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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Jul 04. 2023

나의 일에 대하여

(예술가와 디자이너와 사업가 틈새 그 어딘가에 끼어있는)

끈적이는 비가 내리는 화요일 오후, 그 비를 뚫고 은행에 가서 사업자 계좌를 개설하고 사업용 신용카드, 체크카드를 발급하고 왔다.

비 오는 날엔 은행에 방문한 사람이 적어 은행업무가 수월하기 때문에 굳이 오늘 간 건 아니고 그냥 오늘 사업자등록이 완료됐기 때문이다.

사무소 나드리란 사업자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최근에야 건축사를 딸 수 있어서 ‘나드리 건축사사무소’를 새롭게 개소했다.

며칠 전부터 사무소 준비를 위해 자질구레한 일들을 틈틈이 하는 데, 거기에 들이는 시간들과 노동에 대한 인식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갔다. 은행에서 돌아오는 길, 배우나 가수 엔터테인먼트처럼 건축가를 채용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회사를 떠올려보며 그런 곳이 있다면 예술,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일에 가까운 걸 더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건가? 잡생각을 좀 해봤다.

그러다 그냥 대우가 좋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아뜰리에에 다녔다면 어땠을 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돌아오는 길은 채 십 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아주 짧은 잡 상상이었을 뿐.


나드리의 나는 건축과를 졸업한 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전공을 살린 케이스로,

졸업학년 때 설계에 뜻이 없었다기보다는 늘 마감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 일은 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인간이다.

다짐한 일은 입으로 널리 널리 퍼뜨려야 실행할 수 있으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건축안 한다’는 발 달린 말을 열심히 전했었더랬다.


그 외 중간 과정은 나중에 쓰고, (왜냐면 원래 쓰고자 한 거를 간단히 쓰고 하던 일을 해야 하므로)


암튼

첫 아뜰리에를 그만두고, 놀고먹고 운동하다 여행을 다녀오니 업계에선 귀한 5년 차라 프로젝트단위로 일을 제안하거나 경력직 제안이 몇 개 있었다.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계획적으로 접근했다기보다는 우선 일하는 곳이 가까웠고 제안한 일은 재밌어보여 그 일을 하게 되면서 나의 설계로 건물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일을 하게 됐고 그러다 소장이 됐다.


은행에서 돌아오는 길 다들 철두철미하게 퇴사하고 개업하는 세계에서 너무 나이브한가?

나이브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데 말이다.

그렇지만 물 같은 흐름으로 강아지와 함께 살고, 춤을 추고 또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술을 빚기도 하고 나무를 깎기도 하며 몸을 탐구?…. 하는 사람이 됐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학문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고, 내가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도 하고, 애초에 의심과 질문도 많고,

열정적인 건축 친구들을 만나면 나의 열정은 재킷 안주머니에 넣을 정도로 작디작다.  


저런 흔들림이 와도 뭐.. 사실 괜찮다. 내 멋대로 잔잔하게 해야지.라고 말하는 인간이기도 해서.

다만 적어도 일을 향유하기 위해 ‘공간 ‘건축이란 단어를 나름대로 정의해보며 현재는(아직까진) 이렇다.

 

삶을 지속하게 하는 곳.

삶을 마음껏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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