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식분증(喰糞症)
땅콩이는 "화장실 우등생"입니다. 가끔 깨끗한 패드 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패드를 물어뜯는 장난을 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패드 위에다 배변을 합니다. 입양하고 약 20일 정도는 패드가 아닌 곳에 오줌을 좀 싸놓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실수를 전혀 안 합니다.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산책할 때 야외 배변을 한 번씩 하고, (제가 휴직 중이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 똥을 싸면 바로 치워줬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입양하기 전에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 너무 잘 되어서 땅콩이 입양이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전에 외출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흰색 배변패드 위에 노란색 오줌 말고 짙은 갈색의 문드러진 자국이 보입니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는 "똥의 흔적"입니다. '누가 그 똥을 옮겼을까?' 주위를 둘러봅니다.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해맑은 땅콩이는 반갑다고, 안아달라고 꼬리만 냅다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저의 심각함은 알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땅콩이의 입 주변을 관찰합니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도 맡아봅니다. 발바닥에 혹시 묻었는지 손으로 슬쩍 문질러도 봅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습니다. 분명 범인은 이 녀석인데... 입 주변에 묻어있는 것도 없고 똥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갑니다. 여전히 집에서 나갈 때에는 깨끗했던 패드에 누런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가족 모두 땅콩이를 쳐다봅니다. 그는 역시 시치미를 뚝 뗍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비도 오고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거실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켜고 앉았습니다. 앉기가 무섭게 땅콩이는 책상 아래로 들어가 두 발을 들고 심심하니 놀아달라고 떼를 씁니다. '아까 산책도 갔다 왔잖아. 조금 이따가 놀자' 그의 애교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고 작업에 열중합니다.
집 안에 정적이 흐릅니다. 까불까불 놀던 땅콩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땅콩이가 자고 있나 땅콩이 침실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땅콩이는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돌려 똥 한 덩어리를 먹어치웁니다. 드디어 현장에서 범인의 증거를 잡은 것입니다.
"땅콩!!!!"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습니다. 탐색을 하거나 냄새를 맡지도 않고 막 나온 똥을 바로 입에 넣고 쩝쩝거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아직 먹지 못한 똥 덩어리 몇 개를 치우고 땅콩이를 매섭게 쳐다봅니다. 역시 눈치가 빠른 땅콩이는 식탁 아래로 줄행랑을 칩니다.
키우는 주인이 달갑지 않아서 그렇지 강아지의 식분증(喰糞症)은 문제 행동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정상 범주 안에 있는 행동이며 구충제를 잘 먹을 경우에는 몸에 해로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흔적을 감추고자 하는, 오랜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약육강식의 험난한 야생이 아닌 평화롭기 그지없는 집 안에서 똥을 먹는 행동을 보이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중 아직 어린 강아지인 땅콩이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네 가지 정도로 생각됩니다.
첫째로, 어릴 때 좁고 더러운 환경에서 살았을 경우 호기심 또는 비위생적인 것을 개선하기 위해 똥을 먹기 시작했을 가능성
둘째로, 사료량이 부족하여 배가 고프거나 공급하는 먹이의 영양소가 부족한 경우
셋째로, 심심해서 한 번 먹어본 똥이 맛있어서 계속 먹는 경우
넷째로, 훈련과정 중 보호자의 실수로 인해, 똥 싼 것 자체를 혼이 난 원인으로 잘못 판단하여 똥 자체를 먹어서 감춰버릴 가능성
아직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기에 이 행동을 교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료는 하루에 두 번 충분하게 주고 가능한 한 하루 두 번 이상 산책을 해서 야외 배변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종일 관찰한 결과 땅콩이가 생각보다 똥을 자주 쌉니다. 그래서 야외 배변이 완전한 해결책을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배변 후 똥을 먹는 경우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으려고 애써 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똥을 먹어치우는 땅콩이를 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심지어 산책을 30분 동안 하고 왔는데도 똥을 한 덩이 싸고 나서 저의 눈치를 살짝 살피고는 똥에 관심을 보입니다. 변에 고춧가루나 식초를 뿌려서 강아지가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두 개를 다 적용해 봅니다.
똥에 식초만 뿌렸을 때에는 그래도 견딜 만 한지 한 번 먹어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어서 고춧가루까지 솔솔 뿌려주니 독한 냄새를 맡고 슬금슬금 피합니다. 이것으로 성공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과연 내일 외출한 뒤에 집에 돌아오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역시 하나의 생명을 양육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관리를 해주는 것만 해도 손이 많이 가는데 행동 교정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여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평생 돌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칭송받아야 마땅합니다.
초보 반려인이자 바보 수의사는 땅콩이를 통해 오늘도 또 배웁니다. 도대체 그 배움의 끝은 어디일지... 빨리 그곳에 다다르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한 걸음, 두 걸음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 보렵니다. 가다 보면 언젠가 어렴풋이 보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