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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Feb 24. 2023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곳에 있는 3

생활이 담긴 마당

(전 편)

멈춰 있지만 동적이고 무생물이지만 생명체 같았다.  그곳을 사랑하는 우리는 공간과 관계 맺으면서도 주변 관계에 따라 변화하고 반응하는 현상을 그저 감각적으로 인지할 뿐이었다.



(이번 편)

봄부터 가을까지 햇살 좋은 날에는 바깥을 마주한 문들을 열어놓고 생활했다.

열린 문을 통해 앞마당에서 마루 건너 큰 방, 큰 방 너머 뒤뜰 감나무와 담장 위 옆집 지붕까지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문만 열려 있으면 우리는 서로 보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보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좁게는 안에 있거나 밖에 있으면서 넓게는 같은 곳에 있었다.

나와 동생이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가족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일을 하면서 감시.. 아니 잘 놀고 있는 지 확인하곤 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고측창으로 뒤뜰에서 노는 우리를 향해 잔소리까지 해야했던 엄마의 삶이란 어땠는 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친구들이 와서 놀기도 했는 데 내 친구들보단 동생 친구들이 많았다.

여기서 고무줄, 술래잡기, 팽이, 요요, 비눗방울놀이 등 많은 놀이를 했지만 우리가 가장 좋아한 놀이는 셋집 옥상에 올라가 대문 캐노피로 내려와 어른 키보다 높은 캐노피에서 마당으로 다시 내려오는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었다. 누가 크게 다친 일은 없었다. 그때 옥상 파라펫(옥상의 물이 건물을 타고 마구 떨어지는 것도 방지하고 난간 역할도 하는 벽체)이 어린이 무릎 정도까지만 왔기 때문에 대문 위로 넘어가는 게 가능했다.  커서 떠올리니 의아한 이 놀이는 ‘먼저 아래에 내려간 친구들이 키가 작거나 어린 아이를 받아주고 안아준다.’가 규칙이었다.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어떤 아이는 대범함을 자랑하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돌고 돌며 오르락 내리락했다.

아무래도 아랫집 사는 동생또래 남자애와 나 남동생 이렇게 셋이 여기서 자주 어울렸다. 어른들끼리 어린 우리를 서로 봐주며 일을 봤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 둘은 공놀이가 여기에서 하기엔 비좁아 운동장을 찾고 나는 책읽기와 만들기, 그림 그리기와 같은 놀이로 마음을 빼앗겼을 때 마당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할머니가 됐다.

할머니는 꾸준히 시래기, 고추, 고사리, 곶감 따위를 기단 위에 깔거나 서까래 아래에 걸어 말렸고 햇살 좋은날엔 빨래를 말렸다. 햇살은 할머니의 주름도 바싹 말려버린 건지 할머니 손은 거칠고 건조했다. 마루에 걸쳐 앉아 그 바삭한 손으로 나물을 다듬거나 뜨개질도 하셨다.

코바늘뜨개가 취미였던 할머니는 솜씨가 좋았다. 우리 옷을 짤 때 이상한 꽃까지 만들어서 꼭 달아줬다. 내가 꽃은 안달아도 돼.라고 하니 옷핀에 붙여 탈부착할 수 있게 해줬던 분.. “고집이었던 건가요 융통성이었던 건가요.”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쓰는 순간 그냥 손주를 애끼는 마음이었겠거니. 라고 헤아려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와 동생만 늘 놀았고 어른들은 열심히 일을 했다.

집 안을 매일 쓸고 닦고 보듬어주던 사람이 할머니, 집을 수선하고 집 밖을 관리하고 눈이 오면 마당과 집 앞 골목과 오르막길까지 쓸던 사람은 아빠였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엔 지붕 위에도 올라가 눈이 얼기 전에 전부 쓸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텃밭에 있는 양파 좀“ 하고 외치면 양파를 뽑으러 가야하는 사람도 할머니나 아빠였다. 할머니와 아빠는 엄마 손에 물은 묻혀도 절대 흙은 묻히게 하지 않았다.

단독 주택에 살면 외부 청소와 건물 수선, 식물 돌보기 등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잡업들이 끝없다. 더군다나 나무로 지은 오래된 한옥은 보살필 게 많았다. 이십 여년간 할만큼해서 이젠 관리 받는 아파트가 좋다던 아빠 말은 89프로정도 진심일 것이다.

100퍼센트일 수 없는 이유는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 누구보다 신나 있기 때문이고, 집에서 기른 솔로 부친 솔전도 제일 좋아했기 때문이다.  

 비워진 마당은 늘 너그러웠다. 기억엔 없어도 장롱  앨범엔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물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탔던 우리, 꽃이 이쁘게 펴서 화단  마당에서 꽃인척 연기한 , 마루에 앉아 노는 우리와 마당에서 사진을 찍는 엄마, 유치원 가방메고 등원하는 어릴적 우리 모습들이 각인돼있다. 사진에서처럼 집의 다양한 행위들이 마당에 담겼다. 마당이 있다는 것만으로 집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풍부해진다. 다섯이 생활하기에 24평이란 내부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작다고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바깥에서도 많은 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평이라도 외부공간이 있는 곳에 살게 됐다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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