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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May 07. 2024

백세시대

  춥고 밤이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길목에 할머니 한 분이 주저앉아 계셨다.

  시골 동네라 어둡고 깜깜하여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은데 할머니는 짙은 옷을 입고 계셔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수가 있었다. 할머니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말씀을 더듬거리면서 잘 못하셨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건네받고 저장된 1번을 눌러 통화를 눌렀더니 신호가 들리면서 상대편이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길에 앉아계세요.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에 1번이 '아들'이라고 저장되어 있어 통화를 눌렀어요. 말씀도 잘 못하시고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들 맞는데요. 거기가 어딘가요?"

  "리 사무소 앞인데 인도에 앉아계세요."

  "네? 우리 어머니가 왜 거기에 계세요?"

  "거야 나도 모르죠. 암튼 병원에 모셔야 할 것 같은데 119라도 부를까요?"

  "제가 곧 가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같이 계셔주세요."

  주변은 깜깜했고 늦은 시간이라 동네를 질 아는 분께 사정을 얘기했더니 마침 같은 교회 권사님 어머님이시라고 하며 교회가 가까우니 목사님께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연락을 받은 목사님은 한걸음에 오셨고 가족에게 연락하여 어머님을 일단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백세시대라고 한다. 

  내일모레면 백세를 앞두고 있는데 팔팔하게 활동을 하는 분이 있고 자리보전하며 백세를 기다리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곧 백세가 된다는 분들이 많다 보니 아득하게 생각했던 백세가 평균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우리 시어머니도 백하고 한 살을 더 드셨다. 팔십을 넘기면서부터는 구십까지 살 수 있을까를 얘기했고 구십을 넘기면서부터는 이 좋은 세상 오 년을 더 살 수 있을까를 얘기하시더니 지금은 백세를 넘기셨다.

  백세를 넘긴 어머니는 이제 자식들도 잘 몰라보고 옆에서 수발을 받아야만 한다. 모시고 있는 큰 시숙은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계시면 누가 영감인지 자식인지 모르게 서로 늙어간다. 그래도 어쩌다 정신이 온전해지는 시간이면 아들인 큰 시숙에게 "너도 늙어봐라." 하시며 가끔 티걱 거리기도 한다. 늙은 효자도 지쳐가고 효부도 지쳐간다.

  내가 결혼했을 때 시어머니는 육십 중반의 나이셨는데 내가 이제 육십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그때부터 "요양원은 갈 데가 아니다." "난 절대 요양원은 안 간다."라고 자식들을 볼 때마다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셨는데 소원을 이루셨다.


  왕년에 근사했던 대 배우들도 오랜만에 TV에 출연해서 모습을 보일 때면 긴가민가 잘 알아보지 못하거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있는 경우가 있어 저분들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오기도 한다. 나도 절친했던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난다면 서로 알아볼 수는 있는지 또한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는지 방법을 알고 싶다.

  살고 죽고 마음대로 할 수는 없으나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자리보전하여 원치 않아도 누군가의 수발을 받아야만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내 옆에 가족이든 간병인이든 있게 되겠지만 치매가 온다면 조용하게 오길 바라고 노환이 온다면 길지 않게 오기를 바란다.

  

  이탈리아의 영화인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와 알프레도가 보여준 진한 우정을 추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내가 주인공이었던 그 시절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추억거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원하든 원치 않든 두렵지 않은 백세를 위해 오늘도 내 손에 주어진 시간들을 감사하며 향복하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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