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어미에게 자식이란

by 옥희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6ㆍ25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 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잃는 참척의 고통을 일기로 써 내려갔다. 자식을 잃은 애끓는 마음과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깊이 위로해 준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15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수없이 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타계 후에는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 훈장이 추서 되었다.





책을 읽게 된 동기

작가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는 작가가 겪었던 비슷한 나이가 되었으며 병약한 아들을 두었다. 내 아들을 노심초사 바라보며 당시에 작가가 겪었을 마음이 전해와 어느 날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내용


작가인 박완서 님은 88년 아들을 잃은 고통을 써 내려갔다. 88년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여 나라가 떠들썩했다. 불꽃놀이와 함성소리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묻혀버렸다.

1남 4녀 중 외 아들인 원태는 꽃과 같은 25세이며, 예고 없이 인사도 없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숨조차 쉴 수 없었을 어미의 참담한 심정을 느껴야 하기에 책은 펼치기가 두려웠다.

작가는 촉망받는 의사로 살아갈 아들을 데려가야 하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며 울부짖는다. 천주교인인 작가는 성경의 시편을 통해 하찮은 존재에다 진한 사랑을 불어넣은 이유를 따져 묻는듯한다.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 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알 수 없는 것.


- 시편 103: 15-16


작가는 평소 자랑스러운 아들을 통해 우쭐해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아들 스스로 선택한 학교나 학과가 작가의 자긍심을 채워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은 지인들과 애정이 넘치는 딸들이 있어 작가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아들을 보낸 작가의 고통은 별개인 것 같았다. 88 올림픽의 금메달 소식에도, 전망 좋은 딸네 집에서도, 술의 기운을 빌려도 작가는 밝은 세상으로 올라오기를 두렵고 힘들어한다.

슬픔에 지쳐버린 육신은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지독한 변비가 따라다닌다. 수녀님의 배려로 수녀원에서 지낼 수 있게 된 작가는 마음 놓고 슬퍼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시간을 보낸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꽃다운 내 아들을 일찍 데려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더도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해서 안 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 하리라며 부르짖는다.

작가는 산책과 명상, 기도 시간을 가지면서, 수녀원을 찾아오는 낯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서히 세상으로 발을 디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 씹을 수 있게 되고, 밥 냄새를 맡으면 맛이 되살아 나고, 아는 얼굴을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일들은 서서히 되살아나 작가는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으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함으로 일상을 회복해 간다.

작가는,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으며, 또한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 준 여러 고마운 분들 덕분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작가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배변도 좋아졌으며 중단했던 글을 마무리했다.


감상


작가의 책을 펼치기 힘들었던 것은 내 아들도 죽음의 문턱을 건넜었기 때문이었다. 자식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어미 된 고통이 전해졌다. 아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작가의 마음과 위로의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해한다.

세월호 사건 때 아들은 대 수술을 끝냈고 살았다. 다른 집 아이들은 살아오지 못해서, 내 아들은 살았으나 살았다고 숨죽여 말해야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되물으며 아들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다. 내가 교만한가?, 내가 정직하지 못한가?, 내가 남을 아프게 했나? 등등 생각나지도 않은 일들을 기억해 내느라 애를 쓴 시간들이 있었다.

하루라도 아들보다 오래 사는 것이 내 소원이라고 하는 중증 장애를 둔 어미들의 마음을 나는 안다. 나도 병약한 자식을 둔 어미기에 우리 모두 지나친 죄책감에서 벗어나자고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시의 작가보다 나이가 더 들었음에도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의 고통이 와닿기에 일상을 보내는 데 있어 조심스럽다.

자식으로 인해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사는 세상 어미들에게 힘내자고 권하고 싶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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