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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n 11. 2024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모처럼 서점에 들렀다. 딱히 읽을거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쌓여있는 책에 둘러싸인 내 모습이 어쩌면 지적으로 늙어가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허영심이 발동할 때가 있어서다.

  만만한 게 베스트셀러 코너이고, 그러다 인문학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살 것처럼 몇 권 집어 들었다가 도로 제자리 찾느라고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작가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쏟아져 나오는데 그 가운데 내 이름 석 자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슬프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내 생에 단 한 권이라도 책을 낼 기회가 주어지기는 할까. 기약 없는 소망이 망망대해 닻을 잃어버린 배가 표류되어 있는 기분이다.

  나열된 책을 훑어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작가가 있어 집어 들었다. 학생 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무척 감동받은척했던 적이 있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서야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때의 데미안을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와 한 장 한 장 펼쳐보기 시작했다. 자연, 향수, 인간, 예술, 여행 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들려준다. 깊은 고뇌만을 가진 작가였을 거라는 선입관을 가졌던 내게 자연을 이토록 깊이 사랑한 작가였음도 알게 해 주었다.

  굵은 달리아, 계란 풀꽃, 레세다 꽃, 봉선화, 붓꽃, 장미 덤불, 니켈아 꽃, 산나리꽃 등등이 '여름'이 주는 제목에서 열거하고 있으나 어쩌면 내가 가진 꽃 이름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을까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 장미 덤불 하나에 서운함이 가셨다. 우리 집 둘담 울타리에 작년에 삽목한 장미가 싹을 터서 자라기 때문이다. 올해 싹을 텄으니 여름내 자란다면 내년에는 돌담 위로 기어 올라가 빨간 장미 몇 송이를 피워낼 것이다. 그보다도 나도 헤세의 정원에 심어있는 화초와 같은 꽃이 있다고 아무나 붙들고 떠벌리면서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는 입을 꾹 닫고 있어야겠다.

  여름이 짙어가면서 마당의 풀들은 뒤돌아서면 자라고 비가 오면 미친 듯이 자란다. 밤새 내린 비는 꽃대가 기다란 화초들이 사람들의 이쁨 받는 것을 시샘하듯 사정없이 바닥에 쓰러지게 했다. 물먹은 하얀 구절초, 노란 루드베키아가 거의 실신 직전이다. 분홍빛을 머금었던 질이 피운 수국이 청보라색으로 변해가며 거대한 꽃송이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사철 푸른 나무와 화려한 꽃이 얼마나 있겠는가. 봄과 여름이 지나면 푸르렀던 나뭇잎도 탈색이 되고 화려하게 피었던 꽃도 아름다움이 퇴색되어 떨어져간다. 부디 자연에 순응하며 감사하는 삶,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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