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힘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 집 털북숭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갑니다. 땅콩이가 하루 중 가장 활발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저를 이끌고 갑니다. 고작 2.5kg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녀석인데 타고난 힘이 좋은 건지, 제가 운동을 오래 쉬어서 힘이 약해진 건지 땅콩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저는 끌려갈 뿐입니다.
저보다 한참을 앞서갑니다. 줄이 팽팽해져서 목이 졸릴 것도 같은데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걸어가는 방향을 보아하니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 것 같습니다. 개 놀이터입니다. 이제 다녀본 동네 길은 어느 정도 알게 된 땅콩이는 환한 낮에 밖에 나오면 여지없이 개 놀이터 쪽으로 향합니다. 벌써부터 놀 생각에 흥분해 있는 땅콩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거기까지 걸어갔다 오려면 저도 만만치 않은데 땅콩이는 종종걸음으로 잘도 걸어갑니다. 가볍게 동네 산책만 하고 들어오려던 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크록스 신고 나온 것을 오늘도 후회합니다. 땀 흘리며 힘겹게 도착한 놀이터에는... 아... 아무도 없습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듯 땅콩이는 여기저기 냄새 맡고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배변 봉투를 하나 꺼내려고 입구 쪽으로 갑니다. 봉투함이 문 밖에 있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여러 차례 보았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 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검은색 철제문에는 가로 방향으로 빗장이 있고, 그 빗장의 끝 부분을 기둥에 뚫려있는 구멍에 넣어 잠그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문의 양쪽에 빗장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빗장을 한쪽에만 설치하면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양쪽에 달아놓았을까?'
바깥쪽에만 빗장이 달려있는 게 일반적인 것 같고... 양쪽에 문이 달려있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아서 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닫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바깥에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안쪽에 있는 빗장을 사용해서 문을 잠글 것입니다. 따라서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안쪽에서 잠겨있으니 편하게 문을 열 수 있겠지만 밖에서 들어오려면 문에 난 구멍에 손을 집어넣고 어렵게 문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간 사람은 바깥쪽에 있는 빗장을 사용했을 것이므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문을 열기 편할 테지만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사람은 반대편에 있는 비장을 풀어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빗장이 걸려있든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편한 사람도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일시에 들어와서 일시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에 50%는 편하게 문을 열고 편하게 문을 닫을 것이고 50%는 불편하게 문을 열고 편하게 문을 닫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빗장이 바깥쪽 한쪽에만 달려있는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밖에서 들어올 때는 쉽게 문을 열 수 있겠지만 잠그려면 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어렵게 잠가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안에서 나가려면 어렵게 문을 열고 쉽게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빗장이 양쪽에 있을 때는 들어오고 나갈 때 모두 편한 사람이 있는데 한쪽에만 있으면 모두가 무조건 한 번은 불편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상상하면서 차근차근 비교해 보니 문의 양쪽에 잠금장치가 달려있는 것이 "당연히"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있는 쪽에서 빠르게 문을 잠글 수 있으니 반려견의 이탈을 보다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왜 처음 보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특별하다고 생각했을까요?
'늘 보던 익숙한 것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있던 게 아닐까...?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식이 아닐 수 있고,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틀렸던 것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지 못한 것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니, 보다 겸손해져야겠다...' 여러 생각들이 찾아옵니다.
동네 개 놀이터 문을 보면서 갖게 된 궁금증이 이렇게까지 이어져 오다니... 이것이 글쓰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삶을 지나는 작은 순간순간들에 대해 떠올리고 사색하며,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이 제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느낍니다. 이 좋은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니, 이제라도 알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우리는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가 써놓은 이야기로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주 쓰다 보니 무심히 지나칠 법한 장면이나 대화 같은 것들을 좀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날에는 어쩐지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하루가 두 번씩 재생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겪으면서 한 번, 해석하면서 한 번. 이렇게 인생이 좀 두 배로 풍부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 이슬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