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피똥

반려견 혈변

by 예일맨

땅콩이 변에서 사료와 소량의 간식만 줄 때에는 나지 않던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아마 낮에 먹은 고구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도 고구마를 먹고 방귀를 뀌면 구린내가 강하게 나는데 개도 비슷한 가 봅니다. 변도 평소보다 약간 물러보이기는 하는데 어쨌든 잘 배출하고 있으니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아내는 저와 다르게 정이 많습니다. 저녁 상을 거하게 차려놓고 먹을 때면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땅콩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땅콩이가 먹을 만한 것이 있으면 꼭 조금씩이라도 떼어 줍니다. 사람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은 동물도 위한다는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고구마를 조금씩 나눠 줍니다. 조각조각 내서 주다 보니 어느새 한 덩이를 다 줍니다. 크기는 땅콩이가 한 번에 내놓는 덩어리보다 약간 더 큰 것 같습니다. 땅콩이는 만족할 줄 모르고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습니다. 아내도 아이와는 다르게 게걸스럽게 잘 먹는 땅콩이를 보니 먹이는 재미가 있나 봅니다.


아내는 이어서 사과도 줍니다. ABC 주스 만드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아내는 사과를 자주 깎아 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사람이 잘 먹지 않는 씨와 꼭지 주위의 단단한 부분은 이제 땅콩이 차지입니다. 땅콩이가 잘 먹으니 전보다 버리는 것이 적다고 흐뭇해합니다.


모두의 만찬이 끝나고 잠자리에 듭니다. 늘 잘 먹고 잘 소화해 내는 땅콩이니까 별 걱정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풍성하게 잘 먹이니 기분도 좋습니다. 여전히 먹을 욕심이 가득해 보이지만 땅콩이도 오늘만큼은 밥량을 가지고 투정 부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새벽에 가끔 한 번씩 깹니다. 자기 전에 물을 많이 마시거나 과일 같이 수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기 때문입니다. 방문을 열고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데 시커먼 덩어리들이 보입니다. 땅콩이 배변 패드 위입니다. 범상치 않은 향기를 풍기면서 평소와는 다른 웅장한 몸집을 자랑합니다. '역시 많이 먹기는 했구나' 생각하며, 얼른 똥을 치우고 다시 뜨끈한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 바탕 거사를 치른 땅콩이는 아침 기지개를 주욱 핍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엉덩이를 낮추며 힘을 주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새벽에 본 것보다 약간 더 무른 것도 같습니다.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별 일이야 있겠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아침 사료를 줍니다. 역시 게눈 감추듯 먹어치웁니다.


아침에 교회 모임이 있어 급하게 차를 타고 떠납니다. 오래간만에 수다를 떨며 산을 오르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톡이 옵니다. 사진입니다. 확연히 무른 똥과 선홍빛의 피가 보입니다. '땅콩이 피똥 쌌어. 임상하는 사람한테 좀 물어봐요' 역시 아는 게 없는 바보 수의사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몰라도 모른다고는 절대 안 합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억 속 저편의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하지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식욕이 있다는 것이고, 어쨌든 똥을 싸기는 하는 것이니까 일단 좀 지켜보자'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위급해 보이지는 않으니 상식 수준에서 일반적인 답변을 보냅니다.


불행하게도 그날은 모두가 바쁜 날입니다. 아내는 점심에 볼 일이 있고, 내가 교회 모임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가족이 모두 같이 또 다른 모임에 가야 합니다. 상태를 지켜봐야 하니 하는 수 없이 땅콩이를 데리고 다닙니다. 다행히 모두 야외에서 만나는 거라 땅콩이도 같이 다닐 수 있습니다.


피똥을 쌌으니 사료를 줄 수가 없습니다. 땅콩이는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별 수 없습니다. 일단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는 굶어야 합니다. 저녁 6시경, 땅콩이가 피똥을 다시 한번 쌉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8시경 다시 한번 똥을 쌉니다. 그리고 피를 두 방울 뚝뚝 떨어뜨립니다.


바로 동물병원에 가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가도 특별히 해줄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에 올라온 전문가의 글도 열심히 뒤져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선배에게도 전화해서 물어봅니다.


결론적으로 일단 지켜보기로 합니다. 구토, 발열, 식욕부진이 없고 몸이 처지지 않으니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질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갑자기 평소에 잘 먹지 않던 고구마를 많이 먹었고 거기에다 사과까지 더해 먹었으니 식이 변화에 따라 소화 기능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이 주된 원인일 것이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혈액의 색도 어두운 빛이 아니라 붉은색을 띠고 있으니 위장 부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량의 변을 보기 위해 힘을 과하게 주다가 항문 조직 일부에 상처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땅콩이를 봅니다. 여전히 활력이 넘칩니다. 그리고 배고파 보입니다. 24시간을 굶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싱크대 쪽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계속 기웃거립니다. '나 이제 괜찮으니 밥 좀 주쇼!'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 같습니다.


평소의 절반도 안되는 사료를 줍니다. 몇 초 안에 흔적도 없습니다. 분명 밥을 주었는데 안 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는 식구들 주변을 서성거립니다. 뭐 흘리는 거 없나 아이 곁을 맴돕니다. 아내에게는 꼬리를 흔들어 댑니다. 내 매서운 눈빛은 그들의 손을 향해 있습니다. 눈치가 보이는지 감히 움직이지 못합니다.


'정상적인 변을 볼 때까지 내 허락 없이 절대 아무것도 주면 안 돼요!' 혹시나 또 실수를 범할까 걱정되어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던집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 땅콩이는 매트에 코를 흘끔거리더니 이내 특유의 자세를 취합니다. '땅콩이 똥 눈다! 쉿!' 모두가 숨죽여 그곳을 바라봅니다. '툭' 하나가 땅에 떨어지자 아내가 말합니다.


"우쭈쭈 우리 땅콩이 고생 많았네~ 사과 좀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