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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Jan 05. 2022

목욕 예찬

하라던 일은 안 하고 딴짓을 합니다 -5

 목욕물이 채워지는 동안 마실 물을 챙기고, 찬바람이 살짝 들어올 수 있게 창문을 열어둔다. 가끔 읽을 책이나 볼 영화를 준비해두기도.

시간이 지나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가게처럼 욕조 주변이 희뿌옇게 변한다.

욕조에 받은 물 온도를 체크한다. 알맞은 온도에 도달했다면 욕조 속으로 들어가 물의 표면장력을 깨고 맨 살을 물에 밀착시킨다. 시원하다.

목욕은 왜 하는 걸까. 밥벌이로 바쁜 현대인 중 한 명인 나는 평소엔 샤워를 한다. 샤워로 청결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느긋이 목욕을 할 틈이 생기면 이때다 싶어 목욕물을 받는 것이다. 삼 년 전 퇴근길, 눈이 오길래 단골 술집에 들렸다. 맥주를 마시며 ‘난 왜 술을 마시는 걸까?’ 생각하다 삼 초만에 이 질문은 ‘사람은 왜 사는 가?’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 잔을 더 시켰다.


술에 숨을 녹이고, 물에 몸을 녹인다.

여전히 모든 것에서 이유를 납득하고 싶은 나지만 술과 삶만큼은 ‘왜’라는 철학적 사유 대신 ‘어떻게’ 즐길 것 인가에 집중하기로 하며 몸을 좀 더 깊숙이 담근다.

방어와 공격이 오가는 바깥 세상에서 잔뜩 얻은 긴장을 벗고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게 술이라는 세계고, 목욕이라는 세계다. 말라있는 심신을 적신다. 뻐근했던 근육이 스르르 풀어지면서 싸맸던 마음의 문이 열린다. 투명한 액체 사이로 왼쪽 골반 상처를 우연히 마주칠 때면 허탈한 웃음이 샌다. 십 년 전 한 겨울에, 사촌 남동생과 달리기 시합을 했었던 사건이 잊히지 않고 떠오르기 때문이다. 왕성하게 성장 중이었던 고등학생을 기꺼이 이겨보겠다고 힘껏 달렸지만 다리가 맘을 따라가지 못하고 넘어지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슬켜 뽀얀 뼈가 환히 드러났었다. 필요 없는 욕심에 대한 상처.. 넘쳤던 혈기..

쓸데없는 추억에 빠진 사이에 겉과 속이 슬슬 데워지고 땀방울이 맺힌다. 적셔진 물방울도 맺히고, 서로 섞이고 또 맺힌다.


더 본격적으로 목욕이 하고 싶을 땐 목욕탕에 간다. 타인과 한 탕에 몸을 담근다. 모르는 사람들과 발가벗고 씻을 수 있는 이곳, 대중목욕탕이란 공간은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에서 꽤 완벽하게 분리돼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멍하니, 제각각 개성있는 몸과 맨살을 내보이며 걷고 앉아있고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스 신전의 창조적 재현 같다고 종종 생각했다. 현대에 사는 신들은 목욕탕에 와서야 인간 세계에서 걸쳤던 옷과 신분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맨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새 은밀하게 하는 목욕도 다 같이 탕에서 하는 목욕도 포기할 수 없다. 같이 마셔도 혼자 마셔도 맛있는 이 술을 끊을 수 없듯이. 술이 수-ㄹ 수르르 들어간다. 입술에 살짝 닿고 혀를 휘감고 목구멍 속으로 빈틈없이 밀착하며 타고 내려간다. 알싸한 맛이 시원하다. 욕조 속은 술을 마신 기분처럼 시원하다. 피곤한 눈은 흐려지고 다른 감각들이 뾰족하게 살아난다. 물론 과하면 시들어버리니 적당히 즐기기로 하자.


늘 그렇듯 기분이 좋아서 속상해서 추워서 피곤해서 심심해서, 그냥 별 이유없이 또 별 이유를 다 붙여서 평생 하겠지.

온기가 사그라질 때쯤 비스듬히 기댔던 몸을 일으킨다.


<이 글은 은유글쓰기 모임에서 목욕에 대해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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