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이 싫어하는 것 #1
땅콩이는 잘 짖지 않는 강아지입니다. 추석 명절에 본가에 처음으로 데려갔는데 우리 부모님은 땅콩이가 짖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하셨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6시간 정도 계속 함께 있었는데 소리 한 번 나질 않으니 부모님이 말씀하십니다.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저런 강아지면 키울 만하겠다고...
이런 땅콩이도 짖을 때가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과 같은 공간인 거실에 아무도 없는데 문간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문 사이로 방 안에 사람들이 보이는 경우입니다. 평상시 이런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잦지는 않지만, 아이가 종종 방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 때 일어납니다. 눈앞에 사람이 보이는데 본인은 함께 할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답답한 마음에 '왈왈' 하고 짖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간식이나 사료를 줄 때입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자꾸 '기다려', '앉아', '발' 하며 먹이를 무기로 어설픈 훈련을 하려 드니 짜증이 나나 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서 기다릴 줄은 알지만 간식이나 사료를 들고 있는 손을 향해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조급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살짝살짝 그르렁 하는 소리를 냅니다.
세 번째로는 가장 드문 경우이지만 주기적으로 일어납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바닥을 청소할 때입니다. 처음에는 진공청소기 소리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어디 사전에서 푸들은 청소기 소리와 헤어드라이어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무서워하기로 유명한 견종이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도 한 번 검색해 보니, 진공청소기 소리의 주파수가 강아지가 잘 들을 수 있는 영역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청력이 월등히 뛰어난 강아지는 그 소리를 우리보다 훨씬 더 크게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에게도 시끄럽게 들리는 이 청소기 소리가 땅콩이에겐 무시무시한 소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 수는 없기에 노심초사 청소기를 꺼냅니다. 자주 보는 물건이 아닌지라 땅콩이는 약간 경계의 눈빛을 보입니다. 엄지 손가락으로 전원을 켜자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땅콩이의 무게중심이 더 낮아집니다. 진공청소기 소리도 시끄러운데 여간해선 듣기 힘든 땅콩이의 카랑카랑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진공청소기는 그렇다 치고... 먼지를 빨아들인 후에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고 마대 자루를 꺼내드는데 땅콩이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자루라고 해서 옛날 학교에서 가끔 매질의 용도로 쓰였던 그것이 아닙니다. 걸레포를 양쪽 끝 네 군데에 고정시켜서 쓰는 그것입니다) 진공청소기를 대하는 자세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 그러지?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해서 진공청소기를 다시 가져와 전원을 켜지 않은 채로 바닥에 똑같이 밀어봅니다. 역시나 땅콩이는 소리가 날 때와 마찬가지로 바짝 몸을 수그리며 공격 태세를 갖추고 '왈왈' 짖습니다. 분명 소리와는 상관이 없는 땅콩이의 반응입니다. 객관적인 실험을 진행하였으니 믿을 만합니다.
하지만, 단지 이것으로 나의 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없습니다. "소리"가 아니라는 보다 명확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곧이어 헤어드라이어를 가지고 옵니다. 목욕하고 말릴 때에는 분명히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젖어있어 추운데 바람이 따뜻하게 몸을 데워준다는 "특수한 상황에 따른 무반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땅콩이를 안아 들고 헤어 드라이기의 스위치를 밀어 올립니다.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땅콩이는 소리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공청소기와 마대 자루의 모양 곧 "기다란 막대에 바닥 쪽 끝에는 사각형의 판이 달려 있는 모양"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고 짖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각형 판이 없는 그냥 긴 막대라면? 아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두꺼운 종이로 된 창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똑같이 바닥에다 대고 밀어봅니다. 땅콩이는 그것에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땅콩이가 과연 무엇을 싫어하는지, 실험이 끝났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짖어대는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혀냈으니 어떻게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낼 수 있을까요? 진공청소와 걸레 질을 아주 포기할 수도 없고... 좀 답답하긴 합니다.
일단은 구석에 처박혀 있는 두 물건을 땅콩이와 좀 더 가까운 곳에 두어 볼까 합니다. 땅콩이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기다란 녀석들은 땅콩이가 사는 곳을 더 좋게 만들어 주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풀꽃ㆍ1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