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잡다.

다 해보고 싶어 9편

by 예일맨

“내가 발견한 해결책은 ‘화이트 스페이스(white space)’이다. 화이트 스페이스는 하루 중 하던 일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곰곰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창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화이트 스페이스라는 용어는 어떤 일정도 적혀있지 않은 달력의 하얀 여백을 보며, 그 텅 빈 작은 공간이 생각의 흐름, 마음의 평화, 놀라운 창의력을 선물하는 열쇠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탄생했다”


세계적인 기업 어드바이저이자 연설가인 줄리엣 펀트가 쓴 ‘화이트 스페이스’라는 책의 일부이다. 저자는 매우 빡빡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부상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면서 ‘쉼의 중요성’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바쁜 일정의 사이사이에 여유로운 시간, 즉 화이트 스페이스를 끼워 넣으면 기분 좋게 일하면서도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화이트 스페이스를 삶 중간중간에 잘 끼워 넣지 못하는 편이다. 무언가 일이 있으면 다 하고 난 다음에 한꺼번에 쉬는 것을 좋아한다. 좋게 생각하면 집중과 몰입을 잘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치고 그 기간이 좀 길어지기라도 하면 결국 탈이 난다.


예전부터 쉬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군 대체 복무를 마치고 백수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취업을 바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최대한 빠르게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공부했다.

합격하고 나서도 발령받을 때까지 3개월의 여유가 있었는데 몇 주는 행복했지만 이후에는 남는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다. 1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황금 같은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하고 싶었던 것도 하며 충분히 즐기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남지만 그땐 잘 몰랐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도 “잘” 쉬지 못했던 것 같다. 11년의 공무원 생활 중 가장 바빴던 북부청사 시절, 유일한 휴식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12시에 구내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고 나면 12시 20분쯤 되는데, 밀려 있는 일을 처리하고 최대한 빨리 퇴근한다는 명목으로 쉬지 않고 바로 자리에 가서 일을 했다.


팀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커피 한 잔 하거나 산책을 하며 남은 40분을 여유 있게 보내는 동안 나는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앉아 일만 했다. 정말 지독하게도 마음에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이후에 옮겨 간 부서는 정시 퇴근이 가능하고 유연근무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여서 심적으로 많이 쫓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직장 생활 만 10년 정도가 되니 내게 ‘번아웃증후군'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근무연수가 일의 자리에서 십의 자리로 바뀌어서 그런 건지, 조금 더 힘들다는 부서에 와서 그런 건지,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직장 생활 3년, 5년, 10년 되면 한 번씩 온다는 그것이 나에게도 왔다.


남들처럼 9시, 10시까지 야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못한다고 상사에게 만날 꾸중을 듣는 것도 아니다.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출퇴근도 편하고 근무 환경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일하는 것이 힘들다. 지친다. 쉬고 싶은 것 같은데 난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그냥 그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주사님, 육아휴직 해봤어요?”

“아니요, 안 해봤는데요”

“정말요? 그 좋은 걸 왜 안 해요?! 저는 해봤는데 정말 강추합니다! 꼭 해보세요!”


우연히 차를 같이 타고 퇴근하게 된 같은 과 남자 주사님이 나에게 빚을 내서라도 꼭 육아휴직을 하란다. 차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다.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에게 주시는 하늘의 응답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요즘에는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이 자연스럽다. 최대로 쓸 수 있는 3년을 쉬고 나오는 사람도 보았다. 내가 일한 11년 동안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져서 육아휴직을 한다고 해도 그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육아휴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게 휴직을 한다는 것은 뭔가 도망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게다가 휴직을 하는 그 기간에 다른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갈 것이라고 상상하니 더더욱 싫었다. 휴직은 나에게 있어 없는 제도와 같았다.


그러나 그 분과 뜻밖의 대화를 나눈 이후 내 안의 수면에 일어난 파문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도 어느 정도 성장했고 아내와 분담하여 일과 육아를 충분히 병행할 수 있는 지금 상황에서 굳이 휴직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마음이 이미 기울었기 때문에 결정은 쉽고 빨랐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면 안 할 이유를 찾기가 더 힘들었다. 무엇보다 육아휴직을 허용하는 아이의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1년 정도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생일 때까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군 대체 복무를 포함해 쉬지 않고 14년을 일했고, 앞으로도 만 60세가 될 때까지 최소 20년은 더 일해야 한다. 그런데 육아휴직과 같이 직장인 신분을 유지한 상태로, 많지는 않지만 급여를 받으면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와의 스킨십도 중요했다. 그동안 일찍 출근했기 때문에 아침에 자는 아이의 얼굴만 보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빨리 집에 가도 7시가 넘기 때문에 평일에는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시간 정도였다.

보통 초등학교 3학년인 10살이 아이의 동심이 흐려지는 분기점이라고 하는데 아빠와 스스럼없이 뽀뽀를 하는 그 나이까지는 어떻게든 아이와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친구와 노는 것이 더 좋아지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나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그날이 오기 전에 아이와 살을 부대끼며 더 많이 함께 하고 싶었다.


또한, 나의 휴직이기도 하지만 아내의 휴직이기도 하다(물론 아내도 동의하는 사항이다). 수입이 줄어드니 삶은 조금 더 팍팍해지겠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빈자리를 채우느라 고생한 아내도 육아와 살림의 늪에서 잠깐은 벗어날 수 있다.


2023년 7월 28일, 공식적으로 육아휴직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간다.


하루 중 아침이 역시 가장 분주하다. 나는 숙면을 취하고 6시 30분쯤 맑은 정신으로 잠에서 깬다. 큐티를 하고 땅콩이(며칠 전에 입양한 6개월 된 유기견, 푸들) 산책을 시킨 다음 아침을 준비한다. 그제야 아내와 아이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다.


“빨리 밥 먹어라! 책가방은 챙겼냐?”

“늦겠다. 얼른 이빨 닦고 세수하고 나와야지!”


폭풍 잔소리를 시전 한 뒤에 겨우 준비를 마친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한다. 나는 다시 집으로 가지 않고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며 도서관으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켜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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