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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수의사

by 예일맨

여름이 다가온다. 최근 옷장 정리를 했다. 매년 해도 매년 버릴 옷들이 한 무더기씩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버려지는 옷들을 보면 둘 중 하나이다. 오래 입어서 낡았거나 거의 입지 않은 것(앞으로도 입지 않을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긴 하나, 오래 입은 것들은 대부분 나름 이름 있는 브랜드의 제법 가격이 나가는 옷들이다. 반면, 많이 입지 않은 옷들은 한 철 입고 버려도 된다 생각하고 구매한 저렴한 옷들이다.


가격 때문에 후자의 옷을 골랐지만, 옷을 입은 횟수나 만족도 등을 고려하면 결국 값은 좀 나가지만 질 좋은 것들이 훨씬 경제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옷을 고를 때 또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나는 이 같은 원리를 동물병원에 빗대어 생각해 본다. 가격을 완전히 후려치는 소위 덤핑 동물병원들이 많다. 보호자들은 싼 맛에 찾는다. 하지만 진료의 질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질병의 경중, 수의사의 능력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뒤에 수많은 환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5분 컷 진료와 다음 예약자가 아직 오지도 않은 30분 진료의 질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무조건 싸고 봐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박리다매"와 비싸도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고 믿는, 그리고 경제력도 보유한 적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프리미엄" 운영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수의사들이라면 대부분 후자를 택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각자에게 맡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므로 박리다매를 전략으로 싼 것을 찾는 사람들의 니즈를 채우는 운영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실력도 없는데 그럴듯한 시설, 화려한 외관, 수려한 입담만으로 값비싼 진료를 하는 것보다는 저렴하고 빠르게 진료하고 어려운 것은 상위 병원으로 신속하게 보내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5분 컷의 쳐내기 진료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만큼 환자가 있어야 가능하겠다만) 길게 늘어선 대기 환자 목록을 보며 쫄리는 진료 역시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당연히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초진의 경우 최소 30분 이상 예약을 잡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고 싶다. 그리고 진료의 결과물들을 잘 정리해서 공유하고 싶다.


결국 박리다매보다는 프리미엄에 가까운 운영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명품샵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러려면 중요한 것은 그만한 값어치를 할 수 있느냐이다. 일반 병원보다 비싸도 결국 생각해 보면 더 경제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느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인으로서의 실력이다. 다음으로는 반려동물을 세심하게 아끼는 정성일 것이며, 보호자의 경제적인 것까지도 생각할 줄 아는 배려일 것이다.


이제 1년 반이 되어가는 현재, 수의임상의 세계는 가면 갈수록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고, 파면 팔수록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다. "비싼 수의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이… 그리고 시간(경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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