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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Jan 07. 2022

캐치볼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딴짓을 합니다 -6



사람들은 인생을 야구로 자주 비유한다. 야구라는 인생 안에서 눈치는 캐치볼과 비슷하다.

우선 야구가 혼자서 할 수 없듯이, 캐치볼도 혼자서 할 수 없다. 공을 주고받기 위해 둘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

캐치볼은 일반적인 게임과 다르게 승부를 가리는 운동이 아니다. 보통은 즐거움을 위한 놀이이며 아마추어 혹은 프로 선수나 야구동호회 사이에서는 훈련용으로 행해진다.

눈치 또한 사전적 의미로 ‘일의 정황이나 남의 마음 따위를 상황으로부터 미루어 알아내는 힘’이므로 상대방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는다. 상호 작용이기 때문에, 눈치있게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했던 바처럼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캐치볼에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듯이, 눈치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맞지 않았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이 눈치를 읽고 챙겼다는 마음과 행위가 전체 맥락에서 이해할 부분이지 않을까?



많은 운동이 그렇듯, 캐치볼도 어떤 사람과 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가 달라진다. 처음부터 서로 먼 거리에서 롱토스가 가능한 사람도 있고, 가까운 거리에서 시작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누구와는 캐치볼이 수월하지만, 누군가는 이상하게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눈치도 캐치볼처럼 고정적이지 않다. 어디에선 눈치 없다고 듣는 사람도 어디선가 눈치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이렇게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눈치가 있고 없고 가 그 사람의 본질은 아니다..(판단할 성질이 아니다!)

내가 익숙한 환경에서는 눈치도 잘 작동하듯, 자주 캐치볼을 주고받던 사이라면 서로가 편한 거리와 공의 세기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친숙하다고 해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마음에 쏙 들게 던져줄 거라고 기대하지 말자. 그보다 거리도 벌려보면서 또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주고받는 시도를 해보면 새롭고 더 신나지 않을까. 익숙한 사이일수록 눈치 게임은 낯설 수 있다.  


역시 늘 숙련자끼리만 캐치볼을 한다면, 딱히 어려운 문제는 없다. 각자 정확한 자세로 눈치껏 잘 던지면 된다.

그러나 수준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캐치볼을 할 수 없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사회에서도 나와 비슷한 사람만 만나는 것도 원하는 사람만 만나는 것도 아니어서 눈치는 어렵다. 문화, 상대방의 위치, 나이 다양한 요소에 따라 눈치의 디테일은 달라진다.

내가 타인보다 사회적 지위가 조금 높거나 갑을관계의 갑이라고 해서 눈치게임은 사라질까? 캐치볼에서 상대가 나보다 하수라면 실력에 맞춰 공의 세기를 조절할 것이다. 빠르고 변화하는 공을 던지면 상대가 움직임을 읽기 쉽지 않아 몸에 맞기 쉽다. 받을 수 없는 공만 오는 게임에서 하수는 캐치볼이 즐거울 까? 결국 둘 다 재미없는 게임일 뿐. 결국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즐기기 어렵다. 많은 영화의 클리셰로 쓰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캐치볼을 떠올려보자.

푸른 잔디밭 위에서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맞추어 공을 던진다. 그들은 웃는다..


상대방과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실력을 키워보는 것도 방법이다.

캐치볼은 야구를 위한 워밍업 또는 훈련이기도 하지만, 그 캐치볼을 잘하기 위한 연습법도 사람마다 따로 필요하다. 손목이 아픈 사람은 누워서 팔꿈치와 손목으로만 벽 천장을 향해 연습해야 하고, 무게중심을 잘 잡지 못하는 사람은 따로 기반을 튼튼하게 잡는 법부터 연습해야 한다고. 정확한 자세로 게임을 해야 공의 이동을 잘 느낄 수 있고 부상도 방지한다. 눈치도 정확하게 판단해야 상황에 맞는 감정과 표정을 드러낼 수 있다. 눈치도 훈련을 해야 늘릴 수 있다. “눈치 따위 없이 살겠어!” 는 ….. 눈치가 없이 평생을 사는 것보다 조금씩 습득해 사용해보면 또 나름의 재미가 생길 테니 상대방도 평소와 다르게 나를 대하는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캐치볼에도 각자의 가치관과 철학은 필요하다.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놀이는 재미가 없다. 또 캐치볼만 잘한다고 해서 야구를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에 잘 받을 수 있게 던졌다고 해서 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못 던져도 노력해서 받을 수도 있다. 어떻게 게임을 진행할 것인가에 따라 경험은 달라질 것이다. 눈치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안녕과 자신의 안녕을 대하는 마음 다음에 행동이 따라간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 지하철에서 의도치 않게 ‘에취’하고 큰기침을 뱉었다. 팬데믹 시대에 공공장소에서 하는 기침은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캐치볼 게임을 알리는 소리다. 고개를 들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가 어떤 공을 던질까 살펴본다.


<이 글은 은유글쓰기 모임에서 눈치에 대해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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