성향과 비슷한 '산'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1. 첫째, 해준의 직업 자체가 대상을 규정하는 직업이다.


이러한 정안과 인연이 되어 결혼 생활을 해나가는 해준은 정안과

커다란 의견 충돌이 없다는 점에서 정안과 비슷한 '산'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해준이라는 인물 또한 "최연소 서장"이다.

간단히 말해 사회 '엘리트'라는 것인데,

엘리트는 "대상을 규정하고 그에 따라 여러 자원을 분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해준은 경찰서장으로서 타인을 용의자인지 아닌지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해준은 영화에서 서래와 관련된 사건을 두 번 맡게 되는데,

첫 번째 기도수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서래를 용의자가 아니라고 규정한 후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

금융사기범 임호신(박용우)에 대한 죽음에 대해서는

서래를 용의자로 규정하고 수사에 임한다. *


영화 '헤어질 결심', 해준



* 해준의 연이은 수사 실패가 의미하는 바는?


그러나 해준은 서래와 관련된 두 사건에서 다 실수를 한다.


첫 번째 사건에서는 서래가 범인임에도 서래를 용의 선상에서 배제했고,

두 번째 사건에서는 서래가 범인이 아님에도 용의자로 규정하였다.


최연소 서장이 될 정도로 능력 있는 해준이

연달아 이러한 실수를 보이는 것은


인간이 아무리 세계와 대상을 완벽히 인식하고 정의 내리려 해도

세계에 대해 완벽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로 해석된다.



2. 둘째, 해준 또한 정안과의 섹스를 사랑의 이행이 아니라 의무의 이행으로 대한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해준과 정안은 주말마다 의무적으로 섹스를 한다.

그런데 이는 서로에 대한 야릇한 감정이나 사랑보다는

그저 상호 약속한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부분이 크다.


영화 말미에 정안이 해준을 떠나는 장면에서

해준은 정안에게 정말 이상한 질문을 한다.


해준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 정안은 짐을 챙겨 집을 나오는데,

해준은 이런 정안을 보고

"우리 주말 약속은?"이라고 물어본다.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감정'이 우선시되었다면

해준은 정안의 행동을 통해 정안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떠나는 정안을 보며

"그럼 우리 주말 약속은?" 같은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안이 지금 해준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화가 나있으므로

해준과 섹스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은 매우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준은 이렇게 당연한 판단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해준도 정안과 같이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불확실적인 요소인 '감정'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준에게 또한 정안과의 섹스는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의무여서 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6. 왜 해준은 서래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을까?


이처럼 정안, 해준은 세계와 대상을 척도와 체계를 통해

규정하고 정의 내리려는 '산'과 같은 사람들인 반면,

서래는 척도와 체계를 사용하여 대상을 정의하지 않는 사람,

혹은 아예 하지 못하는 '바다'와 같은 사람이다.

(서래가 자신에게 내려온 유산인 '산'을 취하지 않았던 것도

'산'에 대한 반발, 척도와 체계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래와 같은 사람은 자기의 정체성 또한 상대방에게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러한 안개와도 같은 서래의 '모호함'이

해준으로 하여금 서래를

더욱더 감시하고 예의 주시하게 만드는 요소로 기여했다.


(애초에 서래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수단인

'언어(한국어)'를 잘 못 쓰는 외국인으로 설정되어있다.

그리고 서래는 말보다 모호한, 눈빛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들로 해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흔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하는 성질을 가진 대상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세계와 대상을 불확정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인식하는 해준은

그 반대의 성향을 가진 서래와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안과 '감정'이 없는 결혼 생활을 하는 해준에게

서래는 '감정'을 자극한다.


감정은 현대의 첨단 과학과 기술로도

쉽게 규정하고 정의할 수 없는 요소인 동시에

우리의 삶에 확실히 존재하고 있는 불확정적인 요소이다.


해준은 서래를 통해 '확정성'으로 점철된 삶에수

'불확정성'의 감정이 싹트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서래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 中 - 해준과 서래



* 해준이 인공 눈물을 넣는 장면


영화 중간중간마다 해준이 자신의 두 눈에

인공눈물을 넣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러한 장면은 100%의 확정성으로 가득 찬 삶에서

일말의 불확정적인 '감정'을 계속해서 주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해준의 '인공눈물'은

마중물의 역할을 하게 되고,

영화 맨 마지막 부분에서 해준은

인공눈물의 도움 없이

서래의 이름을 부르짖으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순수한 눈물을 흘리게 된다.




7. 영화 '헤어질 결심'의 숨겨진 상징 구도


앞서 정안과 해준, 기도수는 바다보다는

산에 가까운 인물이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산과 바다"라는 양자 간의 대립 구도에서 성립하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산은 전적으로 기도수의 공간이었고

기도수가 죽기 전까지는 해준은 '산'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정안은 더욱더 기도수가 죽음을 맞이한 '산'과 큰 연관이 없다.


오히려 나는 정안이 일하고 있는 '원전' 또한

'산과 바다'와 같은 영화를 대표하는 커다란 상징과 대등한

커다란 상징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정안이 기도수처럼 세계와 대상을 확정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세계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체계는 상이하기 때문이다.


기도수의 세계관은 60 ~ 80년대 한국 사회에 팽배한

남성우월주의 세계관이었다면,


정안의 세계관은 현대 첨단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자연은 물론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영역 또한

효율성, 양적 척도를 통해

정의 내릴 수 있는 세계관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는

"산 vs 바다"라는 대립 구조도 존재하지만,

해준의 입장에서 보면

 "원전 → 산 → 바다" 순으로 이동하는 구도 또한 성립한다는 것이다.


'원전 → 산 → 바다'의 상징 구도


정안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원전'은

남녀 간의 섹스마저 '건강 관리'라는 척도로 규정지어질 수 있는

감정이 0%에 수렴하는 세계라면,

(불확정성이 0%에 수렴하고, 확정성이 100%에 수렴하는 세계)


기도수의 '산'은 남성성, 돈, 힘만 있으면 어떠한 폭력 또한 정당화되는

남성우월주의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남성성에 대한 존중은 존재하기에

감정이 0%에 수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정안은 기도수보다 더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남성우월주의 세계관은 약자와 여성에 대해서는

공격적이고 야만적인 태도를 취함에도

남자들끼리의 우애라던지 의리와 같은 감정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도수가 빌딩처럼 높은 산을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아한다는 점,

기도수의 후배가 기도수의 부정부패에 대해서 감싸는 장면 등.)


그래서 원전을 산과 별개인

개별적인 상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영화의 이야기 흐름은

위에 제시된 그림과 같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100% 확정성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원전)에서 시작하여,

산을 거쳐,

100%의 불확정성으로 바라보는 세계관(바다)에 다다르는 것이다.



8. 기도수(奇都秀) 이름의 의미와 박찬욱 감독의 인식론적 통찰


기도수라는 이름 자체도 드물고 독특한 이름이지만,

한자를 살펴보면 더욱더 이상한 분위기를 풍긴다.


'기'는 기이할 기 - 奇 이고

'도'는 도읍 도 - 都 에

'수'는 빼어날 수 - 秀이다.


즉 한자를 해석하면,

기도수는 "기이한 도시의 빼어남"이라는 뜻이다.


박찬욱 감독은 도대체 무엇을 '기이한 도시'라고 여기는 것일까?


우리는 영화를 통해 세계와 대상을

함부로 규정하고 정의 내리려는 인물들을 보았다.


기도수는 서래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서래를 "학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폭행을 가했고


정안은 해준과의 결혼 생활을

"쾌락과 효율성"의 척도로 대했기 때문에

해준과의 관계에서 진실한 감정이 싹트지 못하고

직장 동료와 일찌감치 바람을 폈다.


이렇게 불확정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세계와 대상을 오로지 확정성으로 재단하려는 관점,

그리고 이 관점이 통용되는 사회를

박찬욱 감독은 '기묘한 도시'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영화 헤어질 결심의 보다 세세한 상징 분석 리뷰는 여기서 마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정안과 해준, 이름의 의미 (추측)


정안의 정확한 한자 이름은 찾지 못하였지만,

세상을 확정하고 규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에서


정안은

바를 정, 正 에

눈 안, 眼 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안은 자신이 "올바른 눈"으로 세상과 대상을 정의하고 규정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해준의 이름 또한 그에 맞는 한자를 찾지 못하였지만,


해는 바다 해 海이고

준은 준할 준 準으로


바다를 준비한다, 즉 확정성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바다(불확정성, 감정)를 맞이할 준비를 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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