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웃음
아침부터 여러 웃음을 만납니다. 급하고 심각한 8시 30분, 아이는 두 성인의 티키타카 섬세하고 정교한 공격의 위협에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끝내 버티고 부드럽게 탈압박하여 결국 웃음골을 만들어 냅니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아이의 친구는 헐레벌떡 반대로 뛰어갑니다. '실내화 주머니 안 가져왔구나?' 아들이 물으니 진지하게 대답합니다. '아니, 가방을 안 가져왔어' 방심한 우리의 허를 찔러 큰 웃음을 주고는 무심한 듯 바쁘게 제 갈길을 갑니다.
아이를 학교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고서 다시 발걸음을 돌립니다. 준비가 조금 늦은 아내가 걸어올 방향으로,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갑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있는 그녀가 보입니다. 여전히 가녀린 몸과 작은 얼굴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햇빛보다도 찬란한 미소가 나를 향해 반짝거립니다.
아이의 학교를 다시 지나 함께 길을 걷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차가 다니는 작은 길 앞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반대편에 아이의 친구가 또 보입니다. 9시가 다 돼가는데 여유가 있습니다. 도로도, 횡단보도도 아니데 좌우를 아주 찬찬히 자세히 신중하게 살피고서 길을 건넙니다. 우리 얼굴에는 또 한 번 웃음이 번집니다.
매일 앉는 그 자리에서 쓰고 지웠다를 반복합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화장실 갈 때 빼곤 일어설 생각을 안 합니다. 드디어 오늘의 할당량을 채웠습니다. 때가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배도 채워야겠습니다. 매서운 사서 선생님의 눈빛을 신경 써가며 자리와 책상을 정리합니다.
아직 훤한데 아침의 웃음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이제는 아는 얼굴도 잘 보이지 않고, 무거운 얼굴을 한 무서운 사람들만 보입니다. 딱딱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덥수룩한 수염과 편해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평일 대낮에 돌아다니는 이 젊은 남자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괜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합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떡진 머리를 한 또래의 남자분이 뒤따라 탑니다. 심지어 담배 냄새까지 풍깁니다. 최악입니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지만 '난 당신과는 다를걸' 괜한 자존심을 부리며 한심한 듯 싸늘하게 그를 쳐다봅니다.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제 맘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또 하나의 백수를 이끌고 문을 나섭니다. 이제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둘러맨 아이들이 보입니다.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에서 다시 웃음을 발견합니다.
산책길에 올라서면 여러 사람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무섭고 차가운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덥수룩한 이 백수 아저씨는 자그마한 이 털북숭이 덕에 털털하지만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 다가가기 좋은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늘 걷는 잘 아는 길을 걸으며, 이름도 성도 모르는 많은 이들의 미소를 만납니다. 나 때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를 향하는 것 같은 그 미소가 참 보기 좋습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쓸쓸한 계절에 따듯하고 빛나는 웃음들을 만나게 해 준 그에게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