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

반려견의 사람 사랑

by 예일맨

우리 집에는 땅콩이가 넘을 수 없는 확실한 경계가 있습니다. 아이 방과 화장실 문간에 설치한 안전문입니다. 아이 방에는 블록 같은 작은 물건들이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식탐 많은 땅콩이가 무심코 집어삼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은 땅콩이가 들어가서 발이 젖은 상태로 오래 있게 되면 염증이 생길 수 있고, 화장실과 거실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면 집안의 위생상 좋지 않을 것 같아 설치해 놓았습니다.


이런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만 땅콩이는 못내 서운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방에 들어가 놀고 있으면 가끔 쳐다보고 짖는 경우가 있고, 물건을 꺼내느라 안전문을 잠시 열어놓으면 조심스레 들어오려고 시도를 합니다. '여기는 네가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면 눈치 빠른 땅콩이는 뒷걸음질을 칩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 경계를 넘어서리라'는 듯 문 앞을 지키고 서있습니다.


요즘 저는 점심 먹으러 1시에서 2시 사이에 집에 들어갑니다. 아이는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고, 아내 역시 당연히 일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후다닥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반투명한 중문 유리에는 땅콩이의 연한 갈색털이 희미하게 비칩니다. 이 집에 저와 자기 둘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땅콩이는 제 가 가는 동선 그대로 졸레졸레 따라옵니다.


커피를 많이 마셨나 봅니다. 화장실에 들어가 안전문을 닫고 좌변기에 앉습니다. 그런데 참 민망하게도... 땅콩이가 코 앞에 앉아서 저를 지켜봅니다. 아예 문을 닫아버릴까 싶다가도 애처로운 그 눈빛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색깔은 환한 흰색이어서 무서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단단히 세워진 철창이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철창 사이의 공간으로 제가 손을 내밀면 그도 역시 손을 내밀어 잡습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것이라) 몇 분도 아니고 몇 초 뒤면 나갈 건데... 케이지 안에 갇혀서 나올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곧 만날 수 있는데... 땅콩이의 이 "절절한 사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문득 생각나기도 하고, 옛날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나왔던 최재성과 채시라의 철조망 키스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손을 씻고 문을 열어 거실로 나갑니다. 앞발을 들고 덤비는 녀석을 달래고 바닥에 앉아 품에 안아줍니다. 그리고 그를 바라봅니다. '이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일까?' '내가 뭐가 그렇게 좋을까?' '내가 밥을 주는 리더이기 때문에 따르는 걸까?'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과거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일까?'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나를 간절히 사랑해 주는 이 순수한 친구를 나도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


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