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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 고교생은 운동하고 한국 고교생은 공부만 할까?

80% vs 8%

by 박병건


교토국제고의 역사적 우승

2024년 8월 23일, 한국계 고등학교인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일본의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일명 '여름 고시엔'에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교토국제고는 고시엔 역사상 최초로 우승한 한국계 학교이자, 국제학교가 고시엔에서 우승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한인들이 설립한 학교로, 한국어 교가와 한국 관련 교육을 지속해왔다. 이번 우승은 재일동포 사회와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특히 결승전 직후 선수들이 한국어로 교가를 부르는 장면은 상징적인 의미를 더했다.


일각에서는 한국계 고등학교라는 점 때문에 일본인들의 부정적 반응을 우려했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교토국제고를 적극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교토국제고는 교토부 지역 예선을 우승해 교토 대표로 출전했으며, 교토 대표가 고시엔에서 우승한 것은 68년 만이었다. 일본의 고시엔 대회는 지역 대항전의 성격이 강해, 교토 대표의 선전에 지역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집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야구나 축구를 하는 학생 대부분이 엘리트 체육인으로 한정되며, 저변도 좁다. 일본처럼 지역 예선을 거쳐 대표를 선발하는 경우도 드물다. 두 나라 모두 교육제도와 문화적 배경에서 유사점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살펴보자.


극명한 차이: 스포츠팀 보유 현황

일본과 한국의 고등학교 스포츠팀 보유 현황을 비교하면 뚜렷한 격차가 드러난다. 일본 전국 약 4,887개 고등학교 중 축구팀 보유 학교는 3,962개(80%), **야구팀 보유 학교는 3,715개(76%)**에 이른다. 10곳 중 8곳이 축구팀을, 10곳 중 7~8곳이 야구팀을 운영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전국 약 2,370개 고등학교 중 축구팀을 운영하는 학교가 190개(8%), **야구팀을 운영하는 학교는 100개(4%)**에 불과하다. 필자가 거주하는 충청남도의 경우, 118개 고등학교 중 축구부를 운영하는 학교는 3개(2.5%), 야구부 운영 학교는 2개(1.6%)뿐이다.


AD_4nXeFM4z2caFDeZjxupim5XzeM23xUMnIHUiKmVUVtqhLoM5LD8zUg1TaFGd0JRjkNlvaJ80iM4zP6KmNOJG5KNGIqzCNWzbn4kNqzIxMoC1W-L8ucFEiwDmucyTf8JKiMrRYz2FNKg?key=7tYqb-1b8yIJ8bve0gxnYg 일본과 한국의 고등학교 축구팀 및 야구팀 보유 비율 비교 - 일본은 고등학교의 80%가 축구팀, 76%가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각각 8%와 4%에 불과함



일본의 부카츠 문화와 체육 활성화

부카츠 제도의 정착

이처럼 큰 차이는 일본의 독특한 방과후 활동 문화인 **부카츠(部活)**에서 비롯된다. 부카츠는 1968년 문부성의 학습지도요령 개정을 통해 공식화됐으며, 1972년 중·고교 클럽 설치 의무화, 1989년 부카츠 활동의 대학입시 반영으로 본격 활성화됐다.


현재 일본 중학생의 66.2%, 고등학생의 39.0%가 운동부에 참여한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48.3%, 고교 1학년 남학생은 63.7%가 운동부 소속이다. 마케팅 기관 SHIBUYA109 Lab.에 따르면 일본 고등학생의 70% 이상이 부카츠 활동을 하고 있다.


체육시설과 인프라

일본의 학교 체육시설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일본 전역의 25만 5천 개 스포츠시설 중 15만 8천 개(62%)가 학교 내에 설치돼 있다. 수영장, 테니스장, 실내체육관 등 다양한 시설을 통해 체육 수업과 부카츠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진다.


한국의 입시 중심 교육과 체육 소외

입시 부담과 체육 위축

한국의 낮은 스포츠팀 보유율은 극심한 입시경쟁과 학업 중심 문화에 기인한다.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체육활동은 '입시에 불필요한' 활동으로 여겨진다.


2022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생활체육 참여율은 52.6%**로, 모든 연령대 중 최저 수준이다. 심지어 70대 이상 노년층(54.3%)보다도 낮다. WHO 조사에서도 한국 청소년의 94.2%가 하루 1시간 미만의 신체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세계 146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체육 시간의 축소와 형식화

입시 부담으로 한국 고등학교의 체육수업 시간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의 체육 시간은 주 3시간에서 2시간으로, 고등학교 2·3학년은 선택 과목으로 바뀌면서 상당수 학생들이 1년 이상 체육수업을 받지 않는다.


체육수업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체육 시간에 자습하거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비공식적인 시간으로 소비하며, 체육은 '시험을 위한 교과'로 전락하고 있다.


결정적 차이: 입시 제도와 체육활동의 관계

일본: 체육활동의 입시 반영

일본의 대학입시는 센터시험과 대학별 개별시험으로 구성된다. 한국과 달리 방과후 체육활동은 입시에 반영된다. 중학교 활동은 고등학교 진학에, 고교 활동은 대학 입시에 반영돼 학생들이 부카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도쿄대 입학처장은 "같은 점수라면 문·무를 겸비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학교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추천입시 제도에서는 학교장 추천서, 면접, 소논문 외에 운동능력평가가 포함되며, 운동능력은 필수조건 중 하나다.


한국: 체육활동의 입시 배제

한국은 수능 중심 입시제도로 인해 체육활동이 대학입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과거 체력장 성적이 일부 반영되던 시기도 있었으나, 현재는 체육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다. 평가 또한 '상·중·하'의 단순 등급제로 운영돼 체육수업 위축의 원인 중 하나다.


학업 중심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 높은 교육열과 경쟁 문화

한국과 일본 모두 높은 교육열과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을 특징으로 한다. 대학 서열화가 심화돼 학생들은 치열하게 공부하며 진학을 준비한다.


차이점: 체육활동에 대한 인식과 제도

체육에 대한 접근 방식은 크게 다르다. 일본은 '1인 1기' 교육을 강조하며, 체육활동을 필수적 학교생활의 일환으로 인식한다. 학업 우수 학생들도 일정 수준의 체육 실력을 갖추며, 체육활동은 학교생활기록부에 반영돼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한국은 "지지지(智智智) 교육"이라 불릴 만큼 주지교과 위주의 편협한 교육이 주를 이룬다. 체육은 종종 학업에 방해되는 활동으로 인식된다.


결론: 제도의 차이가 만든 격차

일본과 한국 고등학교의 스포츠팀 보유율 격차는 단순한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두 나라의 교육철학과 입시제도의 근본적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다. 축구팀 보유율 80%와 8%라는 10배의 격차는 단순히 두 나라의 문화적 취향 차이가 아니다. 이는 체육 활동을 입시와 연계해 장려하는 일본의 제도, 그리고 오직 성적만을 강요하는 한국의 입시 중심 문화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의 청소년 체력 저하 문제가 단순한 인프라 확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입시 제도 안에서 체육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학업과 운동이 균형을 이루는 교육 문화로의 근본적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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