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자녀양육
아이는 그림을 많이 그립니다. 일기도 그냥 글로만 적는 일기가 아니라 그림일기를 쓰고요, 편지를 써도 꼭 그림편지를 씁니다. 초등학생의 경우 라떼는 없었지만 요즘에는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갔다 온 뒤에 내야 하는 보고서를 쓸 때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아직 어리기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으로 말이나 글로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떠오르는 것을 즉흥적으로 그리는 것이 더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아이의 그림을 보면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주에 이틀은 집에 오지 않고 관사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출근하는 경우에도 아침 6시가 조금 넘으면 나갔고 퇴근하면 거의 아이가 잘 시간이라 평일에는 아이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시에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에는 제가 없습니다. 슬프게도...
그리고 아이의 그림을 통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등장하는 그림이 가장 많습니다. 때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만난 단짝 친구, 그리고 아이가 흠모하는 여자 친구가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그릴 때는 제일 좋아하는 놀이인 축구하는 모습을 선정할 때가 많고 당시의 최애 장난감 또는 로봇을 함께 그립니다.
오늘 아침 아이가 학교에서 쓴 그림편지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습니다. 땅콩이와 공놀이한 것을 그렸네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은 "즐거워"입니다. 아이는 땅콩이를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가 땅콩이를 향해 갖는 마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아이답게 아이처럼 순수하게 아끼고 사랑해 줍니다.
반려동물이 아이의 정서에 굉장히 이롭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는 막연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약 두 달 동안 땅콩이와 같이 지내보니 지식과 짐작을 넘어서는 "관계의 힘"을 실제로 체감하게 됩니다.
아이는 외동이기에 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어른 둘이서 한 아이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직 처제와 처남이 미혼이기고 아이 셋인 형은 이민을 갔기에 가족 모임이면 아이를 향한 관심이 더욱 증폭됩니다. 가뜩이나 아이가 귀한 요즘, 받기만 하는 아이가 받기만 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까 봐 좀 걱정스럽습니다.
냉장고를 여닫을 힘이 있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낼 정도로 충분히 키가 큰 아이는 식탁을 두드립니다. '우유를 먹고 싶은데 우유가 없다고...' '숟가락 옆에는 항상 우유가 든 컵이 있어야 하는데 왜 아빠가 준비를 안 해놓았을까...?' 말은 안 하지만 제게 눈짓을 줍니다.
아이는 현금 부자입니다. 종이돈을 잘 쓰지 않는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나 어른들에게 받은 용돈을 지퍼가 달린 검은색 지갑에 잘 모으고 있습니다. 게다가 구두쇠입니다. 엄마, 아빠를 위해서는 당최 지갑을 열려고 들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돈이 없으면 '나중에 줄 테니 일단 카드로 사달라'라고 말하고는 집에 오면 시치미를 잡아뗍니다.
이런 우리 아들이 땅콩이 아침은 무조건 자기가 주겠다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싱크대 서랍을 열어서, 꼭 닫힌 지퍼백을 벌리고 분홍색 컵에 아빠에게 배운 대로 정해진 양의 사료를 따릅니다. 그러고 나서 흥분해서 달려드는 땅콩이를 잠시 기다리도록 자제시킨 후에 사료를 밥통에 붓고 지퍼백을 정리합니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짠돌이가 돈을 쓴 것입니다. 무인 반려동물 용품점에서 개 껌을 삽니다. 가격도 무려 5천 원입니다. 엄마 아빠가 뭣 좀 사달라고 하면 그렇게도 아까워하던 녀석이 후하게 제 돈을 씁니다. 심지어 기분도 좋아 보입니다. 형아가 개 동생을 위해 무언가 하나 해줬다는 것이 정말 뿌듯한 가 봅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혼자라 지금껏 집에 혼자 둔 적이 없습니다. 또한 원체 겁이 많고 불안도도 높은 아이라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심지어는 엄마, 아빠 둘 중 한 사람만 없어도 엄마(아빠) 어디 갔냐고 계속 찾는 아이입니다. 그러던 아이가 며칠 전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나 이제 집에 혼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아~ 땅콩이가 있으니까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닌 건가?"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더 많이 배운다고 합니다. 아이를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들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날로 성장하는 아이가 주는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으며, 아이와의 끈끈한 애착 관계에서 오는 행복감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아이를 기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반려동물은 평생 내가 주기만 해야 하는 "자라지 않는 아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반려동물은 결코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돈이나 선물과 같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 있었습니다. 같은 사람은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자였습니다. 게다가 사람이 말과 행동으로 주는 아픔을 이들은 결코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반려견 땅콩이와의 관계 속에서 지금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람 사이에서 느껴보지 못한 완전히 색다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말도 못 하고 손도 많이 가는 이 털복숭이 먹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겨나 우리 집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삶에 끼어들어와 소중한 친구이자 선생이 되어 줍니다.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역시... 해보아야 진짜로 알 수 있습니다.
- Anatole 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