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사랑해

반려견 식탐

by 예일맨

"아들아, 얼른 먹자. 학교 갈 시간 다 됐어"

"30분 되면 치울 거야. 숟가락 들자"

"아, 쫌!!!!! 언제까지 그럴 거야?!! 아빠도 잔소리하기 싫어!!!"


아이는 식탐이 없습니다. 식사 때마다 전쟁입니다. 얼른 먹고 학교에 가야 하는 아침 시간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아침이니까 식욕이 좀 없을 수도 있지 않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점심과 저녁 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고, 식탁에 앉아 밥 달라고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부럽기만 합니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자, 젤리, 사탕 같은 간식이나 수박, 사과, 멜론 등의 과일은 논외로 합시다) 치킨, 돈까스, 삼겹살 등 각종 굽거나 튀긴 고기 음식, 햄버거, 자장면, 라면을 좋아합니다. 이런 음식을 해주면 그래도 좀 더 잘 먹기는 하지만 매번 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건강에 그리 좋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굶겨야 하나...?' 생각도 해보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건강하게 키도 쑥쑥 자라게 하려면 잘 먹여야 하니 가뜩이나 식탐이 없는 아들을 위해 매 끼니 밥을 챙겨주려고 부단히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쨌든 식탐도 타고난 것이고, 본인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왜 너는 먹는 것을 안 좋아하냐고' 애꿎은 아들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비교해서는 안되지만 너무 비교되는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꼭 붙어서 같이 살고 있으니 더욱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름도 "먹을 것"인 "땅콩"입니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이 친구의 식탐을 진즉 알아보고 그에 걸맞은 이름으로 잘 지은 것 같습니다.


땅콩이는 식사 시간이 되면 매우 흥분합니다. 사료를 소분해 놓은 작은 지퍼백이 들어있는 싱크대 서랍을 열자마자 달려와서 짖기 시작합니다. 지퍼백을 들고 컵에 부으면 더 난리가 납니다. 어서 달라는 듯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야단법석을 떱니다. 밥그릇에 사료가 떨어질 때 나는 '차르륵' 소리와 동시에 급하게 달려와 머리로 컵을 밀어버립니다.


순식간입니다. 씹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내가 밥을 줬나?' 아이나 아내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왜 저렇게 먹는 것을 좋아할까?' '당뇨 같은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이 경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밥을 준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을 텐데 대체 왜 저리 먹는 것에 집착할까?' 참 궁금합니다.


당연히 그 누구도 정답을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개의 조상인 늑대의 삶에서 이유를 추측할 따름입니다. 늑대는 고양이와는 다르게 집단생활을 하며 자기의 몸집보다 큰 동물을 어렵게 사냥해서 먹습니다. 사냥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며칠씩 굶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두는 습성이 있는데, 그것이 후손인 개에게도 전해져 남아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개의 "식탐"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식탐이 많기로 유명한 레브라도 리트리버에 관한 것인데요, 2016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레브라도 리트리버 300여 마리를 대상으로 식욕 조절 유전자인 POMC(pro-opiomelanocortin)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 약 23%의 리트리버가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 변이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생산을 저해하여, 리트리버로 하여금 밥을 많이 먹어도 금세 왕성한 식욕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리트리버의 과한 식탐도 결국에는 조상과 부모로부터 "그저 받은 것"일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14년간 봐온 것, 정말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유전자야. 여기서 잘 생각을 해야 돼. 내 유전자가 아니다 싶으면 빨리 공부를 포기하는 게 현명한 일이야"


사교육계의 전설,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회장의 말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공부를 잘할지, 못할지는 이미 유전자로 다 결정되어 있으니 공부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지는 자신에 대해 잘 파악하는 것, 곧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식탐이 없는 것도, 땅콩이가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것도 모두 타고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유전적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를 식탐이 많은 다른 친구와 비교하며 잘 먹지 않는 것을 비난하며 보다 더 식탐을 부릴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땅콩이의 왕성한 식탐을 줄이기 위해 혼을 낸다거나 일부러 밥을 주지 않고 애간장을 태운다면 땅콩이에게 그것만 한 스트레스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아이가 먹고 싶을 때만 먹고, 먹고 싶은 것만 먹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땅콩이가 달라는 대로 다 주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되, 한편으론 양육자이자 보호자로서 그 본성을 토대로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것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방향대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 그리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 원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사람을, 나 자신을 먼저 잘 아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아껴주는 과정을 거쳐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위해, 또한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이 최선일지 숙고하고... 그 이후에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P.S.

아이와 땅콩이의 식탐에 관해 그냥 써보다가 뜻하지 않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글쓰기와 함께 이루어지는 사색은 스스로에게 인생에 대해 가르칩니다. 놀랍습니다.


I love you just as you 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