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피부사상균증(Dermatophytosis)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에서 살아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럴듯한 이상만 세워놓고 정말 하고 싶은지 알지도 못하면서 2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군 대체복무가 1년 남았습니다. 그 뒤에는 살벌한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두려웠습니다.
앞날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항스타민제를 한 알씩 꼭 먹어야 했습니다. 머리숱만큼은 자신이 있었고 아버지도 멀쩡하시니 탈모 걱정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머리카락이 전보다 더 많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마 쪽 머리카락이 유난히도 얇아지고 있습니다.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대머리가 될 수는 없기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합니다. 전국의 탈모인들이 모인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 정보를 수집합니다. 탈모에 좋다는 샴푸도 구입합니다. 강릉 시내의 두피 클리닉샵에도 들르고 정말 탈모가 맞는지 전문가의 소견을 듣기 위해 피부과에도 가 봅니다.
역시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여전히 이마는 넓지만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이 확실합니다. 3자로 된 이마가 보기에 좋지는 않지만 진짜 탈모인이 보면 부러워할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제 결혼도 했고 나이도 40대이니 대머리가 되어도 전보다는 괜찮습니다.
갑자기 탈모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땅콩이의 원형탈모 때문입니다. 등 쪽에 큰 땜빵이 하나 보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뒷다리 쪽에 하나, (털이 많지 않아서 크게 티가 나지는 않지만) 왼쪽 가슴에 하나, 양쪽의 네 발 아래쪽에 하나씩 있습니다. 증상으로 따지면 과거의 저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이 정도 탈모라면 결혼은커녕 연애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탈모에 대한 소견을 듣기 위해 전문가를 찾습니다. 원형의 탈모 증상으로 보아 곰팡이성 피부질환의 하나인 링웜(Ring worm), 다른 말로 피부사상균증(Dermatophytosis)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 않고 낫는 단계에 있는 것 같으니 먹는 약보다는 국소적으로 피부염 치료제를 뿌려주면 머지않아 좋아질 거라고 합니다.
땅콩이 원형 탈모는 곰팡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땅콩이의 탈모에도 진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군데군데 생긴 탈모 하나하나에서 과거 땅콩이가 받았을 스트레스가 하나하나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땅콩이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치일 뿐 당장에 처한 현실 자체가 스트레스였을 것입니다.
하루 두 번 스프레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마스크를 착용합니다(뿌리면 냄새가 꽤 지독합니다). 땅콩이는 진즉 눈치를 채고 떠날 채비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도망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요리조리 피해도 다 저의 손바닥 안입니다. '칙칙' 반항할 새도 없이 처치가 끝납니다.
어느덧 땅콩이의 탈모 부위에 털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털이 풍성하게 자라서 아주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털이 자라나 뚫린 곳이 채워지듯, 그의 구멍 난 가슴도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추억으로 가득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