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해보고 싶어 8편
"제가 얼마 전에 반려동물 축제를 홍보하는데 포인트가 너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냐면, 개처럼 네 발로 뛰어다니는 영상을 찍었어요”
“사람이 반려동물로 참여한 거죠. 반려동물 축제니까...”
반려동물 훈련사나 수의사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무원인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의 채널A 뉴스 인터뷰 중 한 대목이다. 그는 충주시 홍보 업무를 맡아 공무원스럽지 않은 “B급 감성”의 홍보 포스터 제작을 시작으로 유튜브 채널인 “충 TV”를 개설하여 대박을 터트렸다. 이 글을 쓰는 2023년 8월 30일, “충 TV” 구독자 수는 충주시 인구의 약 두 배인 40만 명을 달성했다.
충주시만이 아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중앙부처도 이런 홍보의 중요성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유튜브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여러 종류의 매체를 통해 기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업무, 지원 사업, 그리고 행사 등을 알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공공기관의 홍보 문화와 더불어 영상을 만들어 개인 채널에 업로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항상 몇 발자국 느린 행보를 보여온 공직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만 잘 다룰 줄 알면 다 되는 시대가 저물었다. 문서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잘 만드는 것에 더해 콘셉트와 스토리를 구상하여 촬영하고 편집하여 다수에게 보여줄 만한 한 편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이제 공무원에게 요구된다.
나도 공무원이 되고 10년 만인 작년, 처음으로 업무와 관련한 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때는 2022년 12월 22일. 도민감사관의 한 해 활동을 정리하고 노고를 치하하며 우수 활동자에게는 표창장도 수여하는 “도민감사관 활동보고회” 하루 전 날이다.
일하면서 "행사"라는 것을 맡아서 치르는 것이 처음인데 다른 업무와 병행하며 준비하느라 애를 쓰는 중이었다. 다행히 그때까지는 계획한 대로 원활하게 진행되어 마무리 준비에 한창이다. 그런데 아침 조회를 마치고 나오신 팀장님이 나를 급하게 부르신다.
“국장님께서 도민감사관 활동 영상을 간단하게 만들어서 보고회 때 틀어주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시네?”
“도민감사관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 있잖아. 그거 모아서 순서대로 하나하나 넘어가는 식으로만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어때요?"
“아, 영상을 하루 전에요? 부담스럽기는 한데… 그래도 국장님이 특별히 지시하신 사항이니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가뜩이나 정신없이 준비하느라 지친 상황이었는데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 전에 영상을 만들어보라고 하시니 갑자기 극한의 피로가 밀려온다. 상사의 말씀이지만 ‘하루 전 날인데 영상을 만드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다음 활동보고회 때는 미리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고 있는 담당자를 위해 멋지게 자르지 못한 팀장님이 원망스럽다. 아니, 그보다 국장님이 밉다.
하고 있던 다른 준비부터 먼저 끝내놓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일단은 영상에 들어갈 사진과 동영상을 확보한다. 다행히 그 해 도민감사관 활동보고서를 만드느라 사진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다. 동영상도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쓸 것이 없어 사진으로만 영상을 만들기로 정하였다. 이제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너무 없으니 파워포인트 동영상 만들기 기능을 활용하여 사진을 붙여 넣고 음악을 넣어서 사진이 한 장씩 일정한 속도로 넘어가는 아주 단순한 영상을 만들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외부에서 손님도 많이 오고 국장님께서 지시한 사항인데, 대충 해버리고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 만드는 거 잘 만들고 싶었다.
예전에 교회에서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소니 베가스(sony vegas)”를 몇 번 다뤄본 적이 있어서 사진을 붙이고 음악을 삽입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검색했고 무료는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필모라(filmora)‘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절대 광고 아님).
다행히도 필모라 프로그램은 소니 베가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편집이 가능했다. 그래서 몇 번 해보니 금세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수 십장의 사진을 골라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붙여 넣었다. 그리고 활동 내용을 설명하는 문구가 사진과 함께 나오도록 자막을 만들어 추가하였다.
또한 필모라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그대로 가져와 내용만 바꿔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과 효과를 가진 영상 템플릿을 제공하였다. 그 템플릿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영상을 만드니 그냥 사진만 이어 붙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아 보였다.
게다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여 사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추가하였다(이 노래도 필모라에서 제공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서 밤 11시까지 홀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편집 작업 끝에 결국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
다음 날 팀장님을 비롯한 팀원들이 보더니 얼굴에 화색이 완연하다. 하루 만에 급조한 영상이라고 하기엔 꽤 괜찮은 영상이 만들어졌다며 칭찬에 칭찬을 거듭한다. 혼자서 밤늦도록 정말 수고 많았다며, 오늘 활동보고회도 잘 될 거라고 격려도 그칠 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활동보고회를 아무 문제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장님도 행사장에서 영상을 보시고 급하게 지시했는데도 하루 사이에 잘 만들었다고 매우 좋아하셨다는 후문을 들었다.
일 년 뒤 2023년 연말에 활동보고회를 하기 전까지는 내가 필모라를 사용할 일이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3기 도민감사관 지원자를 모집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홍보를 해야 하는데 경기도 버스 안의 화면에 광고 영상을 띄우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유튜브 쇼츠(Shorts)처럼 20초짜리 짧은 영상이라 처음에는 어렵지 않게 생각했지만 많은 사람이 보는 영상이기도 하고 단 시간 내에 도민감사관에 대해 알리고 지원자 모집 내용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 쉽지만은 않았다.
운이 좋게도 몇 년 전에 전문 업체에 의뢰하여 만든 도민감사관 제도 홍보 영상이 있었고, 그 안에 좋은 장면들이 몇 있어서 그것을 잘라다가 이어 붙이고 마지막에 3기 도민감사관 모집 내용을 한 페이지로 만들어 넣었다.
이전 활동보고회 영상에 비해 들인 시간은 훨씬 적었는데도 이 짧은 홍보영상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팀장님은 몇 백 만원씩 주고 만들어야 하는 이런 영상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뚝딱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며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나에게 당장 휴대폰으로 보내라고 하시더니, 이런 거는 바로 국장님 보여드려서 기분도 좋게 해 드리고 담당자도 칭찬을 듬뿍 받아야 하는 거라시며 들떠서 휴대폰을 들고 국장님 실로 가신다.
나는 격한 칭찬을 받고 나서 겸손한 척하느라 그저 영상을 짜깁기했을 뿐이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말하니 동료 직원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더 큰 칭찬이 돌아온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 않죠. 그러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굉장히 기분 좋고 가슴속에 무언가 여운이 진하게 남는 말이다. 조금 더 깊이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매일매일, 이 순간에도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유튜브 채널을 열어 꾸준히 영상을 올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영상 편집을 할 줄 아는 사람도, 편집 프로그램을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조차도 그다지 많지 않다(내가 40대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또는 하지 않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해야 하는 일은 당연히 하는 사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
그러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그런 사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런 사람 한 번 되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