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공놀이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됐습니다. 게임이나 경기시청으로 만족할 수 없어 실제 축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해서 삶이 안정된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개인레슨을 받았습니다. 남양주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 도봉구까지 갔습니다. 당시 직장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시점이었고, 아내도 대학원 공부로 바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동네 조기축구회에도 가입했습니다. 어딜 가도 찾아보기 힘든, 평일 아침마다 공을 차는 모임이었습니다. 6시 30분부터 한 시간 정도 축구를 하고 씻은 다음 회사에 갔습니다. 일찍 가야 하는 날에는 운동복을 입은 채, 땀에 절어서 바로 출근한 적도 있습니다.
평일 새벽 축구는 재밌기는 했지만 회사 일에 지장을 주었기 때문에 그리 오래 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토요일 아침 축구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토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시간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자주 부상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평일 아침에도 축구를 하고, 고등학교 친구가 불러서 저녁에 또 풋살을 하고, 주말에도 축구를 하니 몸에 무리가 왔습니다. 다리 근육이 좀 당기는 느낌을 받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여느 때처럼 조기축구를 하던 중 갑자기 뭔가 끊어지는 것 같더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것입니다.
두 달이 넘도록 축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몸을 쓰는 현장 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일하는 것도 아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나을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정도 뛸 수 있게 되자 다시 조기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완벽하게 낫지도 않았는데 축구에 완전히 빠져있던 때라, 아파도 참고 그냥 했습니다.
종아리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때쯤 또 한 번 부상을 당했습니다. 왼쪽 발목을 삔 것입니다.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서 걷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직전의 근육부상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회복 속도가 더뎠습니다. 6개월이 지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0개월 정도가 지나니 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더 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내의 극심한 반대였습니다. 나가면 자꾸 다쳐오고, 일에도 지장이 있으니 이제 그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도 태어난 상황에서, 주말 이른 새벽 단 한 시간이라도 나가도록 둘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다퉜습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이 시간만큼은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내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치열하게 싸울 것을 알면서도 주말마다 축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발목이 온전치 않았습니다. 그만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 지역으로 발령이 나고, 이사도 하면서 축구와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아이와 함께 산책 나갈 때 축구공을 들고나가 잠깐 리프팅 연습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수시로 하다 보니, 처음엔 몇 개 못하다가 10개, 20개, 30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잘 될 때는 50개 이상도 가능합니다)
아이가 크면서 제 축구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아가 때부터 축구공을 갖고 노는 아빠를 봐서 그런지 아이도 공 차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누구와 시합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 저와 공차기 놀이를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한 살, 두 살 더 자라면서 아이는 이제 저와 일대일 대결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힘과 스피드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온 힘을 다해서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 공을 차서 주고받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콘을 세워놓고 드리블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7살 때까지는 저와 축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고 축구클럽도 다니면서 저보다는 또래의 친구나 형들과 축구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축구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나니 이젠 저와 할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공원이나 놀이터에 나가면 항상 같이 할 수 있는 또래들이 나와있으니 굳이 저와 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도 아이와 같이 공을 차는 시간이 제가 땀을 흘리는 유일한 시간인데... 주말에 땀 흘릴 일이 없어졌습니다. 아직 아이와 밖에 같이 나가고, 같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같이 놀지는 않으니 심심하기도 합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다시 조기축구를 시작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도 있고, 전처럼 다치게 되면 일하러 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다시 뛰고 싶고, 공도 차면서 땀 흘리고 싶지만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 말고 다른 운동을 찾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발목뿐 아니라 왼쪽 무릎도 약해서 조금 오래 걸으면 살짝 아픈데 과연 축구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전보다 더 조심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면 될 텐데... 참 생각이 많습니다.
우리 집에는 공놀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공을 물고 와서 공놀이하자고 난리입니다. '나 이제 축구 끊었어' 하면서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땅콩이가 자꾸 저를 자극합니다. 땅콩이의 끈질긴 구애를 보며 아픈 다리를 이끌고 흥분 상태로 운동장에 나갔던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요즘 무엇을 해도 크게 재미가 없습니다. 열정이 잘 안 생겨 납니다. 너무 좋아서, 빨리 하고 싶어서 기다리는 그 무언가가 없습니다.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싶어서 공원에 나가자고 안달이 난 아들과 공놀이하고 싶어서 앉아있는 저에게 자꾸 치대는 땅콩이를 보며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주 싸우면서도, 싸울 것을 알면서도 아침 6시에 일어나 축구복을 입고 신나게 나갔던 그때가 좀 그립습니다. 아픈 다리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지독한 파스를 뿌리고 꼭꼭 테이핑을 해가면서까지 꾸역꾸역 축구화를 신었던 그날의 제 열정이 좀 그립습니다.
베란다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오래된 검은색 축구가방을 조만간 다시 열어봐야겠습니다. 그 안에 숨겨진 조금 더 젊은 날의 즐거움을 지금이라도 다시 꺼내봐야겠습니다. 어둡고 무거워진 제 얼굴에 다시 한번 가벼운 웃음이라는 선물을 선사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