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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Feb 08. 2023

아무튼 살구

살구탐사_잠-1

22년 3월 5일 메모

살구가 살포시 기댄다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고 있거나 자러 누우면 살구도 덩달아 깡총 올라와 내 발치에 자리를 잡는다. 자기 쿠션을 두고 굳이 옆에 눕지만서도 거리 두기를 하는 요 녀석이 매번 귀여워서 나는 자세를 바꿔 그의 몸을 오물조물 괴롭히고 나서야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곤 한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종아리에 온기와 무게가 느껴져 들여다보면 제 등이나 엉덩이를 내 몸에 맞댄 채 잠자고 있다. 나의 다리는 한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어떤 날에는 슬금슬금 위로 기어와 ‘끄으 크르르’ 따라 할 수 없는 웅얼거림과 함께 앞발로 고양이가 꾹꾹이 하듯 바닥을 꾹꾹 누른다.

‘어이, 지금 당장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어’

도도하게 세 번 이상은 하지 않지만 늘 알아서 답을 찾고 명을 받드는 보호인이 바로 나다. 두 손으로 사심을 채우며 동시에 애정을 담아 머리부터 목 가슴 배 궁둥이까지 속속들이 쓰다듬는다. 어루만지는 일은 질리지 않지만 모든 동작엔 끝이 있는 법, 서서히 한 손을 내려놓으면 다시 ‘끄으 크르르’ 거리며 두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여전히 한 손으로 만지고 있는 데..?’라고 눈빛을 보내봐도  ‘끄으 크르르’ 꾹꾹 할 뿐이니 쉬던 손을 다시 얼른 살구 몸에 붙인다.

느긋하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스스로 충분히 만족스러워져서야 몸을 털고 제 자리로 간다.


요즘은 가끔 가슴까지 가까이 와서 잘 때도 있지만 보통 다리 아래에서 잠을 취한다. 살구가 아래에 누운 뒤 약 올리며 내가 새로이 거꾸로 누워도 귀찮은 듯 다시 자리잡지 않고 그대로 잠에 들기도 한다. 우리 집에 와서 몇 주간 나를 경계했으면서도 첫날부터 한 침대에 공간을 차지하고 자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웃겼었다.

낯설어서 멀리 떨어져 자는 건가 싶었는 데 개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자는 걸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스피츠 그룹과 같이 예민한 개들일수록 더 그렇다고 한다. 궁금증은 꼬리를 물어 살구는 스피츠 계열이 섞였을까? (동그랗고 튀어나온 눈은 치와와, 크고 처진 갈색귀는 리트리버라 추측 중이다.)

쫑긋 선 귀와 뾰족한 얼굴을 가진 게 특징인 스피츠, 포메라니안, 진돗개, 시바.. 의 사진과 살구 얼굴을 번갈아 본다. 잘 모르겠다. 성격의 유사성은.. 이만 본래 물음으로 돌아와, 발 밑에 자는 건 주인을 신뢰한다는 뜻일 수도 보호하면서 보호받는 중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하니, 아무튼 얼굴은 마주할 순 없으나 좋아하는 가족 곁에서 자고 싶은 강아지의 마음이 사랑스럽다.

꼭 나의 침대에서 잠이 든 다음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습성은 이제 찾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종족과 사는 건 의문투성이다.

8년 만에 인간과 처음 함께 살게 된 개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걸까?

하울링은 왜 하는 걸까? 편하게 해주는 방법은?

같이 자는 건 강아지에게 괜찮을까? 왜 고양이처럼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자는 걸까?

밥과 간식은 얼마만큼 줘야 건강할까?

.

.

어디를 만지면 가장 좋아할까? 만질 수 없는 곳은?

산책을 하다 갑자기 왜 멈추는 걸까?

광장에 가면 왜 떠는 걸까?

밖에서 배변을 안 하는 이유는?

.

.

강아지가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한숨을 쉬는 건 인간과 비슷한 이유인가?

터그놀이는 어떻게 하는 거지? 노견과 노는 방법은?

밖에서만 배변을 하는 이유는?

.

.

생명체는 둘 뿐인데 언어 또한 둘이라 살구와 나는 말이 없다.

답답한 이들도 둘일테니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가자. 나는 인간의 정보력을 이용할테니, 너도 강아지 스타일대로 반려인을 탐색해주길.


햇살 드는 어느 낮, 나른한 엉덩이 두 짝을 내 허벅지에 붙이고 잠에 든다. 정다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는 가볍고 묵직하게 기꺼이 온기를 나눠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살구의 흉부가 부풀었다 가라앉음이 반복함을 바라본다. 이 일은 아무래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사방이 조용하고, 시끄럽던 나의 내면도 고요하고, 퓨후와 후우의 사이 숨소리만 남았다.




22년 7월 9일 메모

똥 줍는데 혐오스럽게 볼것까지야!


22년 10월 22일 메모

살구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주는 데 반질반질.. 대머리독수리 될까봐 걱정 중


22년 12월 16일 메모

살구 오늘 언 발에 오줌눔 풒ㅍㅍ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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