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논문 쓸 수 있을까?

다 해보고 싶어 6편

by 예일맨

“여보,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맞지”

“어디 학사 주제에 석사를 가르치려 들어?!”

“헐~! 나도 학교 6년 다녔거든!”

“6년 다니면 뭘 해! 아직 학사인데!”

“맞아, 엄마는 석사이고 아빠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엄마 말이 맞지”

“억울해서라도 내가 석사 하고야 만다!”


그렇다. 아내는 석사이다. 내가 뭔가 아는 체하면서 주장을 하면 학벌의 권위로 찍어 누르려 든다. 대학교를 그냥 졸업하면 학사, 대학원을 조금 더 다니면 석사, 그보다 더 많이 다니면 박사. 7살짜리 아들도 알고 옆에서 살짝 거든다. 약이 오르고 분하다. 그렇지만 셋이 있는데 두 사람이 합세하여 공격하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일하면서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아내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무 모르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채혈하는 것과 같은 기술은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개념을 잘 알아 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전문적인 의견을 낼 줄 아는 것이 정말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일하면서 많이 느꼈다.


물론 많이 아는 것과 학위의 소지 여부는 사실 별개이지만, 직장인은 어떠한 압박이나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꾸준히 공부하기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돈을 들여 대학원이나 자격증 시험을 등록해 놓고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특별히 “학위”는 자신이 어떤 분야에 대해서 깊이 안다는 것을 공인해 주는 꽤 의미 있는 지식 증명서이기도 하다(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먼저, 대학원에 다니려면 최소 2년에서 2년 반 동안은 학업에 매여있어야 한다. 기간도 그렇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또한, 수업이나 시험이 주중에 있기도 하기 때문에 직장과 가정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여러모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많고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도 역시 그랬다. 장기국외훈련에 신청해 보았지만 어디까지나 “해외”를 “공짜”로 보내주기 때문에 다른 손해를 보더라도 해볼 만한 도전이었던 것이지, “내돈내산”으로 대학원에 등록할 만한 명분도 실리도 내게는 없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장기국외훈련에 지원하여 떨어진 다음 해부터 동물감염병 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취지로 하는 국가(농식품부) 지원 사업인 “농식품 기술융합 창의인재양성사업”이 시작되어 학비 지원을 받으며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내가 일하는 경기도에서는 학기당 5명이 지원 대상이라고 하고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는다고 했다. 생각하고 있던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우리 집 석사님의 허락을 받아 가장 빠르게 지원을 하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 학기 대학원 수업 과정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로 되어있었다. 금요일이 조금 편한 요일이기는 하지만 7시부터 시작을 한다면 매주 금요일 최소한 한 시간 이상 조퇴를 해야 수업에 겨우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저녁 식사는 제대로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서 수업이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2021년까지는 학교에 간 것이 다섯 번도 안되었던 것 같고 당연히 발표와 과제도 온라인을 통해 하였다. 2022년이 되어서야 격주로 금요일 오후 8시부터 학교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처음 계획에 비하면 절반만 학교에 간 것인데도 한 주의 일을 다 마치고 장거리를 갔다 오는 것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2년, 4학기 동안 강의를 듣고 과제를 내는 것이 불편하고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선택이 하나 남아있었다.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아 졸업할 것인지, 5학기 수업을 듣고 석사 수료를 할 것인지 정하는 일이었다.


고민스러웠다. 한 학기 수업만 더 들으면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단 한 학기만. 그런데 학위를 받으려면 한 학기 수업은 듣지 않아도 되지만 논문을 써야 한다. 풀타임 대학원생도 아니고, 논문을 쓰려면 실험을 하거나 별도의 데이터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건국대에 수의방역대학원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기 때문에 선배가 없어 물어볼 사람도 마땅치 않았고 전례가 없어 그대로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학과 사무실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직 여러 가지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대학원을 다니고 싶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논문을 써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걱정은 많았지만 논문 졸업을 신청했다(9명 동기 중 논문 졸업자는 내가 유일했다). 실험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하는 “Review” 논문을 쓰기로 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논문 주제도 정하고 지도 교수님도 배정이 되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조교는 A4 용지로 90장 정도를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이 엄청난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내가 이거 쓸 수 있을까? 그냥 수업 듣고 졸업한다고 할까?’ 아직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수업 날 교수님께 분량에 대해 다시 물어보니 30~50장만 써도 된다고 한다. 조교에 대한 분노는커녕,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하다’ 생각하고 각오를 다진다. 시간이 많지 않고 집중해서 두세 달 안에 쓰지 않으면 교수님께 제출해서 검토받고 수정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속도를 낸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평일 아침 이른 시간을 활용했다. 집에선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벽 5시쯤 일어나서 바로 회사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 목차를 정하고 관련 논문을 찾아가며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집중했다.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말에도 가끔씩 시간을 내서 논문을 썼다. 한 번 쓰기 시작하니 속도가 붙어서 한 주에 작은 목차 하나씩 차근차근 채워나갔다. 결국 계획대로 논문 초안을 완성하여 교수님께 제출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논문 초안을 작성한 다음에는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교수님 검토와 여러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 논문을 승인받아 공식적으로 등록을 마칠 수 있었고 석사 학위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 1회 졸업생 중 유일하게 논문을 썼다는 이유로 방역대학원장 상도 받을 수 있었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도전하는 과정은 참으로 힘들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몸도 맘도 적잖이 고생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해냈을 때 얻는 기쁨과 성취감은 그 고난에 비할 바 아니다. 그리고 다음의 다른 도전이 쉬워 보이게 만드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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