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노즈워크(nose work)
요즘 아이가 목이 빠지도록 월요일을 기다립니다. 직장인들에게는 힘든 한 주가 시작되는 안 왔으면 하는 날이지만 우리 아들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새로 시작한 방과후수업 "로봇과학"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이 수업을 너무 좋아합니다. 로봇과학 키트와 설명서는 늘 아이 방바닥에 널려 있습니다. 짬이 날 때마다 방에 틀어박혀서 로봇을 만듭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수업인데 10월 2주 연속 휴일 때문에 못하게 되자 엄청나게 아쉬워합니다.
아이는 책에 나오는 것을 하나하나 완성해 갑니다. 끝낼 때마다 아빠와 엄마를 불러댑니다. 한껏 자랑을 늘어놓고, 로봇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친절하게 설명도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는 원대한 꿈을 말합니다.
수업에서도 칭찬받는다고 합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만드는 속도가 좀 더 빠른가 봅니다. "성취감"을 느낀 아이는 더 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하여 즐겨하면서 그것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아주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다 뿌듯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이 "성취감"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직장인은 퇴사나 이직을 고민하게 됩니다. 아이를 보내고 집에 홀로 남은 "경단녀"는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일하던 때를 회상하며 극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근로자들이 정년퇴임 후 더 빠르게 노인이 된다고들 합니다.
굳이 다른 사람의 예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필자도 육아휴직을 하면서 직장과 일이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시간의 자유를 얻었지만, 이 "성취감"의 결핍에서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서 꼬박꼬박 도서관으로 출근해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주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성취감은 인생뿐 아니라 견생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반려견은 그저 주는 밥 잘 먹고 주인의 관심만 받으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볕이 드는 베란다 쪽 거실 공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땅콩이를 보고는 '넌 참 팔자 좋구나. 부럽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개도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광활한 들판에서 민감한 후각으로 먹이의 냄새를 포착하여 궁지로 몰아넣고 끝내 쟁취하여 성공의 포효를 내지르는… 야생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개가 좁은 집 거실 안에 갇혀있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EPL에서도 통하는 축구선수가 동네에서 배 나온 아저씨들과 조기축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개는 사람의 십만 배에 달하는 뛰어난 후각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시각으로 인지한다면 개가 세상을 보는 창문은 바로 후각이라고 합니다. 또한, 개는 사람인 보호자의 감정조차도 냄새로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들을 늘 일정한 냄새뿐인 집에만 두는 것은 능력의 극히 일부만 발휘하도록 심한 제약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개들을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황홀한 냄새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자신의 잠재력을 조금이나마 더 발휘하여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매번 가는 산책로도 좋지만 새로운 향기로 가득한 미지의 땅으로도 데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냥 하루를 살아내기 벅찬 사람들에게 있어 반려견을 다양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이 고안해 냈습니다. 바로 노즈워크(nose work) 훈련입니다.
노즈워크는 말 그대로 개가 냄새를 맡는 모든 활동을 의미합니다. 좁은 의미로는 후각을 이용해 숨겨져 있는 물건이나 간식 또는 사료를 찾도록 하는 일종의 놀이 훈련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료를 그냥 먹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사료를 후각을 이용해 찾아 먹는 노즈워크를 통해 반려견의 스트레스나 분리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반려견의 두뇌 발달에도 매우 도움이 되고 "먹이" 보상도 있기 때문에 반려견에게 큰 성취감도 안겨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집도 땅콩이를 위한 노즈워크 장난감을 마련했습니다.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었는데, 역시 좀 단조로워서 땅콩이가 금세 실증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손재주가 좋은 아내가 못쓰는 양말과 책 분리대를 사용해서 훌륭한 노즈워크 도구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나가기 직전에 간식을 넣은 이 노즈워크 도구를 던져주면 세 사람이 인사를 하며 쳐다봐도 눈길 한 번 주질 않습니다. 일단 한 가지 성공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냄새를 탐색하며 느끼는 것이 이 녀석을 기분 좋게 만든다고 하니 또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스럽습니다.
소리나 이미지는 저장이 되니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어떤 것이든 바로 나오도록 만들 수 있지만, 냄새는 어쨌든 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물질이 필요하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냄새는 금세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기도 하니 좀 더 어렵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한 번 더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땅콩이가 다양한 냄새를 맡아보고 또 그것을 찾아볼 수 있도록 주위를 잘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식탁 위에 삶아놓은 정안 알밤이 보입니다. 땅콩이 코에 한 번 갖다 댑니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양말 속에 숨겨 놓습니다. 한참을 애쓰더니 둥그런 알밤을 밖으로 꺼냅니다. 뿌듯한 땅콩이가 씨익 웃으며 저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넌 내게 성취감을 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