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넌 후에...

다 해보고 싶어 7편

by 예일맨

천국의 저쪽 편에는 '무지개다리'라는 곳이 있답니다.

지상에서 사람과 가깝게 지내던 동물이 죽으면 그들은 무지개다리로 가지요.

그곳에는 우리들의 모든 특별한 친구들이 뛰놀 수 있는 초원과 언덕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넘치는 음식, 물, 햇살이 있고 우리 친구들은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하답니다.

아프고 나이 들었던 동물들은 건강과 활력을 되찾고

다치고 불구가 된 친구들은 온전하고 튼튼하게 됩니다.

우리 꿈속에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처럼 말이죠.


〈무지개다리를 건너다〉라는 시의 일부이다. 오랫동안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이 시는 비교적 최근인 ‘23년 2월 동물애호가인 스코틀랜드 국적의 에드나 클라인-레키(Edna Clyne-Rekhy)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19살이었던 1959년에 자신의 반려견 래브라도 리트리버 메이저를 떠나보낸 슬픈 마음을 글로 적어보라는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 이 시를 썼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시에서 사용한 ‘무지개다리를 건넌다(my pet crossed the rainbow bridge)’는 표현은 주변 서양의 여러 나라를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전해져 현재까지도 반려동물의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죽음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반려동물에 대한 인간의 애정이 얼마나 극진한지를 잘 보여준다. 비슷한 표현으로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는 ‘요단강을 건너다’라는 관용구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무지개다리’가 주는 따뜻한 느낌에 비해 아주 차갑고 무섭기까지 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들어보지도 못한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용어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저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며 기르는 “애완동물”에서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로 사람에게 주는 의미 자체가 달라졌으니 반려동물을 잃고 큰 슬픔을 느끼는 것이 이제는 결코 유난스러운 일이 될 수 없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으니 장례도 전과 비교할 수 없다. 대충 땅에 묻어버리거나(불법이기도 하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사람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 안치하는 경우도 많고 수목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2022년 7월부터는 알칼리용액으로 사체를 가수분해하는 친환경적 장례방식인 수분해장도 법적으로 허용되어 쓰이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리고 반려동물의 장례에 관한 이야기까지 길게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바로 내가 활동한 직장 내 학습 동아리의 활동 주제가 바로 “미생물 발효를 이용한 반려동물의 친환경적 퇴비화 장례”였기 때문이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내고 동아리 결성을 추진한 이 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반려동물이 죽은 뒤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동아리 이름을 “백 투 더 네이처(Back to the nature)”로 정하였다.


나는 사실 동아리가 만들어진 2021년 당시에는 (수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에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질병도 아니고 장례에 대한 연구를 한다니...’ 동아리를 만들건대 같이 해보자는 주동자들의 말에 사실 크게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에서 업무 외에 함께 연구하고 활동하는 동아리는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직장 동아리 활동이 처음이었지만 이미 우수한 동아리 활동으로 상까지 받아봤을 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도 일 잘하기로 정평이 난 분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고 실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분들이 여럿 계시니 그저 잘 따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큰 조직이어서 그런지 동아리 활동도 체계가 잘 잡혀있었다. 동아리 활동 지원금이 있어서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기관 방문 시 입장료, 모임 할 때 식사비용 등 활동비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활동을 하고 난 뒤에 활동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 보고서를 통해 활동을 평가하여 시상하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었다.


"백 투 더 네이처"의 공식적인 활동 기간은 2021년 3월부터 2022년 말까지 약 2년이었다. 활동내용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단순한 동아리 수준을 많이 넘어서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하고 깊이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한 것 같다.


가장 먼저 각자 분야를 나누어 “반려동물의 퇴비화 장례”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조사하여 발표하였다. 내용은 현재 반려동물의 장례방식, 동물보호법·폐기물처리법 등 관련 법령, 퇴비화 장례를 적법한 절차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절차 등이었다. 첫 모임이었는데도 풍성한 정보 공유의 시간이었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실제 가축 사체를 퇴비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님을 모셔 줌(ZOOM)으로 연구하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미생물 발효에 뛰어난 식견을 가진 멤버의 발표를 통해 조금 더 심도 있는 학습을 해나갔다.


그리고 반려동물 장례에 대한 설문조사, 반려동물 놀이터 견학, 반려동물 호스피스 및 펫로스에 대한 전문가 강연, 메타버스(제페토)를 활용한 반려동물 관련 가상공간 만들기, 발효과정(맥주 만들기) 실습, 환경보호를 위한 플러깅 활동, 야생동물구조센터 견학, 수분해방식을 도입한 반려동물 장례식장 견학 등 일일이 다 설명하기에 힘들 정도로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다.

게다가 반려동물 장례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동물보호과에 방문하여 일 년 정도 활동한 자료를 바탕으로 “퇴비화 장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정책 제안을 하였다. 비록 아직 실제 정책에 반영되지는 못하였다 할지라도 학습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가지고 현장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부서에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동아리 활동 가운데 가장 힘들기도 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퇴비화 실험”이었다. 실제 가축의 사체를 가지고 퇴비화 장례(?)를 해보는 실험이었다(이때 사용한 사체는 내가 연구하고 안락사한 육계였다).

먼저, 나무를 가지고 사각의 공간이 있는 틀을 만들고 비가림 지붕을 설치한다(이것을 ‘compost bin’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 톱밥과 왕겨를 넣은 다음 세 마리의 닭 사체를 넣고 다시 톱밥과 왕겨로 덮은 뒤 물을 뿌려준다. 또한, 그 더미 속에는 살아있는 AI(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작은 캡슐을 몇 개 넣는다.


그리고 미생물 발효가 일어나면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매일 하루 두 번 이상 더미 속의 온도를 체크하고, 발효가 잘 되도록 일주일마다 더미를 한 번씩 뒤집어 주며 닭 사체의 상태를 확인한다. 또한, 그때마다 캡슐을 하나씩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바이러스가 여전히 살아있는지 검사한다.


결과적으로 더미를 만들고 7일 정도 지나면 70℃ 이상의 최고 온도에 도달하여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멸하고, 14일째에는 2kg에 육박하는 토실토실한 육계 세 마리가 뼈만 남기고 흔적도, 냄새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비록 반려동물을 이용한 실험은 진행하지 못하였지만 “퇴비화” 방법은 그 어떤 물리화학적 처리 없이도 반려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더 나은 미래 환경을 위해 좋은 장례법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한 번 생각해보지도 않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배우고 경험했다. 늘 하던 것만 해서 시야가 좁은 나에게 ‘잘 모르고 새로운 분야지만 한 번 해보자’고 도전해 준 그들에게 정말 고맙다. 그리고 누군가와 더불어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같이 해보자’고 이끌어준 그들이 참 존경스럽다.


지나간 내 삶의 일부를 잠깐 되뇌어보니, 최근 들어 눈에 많이 들어오는 명언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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