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리보다 장거리를 위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고

by 옥희

무라카미 하루키/ 이영미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1979년부터 2010년까지 써온 다양한 글 가운데 저자가 직접 엄선한 69편의 미발표 에세이, 미수록 단편소설 등을 엮은 책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진지한 문학론에서부터 번역가로서 저자가 들려주는 감각적인 번역론, 음악 애호가로서 들려주는 깊이 있는 재즈론 그리고 인생론과 독서론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머리말

어디까지나 잡다한 심경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내 정신 안에 있는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쏟아부어 픽션 =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처럼 날것인 형태로 그것들을 아웃풋 하는 일도 기끔은 필요합니다. 픽션이라는 형식으로는 다 주워 담는 수 없는 자잘한 세상사도 조금씩 찌꺼기로 남기 때문입니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입니다.


서문 해설 등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나의 테두리는 열려있다. 뻐끔 열려있다. 나는 그곳으로 세상의 굴튀김과 민스 커틀릿과 새우 크로켓과 지하철 긴자선과 미쓰비시 볼펜을 잇달아 받아들인다. 물질로, 피와 살로, 개념으로, 가설로,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활용해 개인적인 통신장치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한다. 마치 'E.T.'가 주변에 널린 잡동사니들을 조립해서 행성 간의 통신장치를 만들어낸 것처럼 뭐든 좋다. 뭐든 좋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내게는, 진정한 내게는.


인사말 메시지 등

마흔 살이 되면 /군조신인문학상 수상소감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거의 펜을 잡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글을 쓸 때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남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남과는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라는 피츠제럴드의 문구만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히 될 리는 없었다. 마흔 살이 되면 조금은 나은 글을 쓸 수 있겠지,라며 계속해서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음악에 관하여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 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도 있지만요.


한결같은 피아니스트


음악이든 글이든 뭔가를 꾸준히 창조해나가야 하는 고단함은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면 만들어진 작품에서 힘이나 깊이가 사라져 버린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우리의 인생이란 기억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그렇지 않은가? 혹시 기억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의 우리밖에 기댈 곳이 없ㄴ느 셈이 된다. 기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든 자기라는 존재를 하나로 묶고, 동일시하고, 존재의 중추 같은 것을 - 설령 그것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더라도 - 일단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에 관하여

도쿄 지하의 흑마술


한 권이 소설이, 한 줄의 말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을 구제한다. 다만 두말할 필요 없이 픽션은 늘 현실과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 픽션은 우리의 실재를 깊게 삼켜버린다. 예를 들어 콘래드의 소설이 우리를 실제로 아프리카의 깊은 정글 속으로 끌고 가듯이,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픽션이 아닌 다른 곳에서 현실 세계와 마주 선 우리 자신을, 아마도 픽션과 힘을 상호교환하는 형태로, 완성해나가야만 한다.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

말코손바닥사슴(무스)을쫓아서


자세한 줄거리는 잊어버렸지만, 그 두가지 이미지가 머릿속에 줄곧 각인되어있다. 그렇게 또렷한 몇몇 이미지를 남기는 것 역시 뛰어난 소설의 자격증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읽을 때는 감탄하고 혹은 나름대로 감동까지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무런 이미지도 남지 않는 작품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인물에 관하여

'가와이 선생님'과 '가와이 하야오'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고 (편의 의해서가 아니라) 불릴 만한 실적과 실력이 없으면 안 되고, 그것을 능숫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당기는' 힘 같은 것도 필요할 테고, 그것을 간단히 제도화해버리지 않을 만한 통제력 역시 요구된다. 나는 도저히 그런 묘기는 넘볼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어찌 되었든 간에 '가와이 선생님'이다.


눈으로 본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

잭 런던의 틀니

사람이 뭔가를 목표로 피나는 노력을 쏟는다 해도 반드시 타인에게 인정받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마음에 새겨둬도 좋을 것이다.


바람을 생각하자


그런 까닭에 나는 뭔가 고통스럽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그 구절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생각하자. 바람을 생각하자'라고. 그래서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닫고 바람만 생각했다. 다양한 장소에서 부는 바람, 다양한 온도, 다양한 냄새가 깃든 바람, 그것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울림을 찾아서


소설을 쓰면서 이 마를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그ㅡ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드넓은 미지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비옥한 대지가 개척을 기다리고 있다.


질문과 그 대답

폼 나게 나이 들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당신이 소설가고 어딘가로 진정으로 가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소설가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당신은 독자로서 그 책을 읽으면서, 잘하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작가와 함께 그곳에 실제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독자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야기가 가지는 최대의 효능입니다.


짧은 픽션 《밤의 거미원숭이》아웃테이크

덤불 속 들쥐


그렇더라도 혹시 당신이 "그건 알겠는데, 도대체 이런 이야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진지하게 묻는다면 곤란합니다. 매우 곤란합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만한 의미는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

온기를 자아내는 소설을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할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자기의 꿈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인지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밖의 기준은 내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후기


잡문집이라고 하면서도 결코 잡스럽지 않은 글을 모아 소소한 감동을 주었다. 특히 글 쓰는 일을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오랜 기간 끊임없이 이어져온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한편의 흑백 다큐를 보는 듯했다. 신입으로 입사한 직장도 정년퇴직한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하는 테 반백년을 쉼 없이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며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은퇴를 고려하지 않는 현역 작가이다.


이제 글쓰기 걸음마를 시작하는 내게 늙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경종을 울린다. 나 역시도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글을 쓰고 싶다. 손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단거리보다 장거리에 자신 있다고 다독이며 스스로에게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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