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진짜 즐거운 놀이

반려견 놀이, 그리고 친구

by 예일맨

아이는 요즘 "로봇과학"에 빠졌습니다. 학교에서 이번 학기부터 듣게 된 방과후수업인데, "로봇"과 "과학"이라는 멋진 단어로 조합된 근사한 이름이 붙여져 있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블록을 조립해서 장난감을 만드는 일종의 놀이수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작은 재료를 조합하여 새로운 로봇을 만들 수 있게 해서 창의력을 길러주는... 사실 초등학교 2학년 수준에 딱 맞는 수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집에서도 수업 교재인 키트를 수시로 꺼내 재미있게 로봇을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로봇 만들기를 저와 같이 하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프라모델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도 있습니다. 가끔 TV에 보면 프라모델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주위에도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작은 조각들을 뗐다 붙였다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같이 하자고 하면 억지로 하긴 하지만 즐기지 못합니다. 얼른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고 있게 됩니다.


그 외에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칼싸움입니다. 남자아이답게 집에는 칼이 몇 자루 있습니다. 최근 전주 한옥마을에서 산 나무칼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칼인데, 아이는 그 칼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저는 구부러진 플라스틱 칼을 씁니다. 어쨌든 장난감이어도 맞으면 아프니까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도 없는데 아이는 하자고 졸라댑니다. 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이 하긴 합니다.


씨름과 레슬링도 좋아합니다. 아이는 저를 안방 침대로 질질 끌고 갑니다. 저는 끌려갑니다. 침대로 위에 올라가면 즉시 저에게 달려듭니다. 이제는 아이의 힘이 제법 세지기는 했지만 저는 연기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온 힘을 다해서는 안 되고 적당히 힘을 써가며 어른인데도 아이에게 당하고 가까스로 지게 되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꼭 연출해야 합니다.


최근 아이는 학교 벼룩시장에서 복싱 글러브를 한 짝 사 왔습니다. 멋진 노란색 글러브를 양손에 끼고 저에게는 (택배로 주문한 유리로 된 식용유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덧입혀서 배송된) 완충제를 던져 줍니다. 그리고 복싱 시합을 하자고 합니다. 아이가 날린 펀치에 맞아주고 아파하는 척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적당한 시점에 KO를 당해줘야 비로소 끝이 납니다.


이렇게 40살짜리 남자가 9살짜리 아이와 노는 것은, 아니 놀아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이 같다고 해도 일단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너무 다릅니다. 어른도 즐거워야 놀아주는 게 아니라 함께 노는 것이 되기 때문에 즐기려고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수준이 비슷한 친구들과 노는 것은 항상 즐겁습니다. 이것이 이제는 저와 노는 것을 택하기보다 친구들이 득실대는 집 앞 공원으로 나가자고 조르는 이유일 것입니다.


나이 차이를 떠나 같은 사람인데도 이렇게 어려운데, 땅콩이는 어떨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터그놀이나 공놀이를 같이 해주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땅콩이가 아주 좋아하는 양말을 가지고 놀아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입니다. 또한, 땅콩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앞으로 제가 일을 하게 되면 그 시간은 더 많아질 예정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한낮에 땅콩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도 요즘에는 일부러 이끌지 않아도 놀이터를 향해 움직입니다.


놀이터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시간 즈음이어서 그런지 아무도 없습니다. 날은 화창하고 좋은데 친구가 없으니 땅콩이도 심심해 보입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조용하게 냄새만 맡고 있습니다. 누가 떨어뜨리고 간 간식은 없는지 또 유심히 살핍니다. 외로운지... 앉아있는 저에게도 가끔 와서 인사를 하고 갑니다. 시간대를 잘못 잡은 것 같아 좀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넓은 땅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땅콩이를 보며 위안을 삼습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출입구 쪽에 누군가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흰색 말티즈(이름이 "제리"입니다)를 한 마리를 데리고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십니다. 흥분한 땅콩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리가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잠시 냄새를 맡더니 이내 장난을 걸기 시작합니다. 이리저리 들고뛰고 난리가 났습니다. 귀찮은지 도망치는 제리를 뒤쫓아갑니다. 이빨을 드러내 제리의 옷을 물어 당기기도 합니다. 서로 뒤엉켜 바닥에 뒹굴거립니다. 땅콩이 얼굴과 몸에는 흙이 범벅입니다. 하지만 정말 신나 보입니다.


땅콩이가 흥겹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이 아무리 반려견과 재미있게 놀아준다고 해도 같은 개 친구와 노는 즐거움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제가 아들과 아무리 즐겁게 놀아주려 해도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좋은 것처럼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지만 가능한 자주, 잠깐이라도 개 놀이터에 땅콩이를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그래야 "그가 진짜 즐거운 놀이"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