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개에 물렸어요

반려견 물림사고

by 예일맨

일요일 저녁입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 같이 집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근처에 사는 처제도 함께 합니다. 나가기 전부터 확실한 목적지를 정했습니다. 탄천변의 반려견 놀이터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니 몸은 무거워도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땅콩이도 아이도 신이 나나 봅니다. 평소보다 발놀림이 경쾌해 보입니다. 땅콩이가 무서워하는 터널을 뚫고 지나오니 환한 불빛이 보입니다.


배부른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걷고 뛰는 여러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겨우겨우 목표 지점에 이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안에 있던 사람이 개를 데리고 급하게 나올 준비를 합니다.


슬쩍 보니 15kg 가까이 되는 중형견입니다. 아무도 없는 소형견 놀이터에서 좀 풀어주었나 봅니다. 어쨌든 그 개가 나와야 땅콩이를 안에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들 입구 앞에 기다리고 섰습니다.


주인이 개의 목줄을 단단히 붙들고 막 두 번째 문을 열고 닫았습니다. 땅콩이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사나움이 느껴지는 얼굴입니다. 주인이 손에 끼고 있는 붉은색 코팅 목장갑도 눈에 띕니다. 좀 무섭습니다.


거의 다 나온 개가 갑자기 고개를 확 돌립니다. 문 근처에 서있던 아내의 다리 쪽으로 입을 가져가는가 싶더니 아내의 입에서 황급한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아야!"

"왜 그래? 물린 거야?

"어… 아아… 잠깐만…"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내에게 괜찮냐고, 많이 아프냐고 자꾸 되물을 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TV나 유튜브에서만 듣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물었으면 이빨이 날카로워서 바지가 찢어져야 하는데, 바지 괜찮지요?"

"저기요… 저… 물렸다고요…"


아내의 상태가 더 중요하기도 하고 경황이 없어서 당황할 겨를도 없습니다. 해가 진 저녁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허벅지 뒷부분이라 바지를 걷어서 볼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상처를 봐야 하니 아내를 처제와 함께 급하게 화장실로 보냅니다.


'상처가 깊으면 어쩌나…'

'정자동에 있는 병원을 가야 하나… 분당 서울대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아내를 문 개 주인과는 어떻게 합의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아이도 놀라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얼어 있습니다. 땅콩이는 신나게 놀러 나왔는데 코 앞에 두고 발도 디뎌보지 못하고 안겨 있습니다. 그 개 주인은 조금 기다리는 듯하더니 다시 소형견 놀이터 안으로 들어갑니다. 화가 뻗칩니다.


아내가 와서 사진을 보여줍니다. 확연한 상처가 있습니다. 개 주인도 보고는 말합니다. '응급실 가실 거예요? 가실 거면 부르세요' 듣자 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한 마디 합니다.


"아니, 사과도 안 하시고, 사람이 물렸는데 그 사이에 또 소형견 놀이터에 들어가서 큰 개를 풀어놓으시고… 너무 하시네요"

"아까 사과했잖아요. 그리고 아무도 없는데 좀 풀어놓으면 어떻습니까? 참 말 이상하게 하시네"


사과는커녕 자기 개는 물지 않는다고… 바지가 멀쩡하니 물린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물린 증거가 있어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던 사람이 이미 사과를 했다고 말합니다.


광견병은 한수이남 지역에서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고, 접종도 하고 집에서 관리받는 개한테 물린 것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파상풍 주사만 맞고 상처 치료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24시간 하는 병원도 근방에 있으니 잠깐 갔다 오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개 주인의 태도가 너무 괘씸합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더 이야기해봐야 큰 소리만 날 것 같습니다. 아이도 있고 처제도 있고 강아지도 있는데 일요일 늦은 시간에 더 이상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찰을 부릅니다.


금방 두 분이 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절차를 설명합니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추후 치료비에 대해 합의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따로 추가 안내를 해줍니다. 피해자이니 가해자를 고소하실 수 있다고… 지금 바로 할 수도 있다고…


마음 같아선 그 자리에서 고소하고 싶었습니다. 경찰관이 오니 안하무인 하던 태도는 싹 사라지고 공손하게 우리에게 사과하는 그분의 모습이 참 보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치료가 더 급하니 일단은 병원부터 가기로 합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 특별한 아픔 없이 잘 지나가고 있습니다. 작은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분에게 문자가 몇 번 왔습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합니다. 정말 믿고 싶지만 그분이 보인 표정과 말투를 생각하면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이제 치료비를 청구하고 사건을 종결지을 것입니다. 반려견을 키우게 되면서 겪을 수 있는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먼저 사과부터 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괜찮냐고 먼저 걱정부터 해주었다면… 야밤에 고생하는 경찰관들까지 불러야 했을까요?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태도가 전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