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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의 집 Mar 27. 2022

한국인의 문제적 언어패턴#3-맥락 형성을 못하는 사람

맥락을 형성할 수 없어 행동 매뉴얼에 매달리다

- 이전 글 내용이 다소 정리가 안된 것 같아 수정 후 다시 업데이트하였습니다. -



상황 3



영준은 카페에 들어왔다. 문 옆에 있는 소독제를 손에 바르려 하는데, 손소독제가 나오지 않는다. 영준은 손소독제가 나오지 않는다고 점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영준 : 여기요, 손소독제가 안나와요.

세 명의 점원들 : ....... (못 들은 척을 하는 것인지, 정말 듣지 못한 것인지 확정할 수 없으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영준 : 세 명의 점원 중 자신과 가까이에 있는 점원 앞에 다가가서 말을 다시 한다.

영준 : 저기요, 손소독제가 안 나와요.

점원1 : 네?

영준 : 여기 손 소독제가 안나와요.

점원 1 : 아, 잠시만요.

점원 1 : 카운터에서 나와 문 앞으로 나온다.

점원 1 : 손님, 네?

영준 : 손소독제가 안 나와요.

점원 1 : 아무말 없이 손소독제를 멀뚱멀뚱 본다.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영준 : 손소독제가 안 나와서요.

점원 1 : 아무말 없이 두리번 거린다.

점원 1 : 여기 qr 체크는 하셨어요?

영준 : 네. qr체크는 아까 했어요

점원 1 : 아, qr 체크 했어요?

영준 : 네, 했어요. 손소독제가 안된다고...

점원 1 : 갑자기 카운터로 돌아간다.


영준 : 소독제 애기를 했는데, 갑자기 qr 체크를 했는지 안했는지를 확인하고 돌아가는 점원을 보고 어이가 없어 자리를 맡으러 그냥 올라간다. 무시를 받은 느낌이 조금 들었고 살짝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위의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는 ‘맥락 완성의 부재’에 있다. 위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점원 스스로가 자신이 맥락 형성의 주체로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작지만 다소 지적할 문제가 있는 해프닝이다.



 영준은 카페 점원에게 손소독제가 잘 안 나온다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손님이 점원에게 “손소독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대화 맥락(상황적 맥락)을 일시적으로 형성을 한 것이다. [나는 도움이 필요해.]라는 맥락을 만든 것이다.



 타인과 맥락을 만들 때는 맥락을 만드는 사람과 맥락을 호응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위의 상황에서 맥락을 먼저 만든 사람은 영준이다. 영준은 [손소독제가 나오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맥락을 만들었다. 손님이 도움을 요청하는 맥락을 만들었으니, 점원은 이 맥락에 대해 호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유를 하자면, 손님이 먼저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고 점원은 손님이 먼저 내민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점원은 카운터에서 나와 손님에게 갔지만, 머뭇거리기만 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손님 영준은 점원의 행동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물론 이 또한 작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점원과 같은 언어패턴을 지닌 사람은 이 상황뿐만이 아닌 다른 다양한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 수 없으며 심한 경우 타인을 반복적으로 당황스럽게 할 수 있다.



 손님, 영준이 느낀 이 찰나의 당혹감은 자신이 형성한 맥락에 대한 상대방의 무반응, 그리고 그로인한 [맥락의 소실]에 대한 감각이다. 아무리 영준이 맥락을 먼저 만들었더라도 그 맥락에 호응을 해야 하는 상대방이 호응을 하지 않는다면, 맥락은 유지되지 못하고 소실된다. 그리고 맥락에 대한 소실은 반드시 감각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감각[맥락 소실감]인데, 일상의 언어로는 당황스러움, 난처함, 창피함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타인과 소통을 하는 와중 맥락 소실감을 종종 겪는다. 아주 사소한 예시로 내가 타인에게 인사를 먼저 걸었는데, 타인은 그 인사를 못 들어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든가 등등의 상황 말이다.



 다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오자면, 점원의 속마음은 이러했을 것이다. [손님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가 고장 난 손소독제를 고치는 방법을 알겠나. 나는 그냥 커피 만들고 계산하는 것만 하는 사람이고 나는 손소독제에 대한 문제는 나도 잘 모른다.] 점원의 속마음도 이해는 간다. 카페에서 점원에게 손소독제가 어디에 있고 손소독제가 고장이 났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교육을 안 시켰을 수 있다. 카페 점원이 할 주된 일은 커피를 만들고 계산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원의 행동이 손님을 당혹스럽게 한 것 또한 맞다. 그렇다면 점원이 손님에게 어떻게 행동을 했어야 할까?



 점원은 손소독제를 고치지 못하더라도 손님이 만들어낸 맥락에 호응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원이 손소독제를 고치지 못하더라도 소독제를 본 다음에 “아, 소독제가 잘 안 나오나요? 저희가 소독제 여분이 없어서 이번은 소독제 사용 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혹시 필요하시면 물티슈 드릴게요.” 이렇게라도 말한다면, 손님은 자신이 만들어낸 맥락이 소실되거나 묵인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잘 호응되었다는 느낌이 들것이다. (여기에서 손님이 넘어가지 않고 화를 낸다면, 손님이 청결에 있어 과도하게 예민하거나 손소독제를 핑계로 타인을 처벌하거나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점원이 손님이 만들어낸 맥락을 이 정도로만 받아주었다면, 손님도 손소독제는 못 쓰는 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냥 먹고 싶은 음료를 고르는 등 다음 할 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왜 점원은 이렇게 손님이 만들어낸 맥락에 호응을 하지 못한 것일까? 왜 그 순간만큼은 좀 더 매끄럽게 반응하지 못하고 손님에게 당혹감, 즉 맥락 소실감을 느끼게 한 것일까? 점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맥락을 완성해가는 참여자로서 행동할 수 있다는 자기 인식과 그 인식에 기초한 행위이다. 이것이 점원에게 없었기 때문에 그 점원은 손님을 도와주러 계산대 밖으로 나가 손님 앞까지 스스로 다가갔음에도 머뭇거리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계산대로 돌아가 버렸다.



 차라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손님이 처한 문제의 상황 맥락에 공감하면서 다른 새 손소독제를 찾아보려는 시늉이라도 한다면, 손님은 “아 그래도 저 사람이 내 요구에 응답을 하는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면 점원이 결과적으로 새로운 손소독제를 갖고 오지 못해 손님이 요구하는 것을 결국 만족시키지 못했더라도 손님은 자신의 요구가 응답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장 난 손소독제 그 자체가 아니라 손소독제가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하는 손님의 상황, 즉 손님이 점원에게 형성한 “맥락”인 것이다.



 하지만, 점원은 손님의 맥락에 호응하지 못했다. 그것도 손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점원이 손님을 당황스럽게 한 것이 맞지만, 오로지 점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점원 또한 당황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점원은 자신을 상황의 맥락을 완성해가는 참여자로서 자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매뉴얼화된 상황이 아닌 모든 상황에서 당황스러움과 스트레스를 느낀다.  



 매뉴얼화된 상황 안에서만 안전함을 느끼고 매뉴얼화된 상황 밖에서는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타인에게 어떨 때는 과도하게 헌신적이거나 어떨 때는 과도하게 무심하거나 등 양 극단의 태도를 바꿔가면서 취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타인과 함께 맥락의 흐름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타인에 크게 호응해야할 것 같으면 갑자기 과하게 호응을 해주다가, 어느 날에는 자신이 가벼운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과하게 타인에 무심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과하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과 과하게 무심하게 대하는 것 둘 다 각각의 당시 상황의 맥락에 어긋나는 과도한 형태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과도하게 친절히 대할 때에도 그들은 타인과 같이 맥락을 타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감정을 표현해서 친절하게 굴지 않는다. 단지 의무를 이행하듯, 매뉴얼대로 행동하듯, 자연스러움이 없이 의도성이 과잉된 상태로 타인에게 친절한 스탠스를 취한다. 상대를 대할 때 감정 표현 없이 의도성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이렇다 할 감정이 교류되지는 않는다. 감정의 교류가 없는 대화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특정한 인상을 줄 수 없고 자신의 존재감 또한 모호한 상태로 상대에게 남는다. 그리고 상대방 또한 자신에게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처한 객관적인 맥락에 맞는 [일반 서사]의 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자신의 왜곡된 감정(객관적인 맥락과 괴리가 있는 감정)으로부터 해리되어야 한다. 해리된 후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맥락을 인지해야 한다.



 상황 3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점원은 [매뉴얼화된 행위가 아닌 행동을 하면 처벌 받는 맥락] 속에서 나오는 당황감, 짜증 등의 부정적 감정에서 해리 되어야 한다. 그리고 [손님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맥락에 자신이 처했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럼 자신이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하는 상황]이라는 맥락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점원은 매뉴얼에 벗어났다는 두려움, 당황스러움의 감정보다 손님이 처한 상황의 어려움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미약한 동정심이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그 미약한 수준의 동정심을 행동과 언어, 비언어로 표현하면 된다. 그럼 손님에게 잠시 기다리시라고 손소독제를 찾아보겠다고 하던지 등의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처한 왜곡된 감정은 자신의 처한 맥락을 다르게 인지함으로서 바꿀 수 있다. 기의(내용)를 바꾸지 못하겠다면, 기표(형식)를 먼저 바꾸고 그 형식에 맞는 내용을 채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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