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도리는 뭘까.....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당시 두 분 다 빚이 있었던 터라 나와 동생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그나마 있는 아버지가 거두기로 했다. 그때 그게 잘 한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머니를 따라갔어도 별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우선 아버지와 살게 되며 가장 먼저 한 것은 학원을 모두 끊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너희들은 공부할 마음이 없다며 너희는 학원 다니게 해 봐야 돈 내다 버리는 짓이라며 모두 끊어버렸다.
그리고 용돈도 끊겼다. 아버지가 돈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6개월에 용돈을 4만 원 받았다. 우리 삼 남매는 모두 중학생 때부터 각자 용돈을 벌어서 썼다.
중학교 3학년일 때 반에서 단체로 반티를 맞추자고 했는데 그 티셔츠를 맞출 5천 원도 없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담임선생님께서 몰래 도와주셨다.
힘들었던 중학생 시절 내 주변 친구들과 담임선생님들은 다 아셨다. 내가 엄마 없는 집에서 집안일 도맡아 하며 용돈도 없이 힘들게 살았다는 걸.
아버지는 항상 돈이 없다고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사는 건 전부 엄마 때문이라고. 그 년이 너희들 버리고 집에 빚만 남겨두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갔다고.
아버지는 절대 엄마를 보지 못하게 했고 우리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티를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배신자 취급을 하며 매도했다. 당시 막냇동생은 6살이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겠지. 자기가 무릎까지 꿇고 매달렸는데 엄마가 받아주지 않았으니. 그런데 무릎만 꿇으면 다인가? 자기 평소 행실은 돌아보지 않고?
아버지도 할머니도 친가 쪽 어른들은 모두 어머니를 매도했다. 쌍욕을 퍼붓고 저주를 했다. 전부 어머니의 잘못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는 쥐뿔도 모르면서.
아버지의 돈타령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고등학생 때였다. 나는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입학등록금과 수업료가 3년 동안 전액 면제였다. 입학할 땐 현금으로 30만 원 장학금을 받았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외부장학금을 쓸다시피 했다.
아버지는 목표 평균 점수를 제시했고 내게 그 점수를 달성하면 용돈을 준다고 하셨다. 5만 원으로 기억한다. 나는 목표 점수를 달성했고 용돈을 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돈이 없다고 하시며 안 주셨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딱 그 시기에 아버지는 새 취미활동을 시작하셨다.
배드민턴.
배드민턴 장비를 풀로 세팅하셨는데 그 라켓 한 개에 30만 원으로 기억한다. 그걸 자랑스럽게 내게 자랑하셨다.
그때 느꼈다.
아, 뭔가 잘못되었다.
너희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나는 동영상 강의를 쉽게 듣기 위해 디지털 기기를 사달라고 했다. 당시 기기 가격이 30만 원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돈이 없다며 거절하셨다. 나는 내가 받은 외부장학금으로 구입했다.
첫 외부장학금을 받던 날. 장학금 액수는 100만 원. 아버지는 그 돈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좋은데 쓰겠다고.
난 대답을 피했다. 억지로 빼앗길까 봐 두렵기도 했다. 이후에도 내가 장학금만 받으면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차에 하이패스를 달아달라... 말이 많았다.
대학교에 입학했다.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았다. 등록금이 한 학기에 320만 원이었는데 장학금으로 200만 원 정도 받아 초반 2년은 한 학기에 110만 원 정도를 부담했고 3학년에는 한 학기에 60만 원 정도를 부담했다. 그나마도 4학년에는 전액 장학금이었다.
학교에서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내준다고 했다. 숙식 모두 제공이었고 학생이 부담해야 하는 부분은 왕복 항공권과 개인 용돈. 나는 아버지께 꼭 가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도 승낙하셨다. 막상 신청기간이 되자 아버지는 돈이 없다고 거절하셨다. 그 시기에 아버지는 차를 제네시스로 바꾸셨다. 당시 룸메이트는 내게 물었다.
"OO아. 이번에 왜 호주 안 가? 가기로 했잖아."
"아버지가 돈이 없으시대."
"어? 너희 아버지 제네시스 타시잖아. 비행기값이 없다고?"
룸메이트의 말에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영어 공부가 하고 싶었다. EBS의 무료 강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책만 사서 보는 걸로도 좀 부족한 것 같았다. 스피킹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아버지께 유료 영어 강의나 전화 영어를 끊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버지는 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때 새로운 취미로 자전거를 시작하셨더라. 자전거 한 대에 600만 원.
물론 내게 해주신 것도 있다. 뭐... 굶어 죽지 않게 밥 먹여주신 거? 얼어죽지 않게 집에서 잘 수 있게 해주신 거?
옷은 사주시지 않으셨다. 그냥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다. 패딩은 꿈도 못 꿨다.
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반에서 친구가 내 이야길 듣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자기가 안 입는 패딩이 있는데 이거라도 입겠냐고 주길래 고맙다고 받아 입었다. 이 패딩은 남동생까지 물려줘서 입었다. 나머지 옷은 학교 근처 편의점 주인아주머니께서 주셨다. 따님이 입으시던 걸 챙겨두셨다 내게 주신 것이었다. 감사했다.
하도 내가 거지 같은 옷만 입으니까 아예 친구들이 셔츠 같은 건 사주기도 했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친구가 내게 3,900원을 주고 산 셔츠를 줬다. 이것도 오래오래 입었다.
고등학생 때까진 얻어서 입었고 대학생일 땐 그래도 중고로 옷을 사서 입었다.
가족들과 놀러 가는 것? 몇 년에 한 번씩 갔는데 그나마도 생색을 어찌나 내던지... 차 안에서 이동할 때 잔소리에 생색에... 머리가 아팠다. 이럴 거면 가지 말든가... 이런 생각도 했다.
취업을 하고 일을 하다가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았다. 2년 정도를 쉬며 요양생활을 해야 했다. 병원비는 비싸고 생활비는 필요하고 아파서 일은 못하고... 한 마디로 수입은 없지만 지출은 있는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아버지께 도와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결해라고 하셨고 이걸로 나는 친척 언니에게 아버지의 실체에 대해 털어놓았다. 친척 언니가 고모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고 고모는 아버지에게 전화해 애들을 그 따위로 키웠냐며 잔소리를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를 찾아와 돈을 던져주시며 이 돈 줄 테니 인연을 끊자고 하셨다.
나는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이런 일화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지만 그걸 다 쓰려면 시간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다르게 알고 있었다.
못된 여자 만나서 버림받았지만 아이들 다 거둬서 지극정성으로 챙기고 보살피는 헌신적인 아버지
사람들은 이렇게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포장한 거였다.
난 뒤통수를 토르의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아예 없었으니까.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