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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n 04. 2024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더 이상 고통이 없고 슬픔이 없는 곳으로. 

  어머니의 장례는 살아계실 때 염려했던 것보다 준비된 것처럼 조용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무탈하게 보내드려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혼수상태가 되기 전까지 뜻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반응을 보이셨지만 평소 얘기하듯이 주고받고 했던 상태라 이러다 숨을 거두시게 돼도 슬프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와의 헤어짐이 슬픈 것보다 남들처럼 슬픈 흐느낌이 없으면 어떡하나 염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염하고 입관할 때는 아닌 척 참아왔던 슬픔을 토해내듯 통곡했다.  

  내가 환갑이 지나도록 어머니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본 적이 몇 번이었던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누워 계시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만져드리지 못했던 어머니의 손, 발을 가슴에 맺히지 않으려고 자주 만졌다. 어머니의 손등을 비비면서 얼굴에 대어보기도 하고, 손가락 하나하나 마사지하듯이 만지면서 기억에 남기고자 했다. 그동안 살아내느라 터지고 군살이 박혔던 손과 발이 가실 때가 되어서야 보드랍고 하얀 피부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본 어머니의 제일 예쁜 손이네."

  "일을 안 하고 놀기만 하니까."

  아파서 누워있는 상황에도 어머니는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 그만해도 돼. 그동안 심하게 했어."

  어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리자 당신이 해도 된다고 하지만 호강하고 있다고 하시며 웃었다. 무좀 걸려 두꺼워진 발톱을 깎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당신의 온전하지 못한 신체의 일부를 자식에게 보여주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머쓱하게 여겼던 어머니도 이내 내가 삶아먹든 구워 먹든 마음대로 하라며 맡겼다. 손톱 발톱을 깎는 까다로운 작업은 기구 세 개를 필요로 했다. 가시기까지 어머니의 손톱 발톱은 내가 전담이 되었다.    

  

  집안의 맏이였기 때문에 앓는 소리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생각나는 걸 보면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의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 고된 삶을 살았을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꼬맹이였을 적에는 골목에 올망졸망한 애들이 모여 네 편 내편 가르며 노느라 바빴는데  어느 꼬맹이가 삶의 무게에 대해 논하며 생각했겠는가. 우린 마냥 신나게 놀며 자랐다. 그럼에도 무섭고 엄하셨지만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린이 세계명작전집을 사주셔서 삼십 초 백열등 아래 밤새 두세 번씩 읽었던 기억이 좋다. 아버지와 함께 동생들과 바닷가에서 놀다 돌아오는 길에, 거위 두 마리를 자전거에 묶어 "걱걱"내는 소리를 들으며 집까지 걸어왔던 기억이 재밌다. 나중에 거위 두 마리는 동네잔치를 벌이는 제물이 되었다.

  어머니는 무서운 시어머니의 시집살이, 시동생과 말 많고 인색했던 시누들의 시끄러운 살이를 살았다. 백세 가까이 되는 할머니를 보내드렸고 어머니는 그보다 십 년을 덜 사셨다. 백세까지는 거뜬히 사실 줄 알았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고 마지막 일 년 반은 외출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와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같이 된장을 담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만든 된장은 맛있기로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였는데 돌아가신 할머니조차도 어머니가 만든 된장만 드셨다. 내년 된장 만들 시기가 되면 난 혼자 어머니가 얘기해 주시던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비법대로 된장을 담아야 한다. 아마도 어머니의 잔소리가 환청으로 남아 귀를 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반가운 나머지 허공에다 혼잣말하면서 대꾸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얼굴에 화장을 한 어머니의 얼굴은 뽀얗고 화사했다. 이십 년 먼저 가신 아버지가 마중을 나온다면 그동안 늙지도 않았다고 하시겠다. 어머니처럼 안 살아보려고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애들이 "엄마는 외할머니랑  똑같아."라고 한다. 나는 실패한 인생인가. 그러나 나쁘지 않다. 

  입관한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며 연인에게 말하듯이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참 어렵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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