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왔던 그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반려견 놀이터

by 예일맨

탄천변에 반려견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습니다. 종종 탄천변을 걸으면 귀여운 반려견들이 놀이터 안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와 저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담장 너머로 갑갑한 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노니는 털복숭이들을 구경하다가 가곤 했습니다.


땅콩이를 입양하고 줄곧 그 놀이터에 땅콩이를 데려가고 싶었습니다. 땅콩이가 목줄 없이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집 밖에 없는데 그곳에 가면 집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서 잠시나마 해방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땅콩이 걸음으로 가면 20분은 족히 걸리는 곳이라 선뜻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왕복 40분에다가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까지 더하면 어린 땅콩이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직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땅콩이기에 집 주변만 가볍게 함께 거닐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한편으론 땅콩이가 아직 많이 어리고 체구도 작기 때문에 다른 반려견들에게 물리거나 기에 눌려 위축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겁이 많아서 덜덜 떨기 잘하는 땅콩이가 놀이터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양센터에서 다른 강아지들과 활발하게 뛰어노는 땅콩이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걱정만 하지 말고 일단 가보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족들 모두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에 잘 대비하자고 각오를 다진 후에 탄천 쪽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탄천변의 반려견 놀이터는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한 면은 대형견 놀이터, 다른 한 면은 소형견 놀이터입니다. 대형견 놀이터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급하게 소형견 놀이터로 들어가는 이중문을 열어젖힙니다. 문 옆에는 친절하게도 배변봉투가 비치되어 있고 쓰레기통도 있습니다.


놀이터 안에는 땅콩이 만큼 작은 흰색 비숑 한 마리와 말티즈 두 마리가 있습니다. 무슨 종인 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무서워 보이는 개도 한 마리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반려견이 우리 뒤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목줄을 완전히 풀었습니다. 모두의 눈이 땅콩이를 보고 있습니다.


땅콩이는 잠깐 놀이터 가장자리와 흙냄새를 맡습니다. 그리고 놀이터 전체를 바라봅니다. '아, 이런 곳이구나'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흰색 비숑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본 비숑은 놀라서 도망가기 바쁩니다. 안 되겠는지 보호자에게 나 좀 지켜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뛰는 땅콩이를 보고 흥분한 우리 집 큰 강아지는 덩달아 뛰기 시작합니다. 둘은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건지 여기저기 천방지축으로 날뜁니다. 아직 2.4kg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강아지라도 네 발로 뛰니 엄청나게 빠릅니다. 아이도 이내 인정을 합니다. '땅콩이 네가 이겼어. 너 엄청 빠르다'


땅콩이는 지치지도 않고 놀이터 안에 있는 동족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갑니다.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고 엉덩이 쪽으로 코를 돌립니다. 잠시 코의 대화를 나눈 뒤에 '너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같이 놀자' 하는 것처럼 장난을 겁니다. 하지만, 땅콩이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그의 활발함을 따라갈 자가 없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아이는 땅콩이를 또 자극합니다. '땅콩이'를 연신 외치며 달립니다. 그러면 땅콩이는 따라서 또 달립니다. 땅콩이가 뛰니 놀이터 안에 있는 다른 강아지들도 분위기에 휩쓸립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는 여러 강아지들을 달고 다닙니다.

보기만 해도 숨 가쁜 시간이 지납니다. 다시 목줄을 손에 듭니다. 아쉽지만 가야 합니다. 분명 힘들었을 땅콩이를 품에 안고 걷습니다. 그리고 땅콩이를 바라봅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오래 달리고, 덩치에 기죽지 않고 멋지게 들이대는 멋진 똥꼬발랄 강아지였습니다. 넓고 자유로운,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숨겨왔던 그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좁디좁은 집 거실에서 땅콩이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친구들보다 오감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강아지 친구들이 많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땅콩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는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약속합니다.


"땅콩아, 앞으로 놀이터 자주 데리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