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력 저해와 조세 정의 왜곡
대한민국의 상속세 제도는 오랜 기간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특히 기업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세금 부담은 기업의 영속성을 위협하고 나아가 국가 경제의 활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세계 1위 손톱깍이 업체로 유명했던 '쓰리세븐(777)' 사례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창업주인 고 김형주 회장은 생전에 크레아젠 주식 약 204만 주(약 370억 원)를 임직원에게 증여한 후 2년 뒤 별세했습니다. 사후 유가족들은 임직원들이 낮은 증여세율로 증여받은 부분까지 모두 상속세로 추가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막대한 상속세 마련을 위해 회사를 매각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현행 상속세 제도는 성실한 기업 활동이 세금 문제로 좌절되고,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상속세 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분석하고, 합리적인 제도 개선 방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상속 재산은 이미 피상속인이 생전에 소득세,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형성한 자산입니다. 이렇게 세후(稅後)에 남은 재산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높은 세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한 번 과세된 소득에는 다시 과세하지 않는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에도 위배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과세 논란은 성실하게 부를 축적한 이들의 조세 저항을 유발하고, 개인의 정당한 자산 형성 노력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자산을 축적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동기를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의 자본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대한민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습니다. 하지만 최대주주에게 적용되는 할증과세(최대 20%)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최고세율은 60%에 달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는 OECD 평균 상속세율이 약 25% 수준임을 감안할 때 매우 과도한 수치입니다.
이처럼 높은 세율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 오너들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늘리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축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며, 심한 경우 기업 본사나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국부 유출의 가능성까지 낳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기업을 일군 대가가 '세금 폭탄'으로 돌아오는 현실은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최대주주 할증과세는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징벌적 과세'로 꼽힙니다. 이는 단순히 상속 재산 가치에만 세금을 매기는 것을 넘어,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실현되지 않은 미래 가치에까지 추가로 과세하는 제도입니다.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지분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셈입니다.
이로 인해 상속인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받은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는 건실한 중견·중소기업의 경영권을 외부 투기 자본에 넘겨주는 빌미를 제공하거나, 상속인이 지분 매각을 위해 비핵심 자산을 처분하게 만들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됩니다. 100년 기업을 꿈꾸기 어려운 구조적인 장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쓰리세븐 외에도 국내 가구 1위 한샘, 밀폐용기 세계 1위 락앤락, 의료용 장갑·콘돔 세계 1위 유니더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창업주 사망 이후 상속·증여세를 내기 위해 기업을 매각한 사례입니다.
대한민국은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은 재산이 아닌, 피상속인이 남긴 전체 유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규모의 유산이라도 상속인 수에 상관없이 동일한 세금이 부과되어 조세 부담의 공평성 원칙에 어긋납니다. 예를 들어 10억 원을 한 명에게 상속하든, 열 명에게 1억 원씩 나누어 상속하든 내야 할 상속세 총액은 같습니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OECD 국가는 상속인 각자가 취득한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실제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인의 납세 능력을 고려하므로 훨씬 합리적입니다. 유산세 방식은 상속인 간의 실질적인 부의 이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속 재산의 대부분은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이나 비상장주식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상속세는 현금으로 납부해야 합니다. 이는 납세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줍니다. 당장 세금을 낼 현금이 없는 상속인은 가업의 핵심 자산인 비상장주식이나 부동산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급하게 처분해야만 합니다.
이로 인해 평생 일군 기업이나 주요 자산을 헐값에 처분해야 하는 비극이 반복되며, 이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 사회적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경제 손실을 초래합니다.
상속세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부과하는 세금이 아닙니다. OECD 38개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24개국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 50%(최대주주 주식 할증 포함 60%)는 일본의 55%에 이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며,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포함하면 사실상 OECD 최고 수준에 달합니다.
반면, 캐나다는 해외 기업과 자본 유치를 위해 상속세를 완전히 폐지했으며, 미국은 개인 약 1,399만 달러(한화 약 180억 원), 부부 약 2,798만 달러(한화 약 360억 원)까지 면세하는 등 매우 높은 면세 한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속세의 실효세율이 23%에 불과하므로 과중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으나 다른 OECD 국가들의 상속세 실효세율은 대부분 10% 내외에 불과합니다. 또한, 미국이 0.1%에 불과한 상속세 납부 인구(사망자 대비) 비율이 우리나라에서는 약 6%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도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 조세 환경 조성을 위한 전면적 개편 논의가 시급합니다.
현행 상속세는 이중과세, 기업 위축, 경영권 승계 저해, 국부 유출 등 복합적인 문제를 내포하며, 조세 정의 왜곡과 경제 활력 저하의 주범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편이 필요합니다:
유산취득세 방식 도입으로 실질적 조세 형평성 확보
과도한 세율 조정 및 최대주주 할증과세 폐지 또는 완화
공제 한도 현실화 및 납세 유예제도 개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세제 구축
이를 통해 기업의 영속성과 투자 촉진,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조세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상속세 개편은 대한민국이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선진 조세 시스템을 완성하는 핵심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