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해외유학을 보내준다고?

다 해보고 싶어 5편

by 예일맨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혈혈단신으로 날아가 저명한 박사가 되었다는 어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고 막연한 동경을 갖게 된 것일지. 아니면 소년 시절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바람의 딸’ 한비야처럼 새로운 문화와 환경 속에서 매일 신기한 경험을 하며 사는 모험을 꿈꾼 것일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해외로 나가겠다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 작은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고 남아있었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든 호주든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살기 좋다는 영어권 국가로 가서 일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해외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통과해야 했지만 ‘그중에 제 일’은 영어였다. 해외에서 인정하는 여러 영어 능력 시험 중 실생활에 가장 유용하다는 IELTS를 택했다. 서울이나 경기도권 웬만한 도시에는 IELTS 학원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살던 강릉에는 없었다. 먼저 IELTS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가입자가 수가 많다는 다음 카페에 가입했고 책도 사서 공부를 했다.


강릉에서 영어 회화 학원도 몇 달 다녀보고, IELTS 스터디그룹을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 끝나고 김밥천국에서 저녁을 해결한 뒤 도서관으로 향했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IELTS는 이렇게 네 가지 영역으로 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말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영역은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점수도 나왔는데, 문제는 말하기였다.


예상 질문을 뽑아 스크립트를 적어서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그런데 조용한 도서관에서 주고받는 대화 상대도 없이 말하기를 연습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방법이었다. 시험비는 비싸서 자주 볼 수도 없고 서울까지 가야 하는 시간과 비용도 무시할 순 없었다. 쉽사리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자 공부에 대한 열정도 시들해져 갔다. 저녁 먹고 PC방 가서 한두 시간 게임을 하고 담배 냄새에 절어서 도서관에 갔으니 집중해서 공부가 되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영어 점수는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기약 없는 도전을 계속할 수는 없었고 결정적으로 외국에 나가고자 하는 내 꿈이 단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에 나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지 그곳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나갈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마냥 노는 것은 못하겠고. 외국에 안 가도 언젠간 도움이 될 거라고 자위하며, 남들에게는 해외 면허를 따려고 공부하고 있다고 멋있게 말하기에는 좋은, 그런 의미 없는 공부를 했던 것이다.


전역을 약 6개월 정도 앞두고 야심 찬 꿈을 단호하게 접었다. 그리고는 해외에서 면허를 따고 이민 생활까지도 고려한 원대한 계획과는 너무도 상반된 길,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 오래 뿌리내릴 수 있는 직업인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첫 직장에서 험난한 사회 초년생의 적응기를 보내느라 정신없는 시기가 이어졌다. 그러는 중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예쁜 아이도 낳았다. 일도 낯설고 힘든데 보살펴야 하는 가정과 아이도 생겼으니 다른 생각이 들 새가 없었다.


회사에 “장기국외훈련”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해외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거나 학위를 딸 수 있도록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일하고 난 지 한 2년 정도 되었을 때 처음 들어보았다. ‘공짜로 해외유학을 보내준다고?’ 회사 생활 적응하기도 힘든데 언감생심. 그리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몇 년이 지나 업무도 많이 익숙해지고 근무지도 여러 번 이동하였을 정도로 경력도 쌓였다. 그러는 동안 아이도 많이 성장했다. 이사를 두 번이나 다니는 동안 아이도 어린이집을 네 군데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어엿한 유치원생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 마음속 불씨가 꺼지지 않았었나 보다(공무원이 되면서 완전히 꺼진 줄 알았다).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었는데 회사에도 적응하고 육아도 좀 편해지다 보니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불이 한 번 커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내에게도 말했다. 성남으로 이사해 직장도 새로 구하고 좋은 환경에서 나름 안정된 삶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


‘당신의 꿈을 응원해’라며 말로는 응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기도해 보자는 아내의 말에는 뼈가 들어있다. ‘이제 막 직장에서 적응해서 편해지려고 하는데 해외 유학을 가자니...’ ‘혼자 보낼 수는 없고, 아이에게도 아직 아빠가 함께 있어야 하니까 다 같이 가야 하는데 그러면 직장도 일단은 그만둬야 하고...’


아내의 불안과 걱정은 뒤로 하고,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일단 신청을 한다. 참 이기적이다. 급하게 결정하고 미리 계획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야 할 것이 많다. 토익 시험을 봐서 지원이 가능한 점수를 받아놓고 어떤 나라의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토익 스피킹 시험도 치른다.


대망의 면접 날. 그날도 역시 출장이 잡혀있어서 양복과 넥타이를 차에 싣고 도청으로 떠난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본다.


“지원하신 분들 중에 나이도 가장 어리고 직급도 7급이네요?”


면접관이 한 질문 중에 기억나는 유일한 질문이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당당하게 대답한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체력도 더 좋고 적응도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종 불합격. 아쉬운 소식을 아내에게 전한다. ‘에이, 아쉽다.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지’ 말로는 위로하고 있지만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나의 두 번째 해외 생활 도전기는 끝이 났다. 장기국외훈련을 신청한 것이 2019년이었으니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2020년이 바로 내가 해외에서 공부를 시작해야 했던 그 시기였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도 못 가고 줌으로만 수업했을 거야’, ‘코로나 걸려서 타지에서 괜히 고생만 했을 거야’, ‘영어는 입 밖에도 못 내보고 집에서만 뒹굴다 왔을 거야’ 등등.. 지질한 생각으로 불합격의 아쉬움과 아픔을 달래 본다.


스스로 평가하기를 첫 번째는 실패였다. 목표도 방향도 흐릿했고 절실하게 이루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두 번째는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가지는 못했지만 바쁜 삶을 살면서도 짬을 내어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서류 전형을 통과해서 면접까지 봤으니 문턱은 밟아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 세 번째는?’


내 맘 속에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아직 남아있다. 활활 타오르지는 않아도. 쉽사리 꺼지지 않는 불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내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계속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

내가 이런 불씨를 계속 품고 사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여러 다양한 열망을 갖고 사는 것 같다. 속에서 타는 뜨거운 무언가를 꺼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 같다.


마음속 불씨는 ‘하얗게 불태웠다’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어 만족스러운 잠을 청할 수 있게 해 주고, 새로이 시작되는 하루를 기대하며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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